오만한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
내가 오만해지기 때문에
오만한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거겠지?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상에서 질문을 가지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더욱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일정한 대안을 만들고 답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삶에서 인사이트도 얻고 감동도 얻게 된다. 그런데 그러는 와중에 오만만 가득한 사람도 만난다. 투덜투덜 대면서 대안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남탓하면서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도 있다. 이상하게 그런 사람들 앞에 서면 갑짜기 멈춰선다. 예전에는 그들과 선긋고 '이제 안 만나야지!'이런 생각을 했는데, 요즘에는 마치 '거울 앞에 서 있는 것'같다. 내가 이러고 있었던게 아닐까? 신나게 누군가를 비판하고 나면 남는 것은 허무와 외로움 뿐이라는 것에 신물이 난다고 할까?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CS 루이스는 말한다. "인간을 타락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선'을 행하고 있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고, (나의 상상력을 더해서)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악'을 행하고 있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물론 뒤에 있는 문장은 내가 더한 것이지만 이것은 '스스로에게 비밀'인 영역이 어딘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잘한 것에는 비밀이고, 자신이 잘못한 것에는 폭로가 일어나야 한다. 인간은 언제나 스스로를 기만해서 자신이 매우 멋지고 잘났다고 생각하는 경향성을 갖기 때문이다. 누군가보다 '비교'해서 더 잘 났고, 멋지고, 더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에 내가 누군가에게 잘못하고 있다거나 내가 당했던 만큼 나도 누군가에게 매몰차게 한건 아닌가라는 생각.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좀 처럼 오만해지지 않는다.
그러니깐 자신이 오만하다고 스스로를 인지하는 사람은 오만해지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반대로 자신이 오만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 겸손하다고 믿는 사람은 오만해질 수 밖에 없다. 가끔 화남과 오만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매사에 부정적이며 무슨 조그만 잘못이라도 하면 성질을 내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화난 거에요?"라고 물어보면 자신은 화를 낸게 아니라고 한다. 앞에 있는 사람에게 그렇게 대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사람, 더 나아가 자신 앞에서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 누구라도 혼나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독립적인 자아의 성 안에서 사는 사람이다. 자신이 가장 높은 첨탑 위에 있고 그 성을 오르는 사람은 모두 자신의 발 밑에 있다. 그리고 자신은 누구나 판단할 수 있다. 자신이 가장 뛰어나다. 스스로는 뛰어나다는 생각을 넘어서 그냥 자기 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게 사실은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에 대한 우위가 깔려 있다.
화를 내고도 오만하지 않다는 사람, 화를 낼 수 있는 대상 자체가 없는 사람. 누구에게도 화난 것을 숨기지 않는 사람. 자신의 안위가 가장 중요한 사람. 세상에 존재해도 그만 존재하지 않아도 그만인 사람.
그런 사람들의 곁에서 숨쉬다 보면 자연스럽게 오만함에 대한 방어기제가 생겨난다. 되도록이면 그런 사람은 피하고 싶다. 말 한마디 걸었다가 이유없는 화를 당하기 때문이다. 상처입은 치유자가 아니라 상처내는 피해자이다. 그런데 그것도 언제까지 피해다닐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러면 남은 것은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피곤해진다. 내가 왜 이런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생각 자체가 이미 오만함에 대한 반대급부로 오만함을 배운 결과이다. 한마디로 '편견'이 싹튼 것이다. 편견은 이렇게 탄생한다.
인간은 여기까지일까? 인간들이 모이면 오만함이 넘쳐흘러 결국 스스로 붕괴하는사회가 되는가? 인생들의 미래가 너무 절망스럽지 않은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대하지 않으신다. 나의 오만함과 문제를 다 아시고 나에게 최대한 맞혀주시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내가 하나님께 물어볼 때까지 기다리시고, 내가 오만해지면 잠잠히 내 옷깃을 끌어 당기신다. "너가 좀 이해해 주면 안되겠니?" 혹은 "너가 좀 참으면 안되겠니?"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몇 번을 거잘하다고 하는 수 없이 성령이 하는 권유를 받아들이고, 더불어 마음의 평안과 사랑을 구한다. 내 안에 넘쳐날 사랑을 구한다.
순간 마음에 사랑이 넘쳐 흐른다. 강물같이 흘러첨쳐서 나의 내면을 가득채우고 나는 완전히 잠긴다. 이것은 시실 경험의 영역이대. 이걸 경험한 사람은 안다.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넘치는 사랑이 마음 속에 까칠한 굴곡을 수평으로 맞추시고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지나가게 하신다. 실망과 실패 그리고 혐오와 미움이 넘쳐나는 판에서, 오만이 겹겹히 쌓여서 편견의 왕국이 되어버린 공동체와 그 속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강물이 흘러간다. 크리스천이란 이런 사랑을 경험하고 나누는 것의 다름 아니다.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사람은 이 과정을 절대 알지 못한다.
몇일동안 속앓이를 하고서는 여기까지 왔다. 다시 오만이 가득한 사람들 가운데, 마음대로 화를 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편견에 갇힌 사람들에게 조금은 여유롭지만 사랑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방식으로. 여전히 몇 백번의 편견의 시선이 나를 쓸어내리겠지만. 그걸 그대로 갚아주거나 혹은 배제하고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흘러넘치는 사랑으로 진정 인간답게 대응한다. 이해와 용서 그리고 배려가 가득한 인간답게.
처음 만들고 좋았더라고 하셨던 그 인간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