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철학일기

전통사회의 동요와 새로운 사유의 출현

처음읽는 한국현대철학 2강_실학사상과 사상가들

by 낭만민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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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후기 사회의 동요

2. 현실중심적 학문관과 서양과학 수용

3. 신분차별 비판과 평등한 인간관

4. 이익 추구 긍정과 민생안정 대책 강구

5. 새로운 사유의 맹아

6. 실학이 한국 철학에 준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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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오트와 함께하는 철학산책 시즌 6까지 왔다. 드디어 한국현대철학이다. 지금까지 프랑스, 독일, 영미철학을 통해서 서양철학 전반을 둘러보았고, 시즌 5에 와서는 중국현대철학을 통해서 동양철학까지 왔다. 서양철학은 자신들이 세상을 보던 방식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했다. 아주 오래전 그리스 아테네에서부터 내려온 헬레니즘 전통이 중세시대를 넘어서 현대에 자리잡았다. 이데아와 과학의 세계 말이다. 그런데 동양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세상이 구성되었다고 느꼈고 마음과 관계가 모든 것들을 만든다고 믿었다. 동양의 성리학에 이르면 최정점에 다다른다. 조선중기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성리학, 주자학이 핵심적인 세계관을 구성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실학자들이 등장한다. 현실의 많은 문제들로 말이다. 한국 현대철학은 어쩌면 임진왜란 이후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실학자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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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은 성리학적 도그마가 지배하던 사회에 던져진 거대한 철학적 전환점이자 민생 구도를 위한 지적 분투였다. 양란 이후 무너진 삶의 터전 위에서 기존의 관념적 질서는 백성의 고통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못하는 무력함을 드러냈다. 이에 깨어있는 지식인들은 헛된 명분론을 버리고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며 학문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기 시작했다. 실학은 '실제로 작동하는 지식'을 지향하며 성리학적 세계관이 가려버린 사물의 실재를 복원하려 노력했다. 이는 단순히 실용적인 기술을 배우는 차원을 넘어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실학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주체적 사유의 뿌리가 된다. 오늘은 실학이다. 실학에 관련된 글에 대한 해석을 통해 실학이 품었던 개혁의 의지와 철학적 통찰이 현대 한국 철학에 던지는 가능성을 함께 찾아보자.


임진왜란 이후 양반들은 주자학으로 도망갔고,
백성들은 현실 속에 죽기까지 버텨야 했다


한가지 제안은 수잔손택의 ‘해석에 반하여‘를 참고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회로인데, 너무 해석학에 빠지지 않고 실재계의 물체들을 그대로 보기 위해서 수잔손택이 비판하는 해석학을 가져와보자. 그렇게 보면, 실학자들은 수전 손택이 비판했던 '해석의 폭거'에 맞서 사물의 감각적 직접성을 회복하려 했던 선구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자학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형이상학적 틀로 재단할 때, 실학자들은 그 해석의 안경을 벗고 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보려 했고 만지려고 했고 들으려고 했다. 이들은 소위 주자학에서 말하는 ‘성현의 말씀‘을 독점한 기득권 사유 체계를 비판하며 초기 유교, 맹자의 역동적인 민본 정신을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서양의 과학적 성과와 청나라의 고증학적 방법론을 수용하여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학풍을 확립했다. 이러한 지적 모험은 조선이라는 닫힌 사회를 열린 세계로 이끄는 강력한 추동력이 되었다. 정약용과 홍대용, 최한기, 박제가의 실학을 살펴보면서 조선말기 한국 철학이 어떻게 태동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1. 조선후기 사회의 동요


먼저 전란이라는 시기에 조선이라는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보자. 조선 후기 사회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차례의 참혹한 전란을 겪으며 근간이 흔들리는 대변혁을 맞이했다. 전란은 국토의 물리적 파괴에만 그치지 않고 성리학적 질서가 백성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폭로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배층은 무능함을 가리기 위해 명분론적 북벌론이나 소중화 의식에 매몰되어 백성들과의 괴리를 심화시켰다. 더욱이 이 시기 백성들은 삼정의 문란이라는 극심한 수탈 체제 아래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존엄성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위로부터 아래까지 부패한 현실에서 실학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정약용의 '애절양'은 군포를 내지 못해 스스로 성기를 자른 농민의 비극을 고발한다. 당시의 참상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만큼 비참하고 침울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 전반에 퍼진 삶에 대한 회의감은 기존의 성리학적 가치관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인식을 집단적으로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다른 한편 전란 이후라는 시간에 조선이라는 공간에 생긴 가능성을 살펴보자. 상품 작물 재배와 상업의 발달로 신분 체계가 요동치며 새로운 사회 계약에 대한 요구가 분출되었다. 이러한 거대한 붕괴와 동요의 현장은 실학이라는 새로운 사유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토양이 되었다. 철학에 있어서 존재론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전까지 성리학은 '리'를 중심으로 하는 관념론적 성격이 컸다. 조선사회에서 리를 중심으로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신분질서의 안정성이었다. 그러가 신분제도 상층부가 부도덕하고 무능하다라는 인식이 전란 이후에 만연하게 퍼졌다. 이에 반해서 실학자들은 자연에 대한 관심을 시작으로 민생을 안정시키고 풍요롭게 살기 위한 학문을 시작한다.


조금 더 현실을 들여다 보자. 국가의 주인이라 자처하던 사대부들은 정쟁과 예송 논쟁에만 몰두하며 민생의 고통을 외면하는 직무 유기를 범했다. 붕당 정치는 정책 대결보다는 가문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국정 운영의 효율성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결과를 낳았다. 농토는 황폐해졌고 유랑하는 백성들이 늘어났지만 지배층은 여전히 주자학적 예법에만 집착하며 현실을 부정했다. 소중화 의식은 변화하는 세계 정세를 읽지 못하게 만드는 지적 쇄국주의로 작용하여 조선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 실학자들은 "학문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 되었다. 백성들의 절규는 지식인들에게 관념의 상아탑에서 내려와 흙먼지 날리는 현장으로 향할 것을 명령했다. 사회의 하부 구조가 무너지는 소리는 기존의 상부 구조를 지탱하던 철학적 전제들을 무너뜨리는 망치가 되었다. 실학은 바로 이 무너진 폐허 위에서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실천적 지혜를 모색하며 출발했다.


전통적인 사농공상의 신분 서열은 경제적 변화와 함께 실제적인 권위를 잃고 허울만 남은 상태가 되었다. 부를 축적한 서민층이 등장하고 몰락하는 양란들이 속출하면서 신분제는 더 이상 사회 운영의 효율적인 기준이 되지 못했다. 지배층은 이러한 변화를 억제하려 했으나 현실의 역동성은 이미 봉건적 틀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가혹한 세금과 부정부패는 민란의 씨앗이 되어 사회 곳곳에서 저항의 불꽃이 타오르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실학자들은 이러한 동요를 국가 멸망의 징조로 보지 않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으로 해석했다. 이들은 체제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토지 제도의 근본적 개혁과 통치 기구의 쇄신을 강력히 주장했다. 사회적 불평등과 수탈의 현장은 실학자들이 자신들의 이론을 검증하고 실천해야 할 가장 뜨거운 실험실이었다. 조선 후기의 사회적 동요는 곧 낡은 사유의 종말이자 새로운 근대적 인식이 싹트는 역사의 변곡점이었다.


실존적 위기에 직면한 민중은 더 이상 관념적인 도덕 교육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실질적인 생존 대책을 갈구했다. 지배층이 강조하는 '의리'는 배고픈 백성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으며 오히려 위선적인 통제 수단으로 비쳐졌다. 실학자들은 이러한 민심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어 '이용후생'을 학문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는 인식의 전환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백성이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고대의 금언을 다시 소환하여 경제적 안정이 도덕적 삶의 전제임을 강조했다. 사회적 동요는 지식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특권을 성찰하고 백성들과 고통을 분담하는 실천적 지성으로 거듭나게 했다. 무너지는 질서 속에서 이들이 찾고자 했던 것은 변치 않는 형이상학적 진리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웃을 구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조선 후기의 혼란은 실학이라는 강력한 개혁 사상이 분출될 수 있도록 내부의 에너지를 응축시킨 과정이었다. 결국 사회의 동요는 실학이라는 대안적 사유를 통해 한국 철학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2. 현실중심적 학문관과 서양과학 수용


실학자들은 성리학의 공리공론을 배격하고 실제적인 쓰임이 있는 학문을 추구하는 '실사구시'의 학풍을 확립했다. 이들은 주자학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형이상학적 틀로 해석하려 했던 '해석의 폭거'로부터 탈피하고자 노력했다. 홍대용은 지전설과 무한 우주론을 통해 중국 중심의 천하관을 무너뜨리고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지구가 스스로 돈다는 주장은 단순히 과학적 발견을 넘어 화이 구분의 차별적 세계관을 철학적으로 해체한 사건이었다. 최한기는 기학을 통해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기'를 학문의 중심으로 삼아 관념론을 극복하는 경험론적 인식을 정립했다. 서양의 천문학, 수학, 지리학 등의 수용은 실학자들에게 객관적 사실의 힘과 합리적 사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서학과의 조우는 조선의 학문이 동양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세계적 보편성으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현실 중심적 태도는 보이지 않는 원리보다 눈에 보이는 사실을 우선시하는 현대 과학 정신의 원형을 보여준다.


실학자들은 지식이 상아탑 속의 유희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경세치용'의 정신을 견지했다. 이들은 서양 문물을 무조건 배척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유용한 원리를 수용하여 이용후생의 수단으로 삼고자 했다.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나 기하학 서적들은 실학자들에게 우주의 광대함과 수리적 엄밀함을 깨닫게 하는 지적 자극제가 되었다. 홍대용은 우주의 관점에서 볼 때 만물은 평등하며 어느 곳도 중심이 될 수 없다는 우주적 평등주의를 선언했다. 이러한 인식은 중화주의라는 거대한 관념적 틀을 깨부수고 조선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철학적 기초가 되었다. 과학적 탐구는 단순히 기술적 호기심을 넘어 인간의 인식 능력을 확장하고 세계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주체적 노력의 산물이었다. 실학자들은 '이'라는 추상적 원리 대신 '기'의 변화와 법칙을 관찰함으로써 세상의 실체에 다가가려 했다. 현실 중심의 학문관은 지식인의 시선을 하늘에서 땅으로, 관념에서 현장으로 돌려놓는 혁명적 변화였다.


서양 과학의 수용은 조선의 전통적인 시간관과 공간관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며 근대적 합리성을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실학자들은 정밀한 관측 기구를 제작하고 천문의 운행을 계산하며 우주의 질서를 수치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시도는 우주를 도덕적 상징으로만 보던 성리학적 시각에서 벗어나 자연을 객관적인 탐구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홍대용과 최한기는 서구의 과학적 방법론을 주체적으로 소화하여 자신의 철학적 체계를 보완하고 확장했다. 이들은 지식이 경험과 증거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실증주의적 태도를 통해 학문의 엄밀성을 확보하려 했다. 서양 과학과의 만남은 조선 지식인들에게 타자의 시선으로 자신들의 학문을 성찰할 수 있는 거울 역할을 해주었다. 과학적 사실이 주는 충격은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새로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지적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실학의 과학 정신은 기술이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는 '인'의 실천이라는 인문주의적 가치와 결합하여 독창적인 빛을 발했다.


현실 중심적 학문관은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며 학문과 삶의 일치를 지향하는 실천적 지성주의를 낳았다. 실학자들은 경전의 문구에 매몰되지 않고 역사적 자료와 현장의 증거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려는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다. 이들은 사물의 실재를 가리는 '해석'의 옷을 벗겨내고 사물 그 자체의 소리와 질감에 귀를 기울이고자 했다. 수전 손택이 말했듯 세계를 지적으로 관리하려는 욕망을 버리고 감각적 직접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실학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었다. 과학적 발견은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서 끌어내렸지만 동시에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개체로서의 인간을 발견하게 했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 한국 사회가 과학 기술 문명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정신적 유산이 되었다. 실학은 관념의 감옥을 탈출하여 사실의 대지 위에 학문의 성을 쌓으려 했던 위대한 지적 투쟁이었다. 현실과 과학을 향한 이들의 열정은 오늘날 우리가 지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3. 신분차별 비판과 평등한 인간관


실학자들은 성리학적 명분론이 정당화해온 견고한 신분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며 인간 평등의 가치를 역설했다. 박지원은 '양반전'을 통해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특권만 누리는 양반층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비판했다. 그는 신분이라는 허울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행하는 일과 인격이 본질임을 강조했다. 실학자들은 모든 인간이 우주의 원리를 똑같이 부여받았다는 논리를 통해 천부적 평등권의 싹을 틔웠다. 신분 차별은 하늘이 정한 질서가 아니라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부당한 제도라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홍대용과 최한기는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따라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근대적 능력주의를 주장했다. 이러한 평등 사상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사회적 역할 분담의 관계로 재정의하려는 선구적인 시도였다. 신분 차별에 대한 비판은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고 만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향한 첫걸음이었다.


사물과 인간의 관계 규정이 결국 새로운 인간관을 만들어 낸다


박지원은 똥을 치우는 일을 하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엄행수를 진정한 '선생'으로 추대하며 노동의 가치를 찬양했다. 그는 양반이라는 신분이 도덕적 우월성을 보장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적 기생충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실학자들은 신분의 벽을 허물고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식의 민주화를 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인간의 가치가 가문이나 혈통이 아니라 그가 사회에 기여하는 실질적인 행동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인식은 봉건적 위계 구조를 해체하고 개별적 주체로서의 인간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정약용은 모든 백성이 양반이 되는 사회를 꿈꾸며 신분적 특권이 사라진 공정한 공동체를 설계하려 했다. 인간 평등에 대한 이들의 확신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차별의 관습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용기 있는 행위였다. 평등한 인간관은 실학이 추구한 이용후생의 목표가 모든 백성에게 골고루 닿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공했다.


실학자들은 성리학의 '성즉리'를 재해석하여 모든 인간이 도덕적 주체로서 동등한 자격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하려 했다. 정약용은 인간에게 선을 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가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이라고 보았다.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선을 행하면 군자가 될 수 있고 악을 행하면 소인이 된다는 논리는 신분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최한기는 세계와 정보를 교류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소통적 자아로서의 인간 모델을 제시했다. 이러한 개방적인 인간관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현대적 시민 의식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신분 차별에 대한 비판은 여성의 인권이나 소외된 계층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며 학문의 외연을 확장했다. 실학자들은 권위주의적 질서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고유성과 존엄성을 끝까지 지켜내려 했다. 평등 사상은 실학이 단순한 경제 개혁론을 넘어 보편적인 인권 사상으로 나아가는 가교가 되었다.


인간 평등에 대한 실학자들의 사유는 현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의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철학적 토대가 되었다. 이들이 정립한 '능력에 따른 직업 선택'과 '인격적 동등함'의 가치는 대한민국 헌법 정신의 뿌리와 맞닿아 있다. 실학은 신분이라는 보이지 않는 사슬을 끊어내고 각자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게 했다. 박제가와 박지원이 강조한 전문가로서의 개인은 현대 전문직 사회의 예언적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평등한 인간관은 실학자들이 백성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그들의 삶을 개선하려 했던 긍휼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지적 투쟁을 통해 한국 철학의 인문주의적 전통을 한 단계 높였다. 실학의 평등 사상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형태의 차별과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지침을 제공한다. 인간의 가치를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이들의 고민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4. 이익 추구 긍정과 민생안정 대책 강구


실학자들은 전통 유교의 '선비는 이익을 말하지 않는다'는 금기를 깨고 정당한 이익 추구가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보았다. 이들은 굶주림 속에서는 도덕적 수양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직시하며 '이용후생'을 도덕의 전제 조건으로 삼았다. 성호 이익과 정약용은 토지 소유의 불평등이 만악의 근원임을 간파하고 토지 제도 개혁을 통한 민생 안정을 주장했다. 특히 정약용의 여전론은 토지 공동 소유와 노동량에 따른 분배를 제안한 혁명적인 공동체 경제 모델이었다. 박지원과 박제가는 상업과 공업의 발달이 국가 부강의 핵심임을 강조하며 수레와 화폐의 원활한 유통을 촉구했다. 박제가는 '북학의'를 통해 적절한 소비가 생산을 자극하여 경제의 선순환을 만든다는 현대적 소비 이론을 펼쳤다. 이익 추구에 대한 긍정은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부정하지 않고 이를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전환하려는 실용적 지혜였다.


이용후생의 철학은 기술과 경제가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는 '인'의 실현 도구라는 확신에서 비롯되었다. 실학자들은 농기구 개량, 수리 시설 확충, 새로운 작물 도입 등 백성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모든 수단에 집중했다. 박지원은 청나라의 벽돌 쌓기 기술이나 수레 제작법을 관찰하며 조선의 낙후된 인프라를 개선할 대안을 찾으려 했다. 이들에게 경제는 단순히 부를 쌓는 수단이 아니라 모든 백성이 공평하게 풍요를 누리는 정의로운 질서를 세우는 과정이었다. 정약용은 목민관의 청렴함이 백성의 이익을 보장하는 첫걸음임을 강조하며 공직 사회의 쇄신을 요구했다. 이익 추구를 긍정하면서도 그것이 사리사욕으로 흐르지 않도록 공동체적 정의와 결합시킨 점이 실학의 위대한 성취다. 민생 안정 대책은 구체적인 통계와 현장의 실태를 바탕으로 설계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개혁안들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학문이 현실의 고통에 응답해야 한다는 지식인의 뜨거운 사명감을 보여준다.


실학자들은 상인과 수공업자를 천시하던 풍토를 비판하며 이들을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전문가로 재발견했다. 박제가는 우물물이 퍼내야 다시 차오르듯 재물도 활발히 유통되어야 국가가 부강해진다는 논리로 시장 경제의 활성화를 주장했다. 이들은 물류의 흐름을 막는 도로와 운송 수단의 미비함을 지적하며 수레와 배의 도입을 강력히 추진했다. 경제적 자립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조선이 청나라나 서구 열강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민생 안정은 단순히 구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스스로 생산하고 교역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실학자들의 경제 정책은 자본의 집중을 막고 중소 농민과 상인들을 보호하려는 공정의 가치를 담고 있었다. 이익과 도덕을 조화시키려 했던 이들의 노력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직면한 윤리적 문제들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실용적인 경제관은 관념의 껍데기를 벗고 알맹이가 있는 삶을 추구하려 했던 실학 정신의 핵심이다.


실학의 민생 안정 대책은 현대 한국의 복지 정책과 경제 정의의 철학적 뿌리를 형성하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정약용이 꿈꿨던 '경자유전'의 원칙은 해방 이후 토지 개혁의 정신으로 이어져 한국 근대화의 기틀이 되었다. 실학자들의 실용적 태도는 오늘날 한국 경제의 역동성과 "일단 해보자"는 추진력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이들은 기술 발전이 인간 소외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더 인간답게 만들어야 한다는 기술 인문주의를 제안했다. 이익 추구의 긍정은 개인의 창의와 노력을 존중하는 현대 민주 시민 의식과도 궤를 같이한다. 민생을 최우선으로 했던 이들의 뜨거운 마음은 오늘날 정치와 행정이 지향해야 할 본질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실학은 배고픈 백성에게 빵뿐만 아니라 존엄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찾아주려 했던 따뜻한 철학이었다. 이용후생의 정신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살아있는 과제로 남아 있다.



5. 새로운 사유의 맹아


실학은 외부의 강요나 영향이 아니라 조선 내부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한 '자생적 근대성'의 증거다. 이들은 성리학이라는 단일 이데올로기의 지배에서 벗어나 다원적이고 비판적인 사유를 전개하며 한국 철학의 주체성을 확립했다. 정약용은 주희의 해석을 넘어 공자와 맹자의 초기 유교 정신을 직접 대면하는 해석학적 단절을 통해 새로운 사상적 출구를 찾았다. 이러한 '원시 유교로의 회귀'는 낡은 권위를 부정하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었다. 실학자들은 조선이라는 특수한 현실을 학문의 기준으로 삼아 '조선학'의 기틀을 마련하는 주체적 자각을 보여주었다. 이들에게 진리는 먼 과거의 경전 속에 박제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발굴해야 할 보석이었다. 새로운 사유의 맹아는 관습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의 비명에 응답하려 했던 지식인들의 고뇌 속에서 피어났다.


수전 손택이 말한 '해석에 반하여'의 정신처럼 실학자들은 사물을 관념으로 덮어버리지 않고 실체 그 자체를 대면하려 했다. 정약전이 흑산도 바다에서 물고기의 비늘과 생태를 기록한 것은 가짜 의미의 세계를 버리고 진짜 현상의 세계를 택한 결단이었다. 이는 지성이 세계에 가한 복수인 '해석'을 거부하고 감각적 직접성을 회복하려는 현대 미학적 태도와도 연결된다. 실학자들은 인간을 우주의 부속품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자율적 주체로 세우기 위해 '상제'라는 인격신을 상정하거나 '기호'로서의 본성을 강조했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현대 실존주의적 사유가 이들의 성기호설과 자율적 의지 담론 속에 이미 싹트고 있었던 셈이다. 새로운 사유의 맹아는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낡은 안경을 벗어 던지고 투명한 눈으로 진실을 보려 했던 인식론적 혁명이었다. 이러한 주체적 사유 방식은 한국 철학이 서구 사조의 수입상에 머물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실학의 새로운 사유는 전문가로서의 개인을 발견하고 이들이 사회적으로 소통하며 연대하는 새로운 사회 모델을 제시했다. 홍대용과 박제가는 신분적 배경보다 개인의 재능과 기술이 존중받는 사회가 진정으로 부강한 사회임을 역설했다. 이들은 지식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백성이 공유하고 실천해야 할 공공의 자산임을 인식했다. 최한기는 세계와 정보를 교류하며 끊임없이 자기를 혁신하는 '통륜'의 인간상을 제시하며 근대적 시민의 원형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개방성과 소통의 철학은 닫힌 봉건 사회를 뚫고 나와 세계와 마주하려 했던 실학자들의 용기 있는 선언이었다. 새로운 사유의 맹아는 '민중'을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로 인식하기 시작한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 지식인은 더 이상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민중과 함께 진리를 생산하는 동반자로 거듭나야 한다는 자각이었다.


실학이 보여준 새로운 사유의 맹아는 현대 한국 철학이 주체적인 담론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영양분을 제공한다. 정약용이 보여준 시스템 설계의 지혜와 정약전이 보여준 현장 실증의 정신은 현대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두 가지 핵심 축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서구의 철학적 틀을 무조건 추종하기보다 우리의 현실을 철학적 문장으로 번역해낼 것을 요청한다. 새로운 사유의 맹아는 관념적 도그마가 지배하는 시대마다 다시 소환되어 비판적 지성을 일깨우는 강력한 힘이 된다. 실학은 한국인이 가진 실용적이고 역동적인 기질을 철학적으로 정립한 결과물이며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DNA다. 이들이 뿌린 씨앗은 비록 당대에 꽃피우지 못했을지라도 현대라는 대지 위에서 평등과 민주주의라는 열매로 맺어졌다. 실학의 주체적 사유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가장 든든한 지적 이정표가 될 것이다.



6. 실학이 한국 철학에 준 영향


실학은 한국 철학의 역사에서 성리학 일변도의 경직된 사유 체계를 해체하고 비판적 지성주의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실사구시'의 태도는 한국 지성사의 가장 소중한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실학자들이 정립한 평등한 인간관과 민본 사상은 구한말 위정척사파와 개화파의 논쟁 속에서도 개혁의 근거가 되었으며 동학 사상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주체적인 조선학의 기틀을 마련함으로써 한국인이 자기 역사를 스스로 해석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지적 자존감을 심어주었다. 실학의 정신은 일제 강점기 국학 운동의 뿌리가 되었고 해방 이후 근대 국가 건설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한국 철학이 관념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사회적 실천과 시대적 소명을 고민하게 된 것은 실학이 남긴 지대한 영향이다. 실학은 한국 철학의 지평을 인간 중심, 현장 중심, 미래 중심으로 넓혀준 위대한 전환점이었다.


실학의 이용후생 정신은 현대 한국이 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정신적 동력으로 작용했다. 실용을 중시하고 결과를 통해 가치를 증명하려는 한국인의 태도는 실학자들이 강조했던 도구주의적 지식관과 맥을 같이한다. 박제가의 소비론이나 정약용의 공동체 경제 모델은 현대 사회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고민하는 경제 철학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실학은 지식이 전문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편적 인류의 삶을 개선하는 공공재가 되어야 함을 일깨워주었다. 과학적 합리주의를 전통 철학과 조화시키려 했던 노력은 현대 한국의 교육과 학문 체계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실학이 한국 철학에 준 영향은 단순한 이론적 계승을 넘어 한국인의 삶의 방식과 가치 판단의 기준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우리는 실학을 통해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인문주의적 기술 문명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현대 한국의 민주주의와 시민 사회의 성장은 실학자들이 뿌린 평등과 주체적 사유의 씨앗이 열매를 맺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정약용이 강조한 자율적 의지와 책임 있는 주체로서의 인간상은 오늘날 민주 시민이 갖춰야 할 핵심적인 덕목이다. 실학자들의 비판적 지성은 권력의 횡포에 저항하고 사회의 모순을 개선하려는 한국 시민 운동의 정신적 기틀이 되었다. 이들은 학문이 소수의 지배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다수 민중의 고통을 닦아주는 손수건이 되어야 함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실학이 남긴 '아래로부터의 시선'은 현대 한국 철학이 소외된 이웃과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개방적이고 소통하는 자아를 지향했던 이들의 태도는 글로벌 시대에 한국 철학이 세계와 대화하는 방식에 영감을 준다. 실학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현재진행형의 유산이다.


실학은 한국 현대철학이 서구 철학의 번역을 넘어 우리만의 주체적 담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강력한 가능성을 증명했다.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가 보여준 시스템적 사유와 현장 실증의 결합은 현대의 융복합적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통합적 통찰을 제공한다. 실학은 우리에게 우리 시대의 '애절양'이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묻고 그 고통에 응답하는 학문을 하라고 명령한다. 이들이 남긴 질문들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에서도 인간다운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데 중요한 나침반이 된다. 실학의 영향은 텍스트의 해석에 머물지 않고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뜨거운 열망으로 한국 철학의 심장을 뛰게 한다. 우리는 실학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 안에 내재한 비판적 이성과 실천적 지혜를 재발견하게 된다. 실학이 한국 철학에 준 진정한 영향은 우리 스스로가 역사의 주체임을 깨닫고 새로운 미래를 써 내려갈 용기를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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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은 조선 후기라는 낡은 질서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실제적인 혁명이었다. 조선후기 실학을 통해서 한국 현대철학의 가장 튼튼한 뿌리가 만들어진다. 정약용의 거시적 설계와 정약전의 미시적 관찰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고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두 가지 위대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이들은 관념의 감옥에 갇힌 진리를 해방시켜 백성의 삶터와 바닷가 현장으로 끌어내어 지식의 민주화를 실천했다. 실학자들이 꿈꿨던 평등하고 공정하며 기술이 인간을 돕는 사회는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미완의 과제다. 이들의 사유를 통해 우리는 서구 사조의 무분별한 수입에서 벗어나 우리 현실에 뿌리박은 주체적인 철학을 수립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는다. 실학은 지식이 권력의 장식이 아니라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사랑의 도구가 되어야 함을 영원히 기억하게 한다.


수전 손택이 갈망했듯 해석의 옷을 벗고 세계의 실체를 맨몸으로 대면했던 실학자들의 용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우리는 넘쳐나는 정보와 편향된 해석 속에서 다시금 실학의 실사구시 정신을 소환하여 투명한 눈을 회복해야 한다. 실학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를 여는 열쇠로서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200년 전 강진의 초당과 흑산도의 바닷가에서 시작된 이 지적 투쟁은 이제 21세기 한국 철학의 새로운 주체성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는 실학자들의 고뇌와 열정을 이어받아 우리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고 더 나은 공동체를 설계하는 실천적 지성인이 되어야 한다. 실학의 여행을 마치며 우리는 이제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진리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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