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읽는 한국현대철학 1장_철학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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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이란 말에 낯설어지기
2. 우리철학사의 전환, 중세에서 근(현)대로
3. 다르게 바라보는 '철학'과 '현대
4. '현대'를 억압한 '현대'와 우리 철학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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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철학을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철학’이라는 용어와 그 개념은 사실 특정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산물이다. 어떤 개념이라도 반드시 ‘장소’topos와 ‘시간’tempo를 갖는다. 그래서 개념들이 모여서 철학이 된다면 철학은 특정 장소와 특정 시간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니 철학이 어떤 역사,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자들은 항상 arche라고 하는 보편적인 원리를 찾으려고 했다. 그걸 플라톤은 ‘이데아‘라고 불렀고, 중세시대에 가면 ’진리개념’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현대까지 넘어오게 되면 ‘보편성‘이 ‘합리성‘으로 둔갑하게 된다. 그 과정을 분석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철학’이라고 생각하고, 또한 ’진리’처럼 생각하는 것들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것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근현대사에서 철학이 어떻게 수입되고 정착되었는지 살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오늘부터 나이오트와 함께하는 ‘철학산책‘에서 ’처음읽는 한국현대철학’을 시작한다. 이번주에는 철학사 전반을 살펴보고, 다음주부터 성리학을 비판하면서 실학을 가져온다. 이 과정에서 ’철학’이라는 단어 자체로익숙하게 사용해 왔는데 이 단어의 낯선 기원을 추적하는 것에서 우리의 사유를 시작해야 한다. ‘근대화 담론’에서 누구나 알듯이, 서구의 사유 체계가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오는 과정은 결코 평탄하거나 자생적이지 않았다. 그 과정 속에는 식민지적 상황과 근대화라는 거대한 파도가 아직도 넘실대고 있다. 언제까지 외국작가들과 외국 철학서적을 ’진리‘처럼 모시고 살 것인가? 우리는 이제 당연하게 여겼던 철학의 정의를 다시 묻고 그 이면에 숨겨진 역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만의 고유한 사유를 고유한 방법론으로 풀어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지성사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 동반되어야 한다. 현대 한국 철학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입구에 서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성(Reason)의 계보: 질서와 보편성의 확립
고대 그리스의 로고스(Logos) 중심주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흐름이다. 세계에는 불변하는 이성적 질서가 존재하며, 인간은 이성을 통해 진리(이데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과정에서 육체적 욕망이나 감정은 이성이 다스려야 할 하위 요소로 규정되었다.
근대의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데카르트는 이성을 '존재의 근거'로 세웠고, 칸트는 이성을 통해 인간이 도덕과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시기 이성은 미신과 무지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는 절대적인 빛의 역할을 수행했다.
헤겔의 절대정신과 역사적 이성: 이성은 개인을 넘어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원리가 되었다. 헤겔은 역사가 이성의 자기실현 과정이며, 결국 모든 비합리적인 것들은 이성의 변증법적 전개 속에서 합리화된다고 주장했다.
비이성(Unreason)의 계보: 타자성과 생명력의 복권
생의 철학과 의지의 발견: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이성 밑에 숨겨진 맹목적인 '의지'를 포착했다. 니체는 차가운 이성이 생의 역동성을 억압한다고 비판하며, 도취와 예술적 본능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적 가치를 이성보다 우위에 두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정신분석: 인간의 의식(이성)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거대한 무의식과 리비도(성적 에너지)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를 통제하는 합리적 주체라는 믿음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렸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타자의 철학: 푸코, 데리다, 들뢰즈 등은 이성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어 광기, 여성, 신체 등을 억압해 온 역사를 비판했다. 이들은 이성의 보편성 대신 개별성, 우발성, 그리고 이성에 포섭되지 않는 '차이'와 '타자성'을 옹호했다.
지성사적 관점에서 근대라는 시대적 구분은 철학의 정의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근대철학은 이전 시대의 신학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강조하며 등장했다. 한마디로 Rule of God에서 Rule of Law로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서구 사회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이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서구의 근대성을 '이식'받는 과정에서 철학이라는 개념을 수용했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학문 체계와 새로운 서구 학문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긴장과 충돌이 발생했다. 본 글은 이러한 역사적 굴곡을 따라가며 철학이 우리 삶에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고찰한다. 단순히 서양 철학자들의 이론을 학습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수용된 토양을 분석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의 모습이 과연 우리 고유의 사유를 담아내기에 적절했는지 묻게 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철학의 역할과 의미도 함께 변해왔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박제된 지식이 아닌 살아있는 사유로서의 철학을 만나게 될 것이다.
철학이라는 용어가 우리에게 주는 중압감은 때때로 본질적인 사유를 방해하기도 한다. 대학의 분과 학문으로 고착된 철학은 대중의 삶과 동떨어진 채 권위를 쌓아온 측면이 있다. 하지만 철학의 본래 의미는 지혜를 사랑하고 삶의 근원적 문제를 고민하는 태도에 있다. 이 글은 제도권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고 그 범위를 확장하고자 한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왜곡된 우리 철학사의 이면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서구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으로 세계를 해석할 방법은 무엇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철학이라는 말 자체가 내포한 낯섦을 직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과거의 지성들이 겪었던 고뇌와 시행착오를 살피며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이 여정은 결국 '우리 철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희망적인 탐색으로 이어질 것이다. 독자들은 이 글을 통해 철학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새롭게 보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철학’이라는 단어는 우리 주변에 실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번역을 통해 들어온 추상적 개념이다. 우리는 ‘호랑이’와 ‘사자’의 비유를 통해서 철학을 받아들인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호랑이는 우리 곁에 실존했던 동물이기에 이름과 대상이 일치하지만 사자는 본 적 없는 동물을 상상하며 이름을 먼저 받아들인 경우다. 서구의 'philosophy' 역시 우리에게는 사자와 같이 낯선 존재였으며 번역어로서 먼저 도착했다. 우리는 서구 철학을 접할 때 익숙한 전통 학문의 기준에 비추어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서구 철학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우리 전통의 가치를 저평가하게 만들었다. 낯선 것을 받아들일 때 익숙한 기준을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때로는 오해를 낳기도 한다. 결국 철학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에게는 일종의 번역된 외부 세계의 산물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우리가 당연시해 온 철학적 권위를 해체하는 첫 번째 단계가 된다.
역사적으로 ‘철학’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의 근대 지식인 니시 아마네에 의해 확립되었다.
그는 서구의 사유 체계를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이해하기 위해 ‘희철학’ 또는 ‘철학’이라는 용어를 고안했다. 이 용어는 이후 유길준 등에 의해 한국에 소개되었으며 점차 보편적인 학문 용어로 정착되었다. 초기에 지식인들은 서구의 철학을 전통적인 ‘이학’이나 ‘궁리학’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그들은 동서양의 사유가 본질적으로 같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두 체계를 연결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서구 근대철학이 과학혁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변화가 생겼다. 서구 철학은 단순한 도덕적 수양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성격이 강한 학문이었다. 니시 아마네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전통 학문과 서구 철학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번역의 역사는 우리가 사용하는 학문적 도구들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번역어로서의 철학은 단순한 이름의 교체를 넘어
지적 패러다임의 거대한 전환을 의미한다.
서구의 근대 철학은 합리성과 객관성을 무기로 전 세계의 사유 체계를 통합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이러한 서구의 우월성을 동경하며 그들의 철학을 근대화의 필수 조건으로 여겼다. 그들에게 철학은 단순히 지식의 종류가 아니라 근대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통로와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우리 고유의 정신적 유산을 구시대적인 유물로 치부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다. 서구 철학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유들은 '철학'이라는 이름표를 달지 못한 채 변두리로 밀려났다. 우리는 철학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익숙해진 철학이라는 단어에서 낯섦을 느끼는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는 외부에서 주어진 틀을 의심하고 우리만의 철학적 자리를 되찾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이제 우리는 철학이라는 용어가 담고 있는 역사적 무게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한국 철학사에서 근대로의 전환은 자발적인 진화라기보다 일본과 같은 외부 세력에 의한 강압적 변동의 성격이 짙다. 노론과 소론으로 나누어져서 치열한 논쟁을 벌인 조선 시대의 지식계를 지배하던 성리학은 근대라는 새로운 파도 앞에서 급격히 힘을 잃어갔다. 특히 경성제국대학의 설립은 철학이 대학이라는 제도권 교육 체계 안으로 편입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대학이라는 공간은 철학을 소수의 전문가들이 다루는 엄밀한 학문으로 규정하며 대중과 분리했다. 과거의 학문이 수양과 실천을 강조했다면 근대적 철학은 분석과 논리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통적인 학문 공동체는 붕괴하고 서구식 학문 체계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지식의 중심이 향교와 서원에서 대학으로 이동하면서 학문의 성격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다. 이는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권위를 부여했지만 동시에 전통과의 단절이라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우리 철학의 근대는 이렇게 뒤틀린 구조 속에서 위태로운 출발을 알리게 되었다.
식민지 시기의 철학 수용은 일본이라는 필터를 거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띈다. 유길준과 같은 초기 지식인들이 일본을 통해 서구 철학을 접하며 우리 사회에 근대적 사유를 이식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일본의 영향력은 단순히 지식의 전달에 그치지 않고 학문적 체계와 제도 전반을 지배했다. 경성제국대학 철학과는 일본인 교수들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서구 철학의 특정 학파만이 선별적으로 소개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한국 철학계가 독자적인 사유를 전개하기보다 일본이나 서구의 이론을 수동적으로 수용하게 만들었다. 전통적인 유불선 사유는 미신이나 전근대적인 것으로 낙인찍혀 학문의 영역에서 배제되었다. 지식인들은 서구의 근대성을 동경하면서도 식민지라는 현실 속에서 끊임없는 정체성 혼란을 겪어야 했다. 지식의 권력이 외부에서 결정되는 상황에서 자생적인 철학적 성찰이 나오기는 매우 어려웠다. 결국 우리 근대 철학사는 수용과 모방의 역사라는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근대로의 전환은 지식인들에게 이성의 힘을 강조하는 데카르트적 철학을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하지만 이 보편성이라는 가면 뒤에는 서구 중심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서구의 근대는 자신들을 역사의 종착지로 설정하며 타 지역의 문화를 미개하거나 낙후된 것으로 규정했다. 우리 지식인들 역시 이러한 논리를 내면화하며 우리 전통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우를 범했다. 학문은 삶과 현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어야 하지만 당시의 철학은 제도적 지위를 얻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공인된 철학 수업은 오직 대학 강의실 안에서만 허용되었고 삶의 현장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이러한 흐름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철학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지적 활력을 떨어뜨렸다. 지식의 뿌리가 역사적 현실과 분리될 때 학문은 공허한 말장난에 그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근대라는 이름으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차갑게 분석해야 한다. 과거의 단절을 메우고 우리만의 근대성을 정립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는 이유다.
일반적으로 철학자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관련 논문을 쓰는 사람으로 인식되지만 저자는 이를 협소한 정의라고 비판한다. 인간과 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고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모든 이를 철학자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박은식, 신채호, 나철, 최제우 등은 학위나 직함과 상관없이 진정한 의미의 철학자들이다. 그들은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며 새로운 세상을 향한 철학적 대안을 모색했던 인물들이다. 서구의 철학적 문법에 갇히지 않고 우리 현실에 기반한 사유를 전개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들의 활동은 문학, 역사, 종교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종합적인 지성 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철학을 분과 학문의 감옥에서 해방시켜 삶의 현장으로 끌어낸 셈이다. 이러한 접근은 박제된 철학사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사상사를 복원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현대라는 시간적 개념 또한 단순히 과거와 대립되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식을 담은 가치로 해석되어야 한다.
근대(modern)의 어원인 'modernus'는 '새로움'을 뜻하며 이는 과거에 대한 비판과 미래를 향한 희망을 내포한다. 진정한 현대성은 이전 시대의 관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쇄신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우리 역사에서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근대는 서구의 제국주의적 압력 속에서 뒤틀린 채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 지식인들은 서구의 근대성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기보다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변형하려 노력했다. 그들에게 현대성은 단순히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우리 땅에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서구에서 이식된 근대와 우리가 꿈꾸었던 근대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서구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현대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현대는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끊임없는 과정인 것이다.
철학사와 일반 역사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 지성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열쇠가 된다. 서구 철학사는 대개 시대 구분을 따라 서술되지만 우리 철학사는 역사적 현실과 지적 운동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15~16세기 서유럽이 르네상스를 통해 근대를 모색했듯 우리도 19세기 말 거대한 사회적 위기 속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데카르트가 이성을 강조하며 근대의 문을 열었듯이 우리 지식인들도 합리적 사유를 통해 전통의 한계를 넘으려 했다. 하지만 식민지라는 특수한 상황은 우리 철학이 보편적인 근대성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을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 철학의 독특한 가치가 드러나게 된다. 외부의 압력에 저항하며 자생적인 사유를 일구려 했던 지적 분투를 기록하는 것이 진정한 한국 철학사다. 우리는 이제 서구 철학의 눈으로 우리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고유한 근대적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다르게 바라보는 철학'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가르침이다.
_이식기_경성제국대학의 설립과 식민지 관료 학문의 형성 (1924~1945)
목적과 배경: 일제는 조선인들의 고등교육 요구를 무마하고, 효율적인 식민 통치를 수행할 충성스러운 엘리트 관료와 기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했다.
학문적 특징: 일본을 거쳐 변형된 독일식 강좌제(Chair system)를 도입하여, 학문의 자유보다는 국가 목적에 부합하는 연구에 집중했다. 특히 통치 핵심 인력을 만드는 법문학부와 위생·관리를 담당하는 의학부 중심의 기형적 구조로 출발했다.
역사적 유산: 이 시기를 통해 학문이 진리 탐구라는 본연의 목적보다 국가 권력에 종속되거나 통치 도구로 활용되는 구조적 기틀이 마련되었으며, 이는 해방 후 한국 대학 체제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_재편기_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국대안)과 체제 전환 (1946~1950년대 초)
통합과 목적: 해방 직후 미군정은 경성제국대학을 모체로 삼고, 산재해 있던 여러 관립 전문학교를 하나로 묶어 근대적인 종합대학 체제를 구축하려는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을 강행했다.
체제의 변화: 과거 일본식의 폐쇄적인 강좌 체제에서 탈피하여, 학과 중심의 미국식 부과(Department) 체제로 교육 행정의 틀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는 학문의 개방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시도였다.
이념적 갈등: 이 과정에서 대학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학내 세력과 미군정 간의 격렬한 대립(국대안 파동)이 발생했으나, 결국 반공주의와 국가 재건을 우선시하는 국가 주도의 근대 대학 모델로 확정되며 안정화되었다.
_고착기_미네소타 프로젝트와 관악 캠퍼스 종합화 (1950년대 후반~1975)
미네소타 프로젝트: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 아래 실시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의학, 농학, 공학 등 실용 학문의 커리큘럼과 연구 방식이 미국식 표준으로 전면 재편되며 한국 학문의 근대화가 가속화되었다.
종합화와 전문성: 1975년 서울대학교의 모든 단과대학이 관악 캠퍼스로 집결하면서, 물리적 통합과 함께 각 분과학문의 세분화와 전문화가 제도적으로 완성되었다. 이로써 현대적 대학 구조가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한국학의 제도화: 서구 학문의 수용에 그치지 않고, 식민 사관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국사, 국문, 국어학 등 이른바 '국학' 분야가 강력한 분과로 정립되어 대학 내 학문적 자존심과 민족적 정체성을 대변하게 되었다.
한국의 근대는 식민지 지배라는 거대한 폭력 아래 '이식된 현대'가 자생적 흐름을 억압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서구의 학문 체계가 정답으로 제시되면서 우리 내부에서 싹트던 근대적 징후들은 비과학적이거나 미개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특히 동학이나 대종교 같은 자생적 사유들은 제도권 철학의 경계 밖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서구의 근대성을 도구로 활용했으며 이는 우리 지성사에 깊은 굴곡을 남겼다. 우리가 누리는 현대적 풍요 뒤에는 이러한 주체적 사유의 상실이라는 아픈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제도화된 철학은 이러한 억압의 구조를 해체하기보다 오히려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분과 학문의 벽은 높았고 삶의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철학적 요구들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이러한 '현대에 의한 현대의 억압'은 우리 철학이 대중과 멀어지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이 억압의 사슬을 끊고 가려졌던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우리 철학의 가능성은 끊임없이 꿈틀대고 있었다. 신채호, 나철 등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들은 서구 중심의 근대성에 매몰되지 않고 우리만의 길을 모색했다. 그들은 전통적인 유불선 사유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면서도 서구의 합리성을 결합하는 지적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사유는 정교한 논리 체계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실천적 동력을 지닌 살아있는 철학이었다. 기존의 전통에도, 서구적 전통에도 안주하지 않는 '제3의 길'을 개척하려 했던 그들의 노력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영감을 준다. 이들은 지식의 뿌리를 역사적 현실에 두었기에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주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해결할 열쇠는 서구의 최신 이론이 아니라 바로 이들의 사유 속에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이들의 철학적 시도는 미완으로 남았지만 그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철학의 미래는 과거의 실패를 되돌아보는 데서부터 다시 시작될 수 있다.
결국 우리 철학의 진정한 가능성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발견하고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현대'라는 말의 의미가 남이 만든 시대를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미래를 일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날의 자성적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할 때 비로소 새로운 희망의 문이 열리게 된다. 철학은 과거의 유물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미래를 앞당겨 사는 예언적 활동이어야 한다. 우리 안의 근대적 특성들을 다시 살피고 이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제도권 철학의 한계를 넘어서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철학적 사유가 회복되어야 한다. 우리 지성사에 새겨진 질곡과 상처를 치유하고 주체적인 철학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 세대의 소명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새로운 철학자들의 모습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더 넓은 세상과 당당하게 마주할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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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하고 하고 있는 사유의 틀이라면, 조금 더 구조화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철학을 기존의 철학적 과정을 거쳐서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앞으로 실학과 동학, 대종교, 양명학 등등 180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의 철학자들의 사상을 바라볼 것이다. 이를 그냥 읽는게 아니라 서양의 사유를 따라가다가 어느순간은 앞서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된다. 서양의 철학은 기본적으로 존재론으로 시작한다. 무엇이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것이다. 파리나 은행나무가 존재이기도 하지만 양자역학의 원소나 행성적 사고에서는 화성이나 목성이 존재로 보이기도 한다. 그럼 그렇게 존재로 인식되는 것들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바로 인식론이다. 그럼 그 인식에 따라서 어떤 방향으로 그 존재들이 움직여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 즉 가치론이 만들어진다. 그 이후에는 당연히 실제 행동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정이 있고나서야 비로소 '사건'을 우리가 정의할 수 있게 된다. 오늘 배운 것들을 그럼 이렇게 정리해보자.
존재론 (Ontology): 실체 없는 '사자'와 억압된 '호랑이'
무엇이 존재하는가: 한국 근대 철학의 존재론적 위기는 실제 존재하는 우리 고유의 사유 전통(호랑이)이 부정되고, 이름만 존재하는 외래의 개념(사자, 즉 번역어로서의 철학)이 근본 실체로 군림하면서 시작되었다.
실체의 전도: 서구의 존재론은 물질과 정신의 구분을 명확히 하며 들어왔으나, 식민지 조선에서는 '근대적 지식'만이 유효한 실체로 인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조선 지식인들이 수천 년간 탐구해 온 '이(理)'나 '도(道)'의 존재론적 지위는 '미신'이나 '구습'으로 격하되어 소멸의 위기를 겪었다.
자생적 존재론의 태동: 최제우의 '시천주' 사상은 인간 내면에 하늘이라는 신성한 실체가 존재함을 선언함으로써, 식민지 권력이 규정한 '노예적 실체'를 거부하고 주체적 존재론을 세우려는 시도였다.
인식론 (Epistemology): 이식된 지식과 타자화된 시선
어떻게 아는가: 유길준의 『서유견문』 이후 한국의 인식론은 '서구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는 법'을 학습하는 과정이었다. 지식의 기원은 철저히 서구와 일본에 있었으며, 한국 철학은 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고 해석하는 '주석적 인식론'에 머물렀다.
인식의 단절: 경성제국대학의 설립은 지식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기준을 '대학'이라는 제도권 안으로 가두었다. 이로 인해 삶의 현장에서 체득되는 실천적 지식은 배제되었고, 오직 서구의 논리적·과학적 방법론만이 진리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로 승인되었다.
인식의 주체 회복: 신채호가 제시한 '아(我)와 비아(非我)'의 관계 설정은, 외부의 압력에 대응해 스스로를 정립하는 주체적 인식론의 발현이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수용하는 것을 넘어 인식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를 묻는 치열한 자기 성찰의 과정이었다.
가치론 (Axiology): 형용모순의 근대와 당위의 상실
무엇이 가치 있는가: 식민지 지배하에 이식된 근대는 자유와 주체라는 핵심 가치가 거세된 '형용모순'의 상태였다. 서구에서는 '선(善)'으로 칭송받는 근대적 가치들이 조선에서는 지배와 억압의 도구로 변질되었다.
가치의 전도: 전통적인 도덕적 가치관이 붕괴된 자리에 일본식 제국주의 가치와 서구의 물질문명이 급격히 유입되었다. 철학은 더 이상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당위의 영역을 논하지 못하고, 지배 질서를 정당화하는 논리적 기술로 전락했다.
가치의 재정립: 나철의 대종교 사상은 민족의 뿌리에서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여 제국주의의 가치 공세에 저항하려 했다. 이는 도덕적 자긍심을 회복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가치론적 질문에 주체적으로 답하려는 노력이었다.
행태론 (Behavioralism): 강단 철학의 객관주의와 실천의 거세
관찰 가능한 행동: 경성제국대학 이후의 한국 철학은 인간의 내면적 고뇌나 시대적 고통보다는 객관적으로 검토 가능한 '이론의 정합성'에만 몰두하는 행태론적 경향을 띠었다. 철학은 삶의 실천에서 분리되어 고립된 학문적 데이터가 되었다.
가치와 사실의 분리: 서구 철학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지식인들은 '지식 자체(사실)'와 '조선의 현실(가치)'을 분리했다. 이는 지식인들이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외면하고 안전한 상아탑 안의 논리 게임에만 머물게 하는 학문적 기제로 작용했다.
행태론을 넘어선 실천: 텍스트가 주목하는 최제우나 신채호 등의 사유는 관찰 가능한 행동을 넘어,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거는 '실천적 행위'를 강조했다. 이들은 철학을 데이터화된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폭발적인 에너지로 파악했다.
개체론 (Individualism / Atomism): 파편화된 주체와 저항적 아(我)
부분과 전체: 근대 철학의 유입과 함께 전통적인 공동체적 사유가 해체되고 개별적 '자아'가 강조되었다. 그러나 식민지적 상황에서 개체는 자율적인 주체가 아니라 제국주의라는 거대 기계의 부속품(파편)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방법론적 개체주의의 이식: 대학 교육을 통해 인간을 사회의 부속 요소로 분석하는 서구적 개체론이 보급되었으나, 이는 주체적인 시민을 양성하기보다는 통제하기 쉬운 개별자를 만드는 데 활용된 측면이 크다.
역동적 개체로서의 주체: 신채호의 '아'는 고립된 파편이 아니라 외부(비아)와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자신을 완성해가는 역동적인 개체다. 이는 전체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주체성을 지닌 개별적 자아를 확립하려는 시도였다.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책은 '제국대학의 조센징'이다.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이 책을 보니깐 제국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1000명정도 되었고 그 사람들이 결국 친일파가 되기도 하고 독립운동가가 되기도 하고 전문지식인으로서 학자가 되기도 하는데, 이 모두가 제국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지성사는 여기에서 결국 재편되고 형성되고 이어졌다. 이러한 이해가 있다면 이제 제국대학부터 시작해서 일본의 학문체계와 학제 그리고 분과학문의 운영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시작해볼 수 있다. 일단은 한국현대철학을 처음으로 시작하니깐 위에서 잠깐 살펴본 철학의 관점에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더 많은 고민들이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우리만의 철학을 정립하고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존재론 (Ontology): '학문적 존재'의 자격과 호랑이의 거세
제국대학 내 조선인 유학생들은 일본인이 설계한 근대적 학문 체계 안에서만 비로소 '지식인'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전통적인 유교 지식은 학문적 실체가 없는 과거의 잔재일 뿐이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철학'이라는 낯선 용어가 들어오며 전통적 '이학(理學)'이 소멸한 과정과 일맥상통한다. 제국대학이라는 공간은 조선의 '호랑이(자생적 사유)'를 박제하고, 일본식으로 길들여진 '사자(이식된 철학)'를 유일한 실체로 인정하는 존재론적 세뇌의 장이었다.
인식론 (Epistemology): 이중의 타자화와 굴절된 시선
조선인 엘리트들은 일본을 통해 서구 문명을 배우는 '이중의 번역' 과정을 겪었다. 그들은 서구의 눈으로 일본을 보고, 다시 일본의 눈으로 조선을 바라보는 굴절된 인식 체계를 내면화했다.
유길준이 서구를 견문하고 돌아와 지식을 전파한 방식이나 경성제국대학의 커리큘럼은 모두 이러한 '타자의 인식론'을 기반으로 한다. '제국대학의 조센징'들이 습득한 철학적 진리는 조선의 현실에서 길어 올린 것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필터를 거쳐 들어온 '수입된 진리'였다.
가치론 (Axiology): 출세의 사다리와 '형용모순'의 내면화
제국대학에 들어간 조선인들에게 근대적 가치는 곧 '문명화'와 '출세'를 의미했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차별받는 식민지인이라는 모순적 가치 아래 놓여 있었다.
텍스트에서 언급된 '형용모순의 근대'는 제국대학 조선인들의 내면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적 가치를 배우면서도, 식민 지배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철학적 기제를 학습해야 했던 그들의 가치론적 분열은 한국 현대 철학이 주체성을 잃고 방황하게 된 심리적 기원이 되었다.
개체론 (Individualism): 파편화된 엘리트와 소외된 민중
제국대학은 조선인들을 개별적 엘리트로 양성하여 조선의 전통적 공동체로부터 분리했다. 이들은 개별적 성취를 통해 주체가 되고자 했으나, 결국 제국의 체제를 유지하는 파편화된 관리자로 기능했다.
신채호가 강조한 '아(我)'가 저항적이고 역동적인 개체였다면, 제국대학의 조선인들은 시스템에 순응하는 '방법론적 개체'에 가까웠다. 이들이 주류 철학계를 형성하면서, 민중의 삶과 연결된 최제우나 나철 같은 '전체적·공동체적 사유'는 더욱 철저히 배제되었다.
행태론 (Behavioralism): 지적 기예로서의 철학과 실천의 거세
제국대학의 교육은 객관적 지식과 전문성을 강조하며, 지식인이 정치적 실천이나 가치 판단에 개입하는 것을 경계했다(순수 학문의 위장).
이러한 학풍은 해방 이후 한국 철학계가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고 이론의 정합성에만 매몰되는 '행태론적 경향'을 낳았다. 제국대학 출신 학자들이 구축한 '강단 철학'은 신채호나 최제우처럼 목숨을 걸고 시대와 맞서는 '행위'보다는, 서구 이론을 정교하게 분석하는 '기예'를 철학의 본령으로 삼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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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는 '철학'이라는 낯선 이름이 우리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살펴보았다. 번역의 과정에서 발생한 오해와 식민지적 상황이 남긴 상처는 생각보다 깊고 넓었다. 하지만 그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우리만의 사유를 일구려 했던 지적 분투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철학은 단순히 서구의 이론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문제를 우리의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이다. 우리는 제도권 학문이 설정한 좁은 울타리를 넘어 더 넓은 철학의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의 인물들이 보여준 주체적인 태도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한 철학인지 다시 묻게 한다. 이제 우리는 외부에서 주어진 정답을 찾는 대신 우리 내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이 글을 통해 얻은 성찰이 독자들의 삶 속에서 작은 철학적 씨앗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의 사유가 모여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만들 때 비로소 우리 철학은 완성될 것이다.
우리가 탐구한 철학의 역사는 과거에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근대라는 이름으로 억압받았던 우리 고유의 정신들을 복원하는 일은 현재진행형의 과제다. 그리고 어쩌면 역사가 아직 풀지못한 숙제를 우리에게 던져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생적 근대화'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 깨달아서 다시 자신들의 방식으로 근대화를 이루어갈 수 있을까? 더욱이 포스트모던이라는 파격으로 건너뛰지 않고 말이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볼 때 진정한 자유가 시작된다. 그동안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문제들을 철학적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철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바로 이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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