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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추억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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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Feb 17. 2017

이야기와 정체성

연희동에서 기억들

문득, 어린시절을 떠올려 본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의 상태에서


조금씩 기억속에 남아

있는 과거의 사건들


어릴적에는 연희동 산꼭대기에 살았다

그 때,  사람들은 매우 가난했고


우리집은 항상 비가 쳐들어왔고

쥐들은 방틈새를 기어다녔다


그리고 화장실은 공동화장실이었다

산동네, 흔히 말하는 산동네의 생활은


나의 어린시절에 많은 추억과 아픔 그리고 삶의 대한 철학들을 제공해준 터전이었다


동네사람들은 화투를 치거나

가죽을 붙여서 작은 돈을 마련하는 듯 하였고


다른 생계수단이 없어서

막노동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저녁이 되면

술을 드시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거나


화투판에서 싸움이 일어나서  바로 옆집의 세들어 하는 사람들을 타박하는 일들도 비일비재 했다




가난은 낭만적이지 않다

가난함 가운데 오히려 인간의 본성이 나온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선한 사람이 될 때는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길 때이다


다소 나의 인식이 가난'이란

것을 그려내고는 있지만 


아무튼 1990년대의

가난한 산동네의 삶이란 이런 것이었다


나는 태권도와 웅변을 배웠고, 어른들은 조금은 찢어진 내 눈을 보면서


마지못해하는 칭찬은, 넌 커서 외교관이나 정치가가 되면 잘 될꺼같아


너의 속마음을 숨길 수 있으니

라는 식이었다


그리고 곧 이어 경인이는 심부름을 참 잘해라면서 술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물론 그 아저씨와 아주머니 애들은 큰방에서 놀고 있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심부름을 많이 다녔다


아마도 어머니가 착하셔서 시키기 편하셨나보다한다




보통 서민들의 자존감은

호칭으로부터 나오는데


이씨아저씨, 재니네 아버지,

성수형네 아저씨등 등


항상 자신의 이름이 호칭으로

거론되는 적은 없었다


나는 어릴적에 영민'이라고 불렸는데

어머니는 항상 영민이 엄마였고


영민이 엄마하면 동네이서는  착하고 일잘하고, 손이 크고, 음식잘하기로 유명했다


가끔, 사람들이 모여서 남산을 함께 놀러갔던 기억들이 있다


남산을 올라가다보면 지금도

2갈래로 나누어진 큰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서 동네형들과

사진을 찍던 기억이 있다


겨울이 되 공동수도가 얼어서

물이 안나온적도 많았다


그래서 얼어버린 수도를 따뜻한 물을 끊여서 녹여야 했던 적도 많았다


샤워는 당연히 할 수 없느니,

그냥 목욕탕에 가서


2주일에 한번정도는

목욕을 하고 오는 정도였고


목욕이 끝난 후에는 항상 바나나우유가  삶의 의미처럼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 때는 정말이지  삶이라는 게, 존엄이나 귀중함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고


그냥 살아가는 중에 어떤 날은 간혹 흐린하늘에 태양처럼 희망'이 보이기도 했지만, 길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님이 할 수 있는 말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라'였는데


나는 그 흔한 학원한번 가보지 못했기에

영어와 수학은 항상 뒤쳐졌었다


그래도 국어와 국사는 잘하는 편이었는데

머, 인생이란 것이 소중하지 않게 느끼지는 때는

 

그냥 이런 건 이런거구나 하면서

받아들였던 기억이 있다


물론 준비물을 가지고

 와야하는 시간에


특히 실로폰 같은 고의 준비물은 매우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동네 형들한테 빌려서 가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고

사달라고 하자니, 집에 쌀 부족한 것도 알았으므로

 

그냥 잊어 먹고 왔거나

잃어버린척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친구들은 그 때,

잘사는 친구도 있었는데


조영민이란 친구는  항상 자기보다

나를 생각해준 친구였다


한때는 이 친구때문에

내가 태어났나보다 할 정도로


그런데 아쉽게도 3학년 때

전학을 가게되어서 아쉬웠다




어렴풋한 기억들이

 마구 밀려드는 밤이다


가난'에 대해서 100분의 1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조세희씨가 쓴


'난쟁이가 쏘아올린 장은 공' 정도는

머 그냥 일상이지


 낭만이나 흥미로운

소설의 주제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라는 고민은 해 본 적이 없었


다만 주어진대로 기쁘면 기쁜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살아가는 거지


어린시절에는 그랬었더라

방화동으로 이사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흥미로운 일들은 방화동으로 이사오던 6학년 초등학생 시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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