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조림인간을 보면서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겸손하다는 것을 모른다.
왜냐하면 비교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끝까지 자신과 싸우다가 어느순간 고수가 된다. 비교하지 않기에 상대적이지 않고 절대적이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역시나 비교하지 않기에. 그러니깐 어느 수준, 어떤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은 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누구보다 잘하는지도 모르고 항상 정상에서 하늘을 향해서 점프를 뛴다. 인생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나도 인생에서 이런 사람을 손에 꼽을 정도로 만나보았다. 천재인가 싶다가도 바보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지리같이 무둑커니 그 일을 한다. 그리고 10년, 20년, 30년이 지나면 어느새 그 열심과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 세월의 무게만큼 자존감의 무게도 높아졌기에 누가 뭐라고 해도 꾸준히 그 일을 해 내고 이름도 없이, 소리도 없이 사라진다.
요리에 들어가면 가장 힘들면서 어려운 질감을 만들 줄 알아야 하는 시간이 바로 '깨두부'를 만들 때이다. 몇분이고 저어주면서 어느순간 손에 느낌이 왔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그 감각! 되었다!라는 감각이 전해져 올 때 이제 깨두부는 완성이 된다. 마치 권투를 처음 배울 때 줄넘기부터하고, 역도를 배울 때 달리기부터 하는 것처럼. 요리를 처음 배울 때 그 기본을 다지면서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 그것이 깨두부이다. 이번 흑백요리사에서 최강록은 깨두부를 꺼냈다. 모든 쉐프들이 의아해 했다. 왜 하필 깨두부였을까? 조림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요리는 따로 있는게 아닐까? 그러나 최강록은 말한다. '자기점검'이다. 자기가 정말 그 초심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을 깨두부의 반죽을 만들고 질감을 우려내는 데 다 쓴다. 초초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과 반대로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리괴물은 여전히 자신의 진기명기를 꺼내서 사람들을 매혹하고 있었다.
요즘들어 한 가지의 길만 보이던 시야에서 어렴풋이 다른 길이 보인다. 희미하게 보이는 그 길은 사람들이 잘 가지 않았던 길이다. 그리고 매우 험난해 보이기도 하고 구불구불 멀리 돌아가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누구나 알고 있고 모두가 가려고 하는 길과는 다르게 내가 알지 못하는 맹수들과 독초, 낭떨어지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이 길을 가면 힘들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대부분은 선택하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이 길을 가게 되면, 아무것도 얻어오는 것이 손에는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점검해 볼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어려움에 직면해서 자신이 어느정도에 있는지 또 여기서 어떤 대안을 내야 하는지를 시험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시험을 이겨낸 경험은 인생의 저변에 자존감과 진정성으로 깔린다. 한번 어려운 길을 간 사람은 우직하게 다시 그 길을 갈 수 있다. 반대로 편한길만 가는 사람은 더더욱 편한길을 찾게 된다. 우리의 인생이 이렇다.
편한길, 보통길, 평범한 삶, 뻔히 보이는 삶. 우리는 그것이 마치 인생의 모든 것인양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뒤 돌아서서는 하품하고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몇 가지 동영상으로 떼운다. 돌담길, 돌뿌리가 많은 길, 낭떨어지 옆으로 기어가야하는 길, 가시밭길, 구멍이 듬성듬성 나 있는 길은 위태롭기는 하지만 그 가운에 우리가 배우는 것들이 있다. 언제나 어느순간이나 어떤 위험에라도 대비하고 마침내 길을 찾아내게 된다. 그 길을 살아온 사람은 어떤 시련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다. 여전이 모두가 포기한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모두가 절망한 지점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게 될 것이다. 사회가 도전적이지 않고 언제나 평범함이 원함이 되는 때는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성숙하지 않는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삶을 후라이팬에 튀겨버릴 것이다. 새까맟게 타들어가도록 말이다.
인생의 목표를 다시 세워야 한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사회의 압력에 눌려서, 부모님과 친구들의 기대에 부응해서 잡은 목표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 진정으로 나를 가슴뛰게 하면서 평생할 수 있는 일, 거기에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고 누구나 포기하게 되는 어렵고 험난한 길. 만약 이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그 길이 당신을 부를 것이다. 뿌리치고 편안한 길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그 부름에 응답해서 진짜로 그 길을 걸어볼 것인다. 그 길로 간혹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몸과 마음을 피곤하지만 얼굴은 살아 있고, 눈은 반짝인다. 이런 사람들은 그 길을 걷고 나서 다른 길에 접어들 때 사람들은 겸손하다고 하는데, 막상 자신은 모른다. 그리고 비교할 이유가 없어진다. 어차피 다른 길이기 때문이다.
겸손이라는 미덕이 사라져 버린 시대에 꾸준히 자신의 자리에서 변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주목받기 시작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원래 이래야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경쟁의 가치에 밀려 버려서 심해 깊은 곳으로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 ’깨두부’같은 사람들이 있다. 웬만하면 요리프로그램은 잘 안보는데, 이번 흑백요리사는 끝까지 정주행을 했다. 겸손함이라는 단어 자체를 잊어버렸지만 ‘자기점검’과 ‘자기와의 싸움‘에 진심인 사람들이 쌓아 올린 내공의 힘은 어느순간 빛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후일담이지만 1등을 한 소감을 보고 사람들이 그 전에는 더듬 거려서 말을 잘 못하는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면 그의 삶이 ’조림인간’인 탓에, 말도 언어도 조림으로 충분히 우려내야만 입밖으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자신은 조림을 잘하는 척하지만 실은 국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니, 자신에게 진실해지는 것만큼 자신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어느정도 깊이인지. 그러니 비교의 대상은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다.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을 하염없이 열심히 할 때 주어지는 상금과도 같은 결과들. 깨두부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