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배타성
가끔 그런 책이 있다
몇장을 읽어도 계속 머리에 맴도는.
볼프의 책은 읽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그 주제는 항상 마음 깊숙히 박힌다
배제와 포용으로 독서모임을 한지도
벌서 2년이 다 되어 간다
6개월동안 독서모임을 하면서
누군가를 배제한다는 것과
누군가를 포용한다는 것의
차이를 고민했던 것 같다
나의 정체성에서 나의 행동이
무한하게 분출되니까
나는 누구인가에서부터
배제와 포용은 시작된다
20150830_일요독서모임
미로슬라브볼프_배제와 포용
머릿말, 서론
들어가기
- 배제와 포용'이란 주제를 처음 접할 때 우리는 어떤 느낌을 갖는가?
- 우리가 포용하고 배제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 우리가 진정으로 포용한다는 것은 나를 어디까지 오픈하고 어디까지 타자를 인정하는 것일까?
- 배제가 일어나는 세상에서 포용을 외치는 것이 과연 크리스천의 일일까?
- 볼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머릿말
- 이 책은 위르겐 몰트만교수가 이야기한 '체트닉을 끌어 앉을 수 있는가?'라고 한 질문에 대해서 '못하지만 끌어안아야 한다'라고 이야기한 미로슬라브볼프-이하 볼프- 사이의 간극을 정리한 것이다.
- 체트닉은 궁극적인 타자, 악한 타자로써 악명높은 세르비아 전사들이고, 크로아티아의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고 강간했다.
- 십자가의 메시지와 폭력의 세상 사이에 있는 긴장이 나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지켜보거나 나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의 갈등으로 다가왔다.
타자, 세계
- '나는 분명 유럽인이다, 그리고 이점을 떠올리기를 좋아한다....나의 문화적 정체성은 유럽인이기는 하나, 모든 면에서 유럽의 동일성을 지닌 것은 아니다.'라고 데리다는 말한다.
- 데리다는 유럽이 스스로에게 정체성을 부과하려는 태도는 전체주의적이라고 말한다.
- 유럽은 자기정체성을 확고히 하려고, 그 자신의 절대적인 종교와 우월한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문화를 식민화하고 억압하고 파괴했으며, 자신의 종교를 강요했다.
- 확고한 정체성을 추구하여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전멸시키려 했던 것은 독일이 자신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했던 과정에서 발생했다.
- 오늘날도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세르비아로 인해 발칸 지역이 불타오르고 있다.
- 곳곳에서 자행되는 다양한 문화적 청소는 우리로 하여금 정체성과 타자성을 사회 현실에 대한 신학적 성찰의 핵심 주제로 삼도록 요구한다.
차이, 정치
- 타자와 동일자의 논리를 고민할 수도 있다.
- 또한 하나와 다수라는 의미에서 고민할 수도 있다.
- 그러나 볼프는 그렇지 않고, 정체성과 타자라는 주제로 다루어 보려고 한다.
- 그렇게 되면 최근의 논쟁들은 그 관심이 보편에서 특수로, 전 지구적인 것에서 지역적인 것으로, 평등에서 차이로 이동했음을 볼 수 있다.
- 보편성이라는 것이 주어진 특수성 안에서만 가능하며, 전 지구적 관심은 지역적으로 추구해야 하고, 평등에 대한 강조는 차이에 주의를 기울일 때만 의미가 있다.
- 인정의 정치라는 말은 찰스테일러의 의하면 평등한 존엄성의 정치와 차이의 정치를 구별한다.
- 평등한 존엄성의 정치는 보편적으로 동일한 것, 동리한 양의 권리와 면제를 규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차이의 정치는 그렇지 않다.
- '차이의 정치는 우리에게 이 개인이나 집단의 독특한 정체성, 그들을 다른 모든 사람과 구별시키는 특징을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 이 정치는 지금까지 이런 독특성이 무시되거나, 미봉되거나, 지배적인 혹은 다수의 정체성에 동화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 그리고 이러한 동화는 진정성이라는 이상에 대한 가장 심각한 범죄이다.
차이의 정치, 특징
- 차이의 정치는 두 가지 근본 확신에 기초한다.
- 한 사람의 정체성은 필연적으로 그가 태어나고 자란 사회적 환경의 특수성에 의해 특징지어 진다.
- 정체성은 일정 부분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받게 되는 인정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인정하지 않거나 잘못 인정하는 것은 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며, 일종의 억압이 되어 그 사람을 거짓되며 왜곡되어 축소된 존재 양식 안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정체성과 타자, 세가지 관점
- 정체성과 타자,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격화되는 갈등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 보편주의적 접근 : 우리는 걷잡을 수 없는 차이의 확산을 통제하고, 보편적 가치-종교적 가치나 계몽주의의 가치-의 확산을 지지해야 한다. 그런 가치만이 사람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보장할 수 있다. 공동의 가치 없이 차이만 주장할 때는 풍성하고 유익한 다양성이 아니라 혼돈과 전쟁으로 귀결될 뿐이다.
- 공동체주의적 접근 : 우리는 자신을 더 작은 규모의 토착 문화의 수호자로 여기며, 공동체적 독특성을 기리고 다름을 장려해야 한다. 보편적 가치의 확산은 평화와 번영이 아니라 억압과 권태로 귀결될 뿐이다.
- 포스트모더니즘적 접근 : 우리는 보편적 가치와 특수한 정체성을 탈피하고, 개인의 급진적인 자율성 안에서 억압으로부터의 도피처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새 정체성을 획득하고 옛 정체성을 버림으로써 계속해서 더크고 더 자유로운 자아, 제멋대로이며 별난 방랑자, 모호하며 분열되어 있고, 언제나 움직이며 움직이는 것 발고는 별달느 일이 하지 않는 자아를 창조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해야 한다.
- 이 세가지의 해법은 많은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사회적 구조에 집중한다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볼프는 사회적 구조가 아니라 사회적 행위자에 대해서 논의하겠다고 말한다.
- 볼프는 어떻게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타자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것으로 초점이 맞춰진다. 그런데 이러한 중심을 놓쳐버리면 볼프가 이야기하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가 오히려 그 구조를 변화시키는 행위자의 우선성을 간과하게 된다.
- 구조는 인정하되 행위자의 역할을 재정립함으로써 볼프는 구조를 변화시키는 동력을 발견하게 된다.
- 신학자들은 구조는 사회철학자와 정치인들에게 해결책을 모색하게 넘겨주고, 정의롭고 진실하며 평화로운 사회를 상상하고 만들어 갈 수 있는 사회적 행위자를 길너내고 그러한 행위자들이 더욱 많아질 수 있는 문화적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더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고 말한다.
십자가, 중심성
- 십자가에 관한 몰트만의 사상의 주요 주제는 연대라는 개념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고통으로, 예수님은 그들과 연대하시며 자신의 몸과 자신의 영을 통해 그들을 고통으로 함께 나누셨다. 몰트만은 십자가와 삼위일체 신학의 사회적 함의를 주로 하나님의 연래라는 주제에서 도출한다.
- 볼프는 하나님의 자기 내어줌이라는 주제에 담긴 사회적 함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즉, 하나님의 자기 내어줌이란느 주제에 담긴 사회적 함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하나님이 경건하지 않은 이들을 악에 넘겨주지 않으시고, 속죄를 통해 그들을 하나님과의 교제 속으로, 받아들이시고자 그들을 위해 자기를 내어주셨으므로 우리도 그렇게 행해야 한다.
나눔
- 누군가를 포용한다는 것은 사실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다 그럼 그리스도와 반대에 있는 죄인이 보이기 시작한다.
- 다양성과 개인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다가 보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단일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이것이 전체주의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 차이의 정치는 다름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 대한민국은 스스로에게 어떤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는가? 이 정체성의 문제를 젠더의 맥락에서 풀어보자.
- 세대별로 정체성의 특징을 한번 찾아보면 어떨까?
민네이션
- 사람들은 말한다. 그럴 때는 본 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그러나 막상 그들이 그 본때를 받아야 할 때가 오면 용서를 구한다.
- 최근들어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는, 선한의도를 가지고 내가 사람들을 대하지만 그 중에서는 악한 의도를 이미 품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 어쩌면 이러한 의도가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목적론적인 질문도 필요하나, 그러한 상황이 발생 했을 때는 어떻게 그것을 해결하거나 대응할 수 있을까?하는 현실적인 고민도 하게 되는 것 같다.
- 이 책에서 그런 고민에 어떤 부분을 해소하거나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배제가 일어나는 곳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데, 배제로 외부로 부터 고립된 그룹이나 공동체는 내부에서는 포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렇다.
- 그렇다면 그 배제의 바운더리가 중요한데, 그 대부분은 민족이나 나라 혹은 기업이나 가정이 대부분이다.
- 정체성은 차이의 정치의 입장에서 본다면, 철저하게 젠더의 문제가 된다.
- 정체성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인정(구조를 인정하든, 개인의 어떠함을 인정하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배제와 포용의 문제를 나을 수 밖에 없다.
- 볼프의 위대한 점은 바로 이것이다. 차이의 정치에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정체성을 이야기한 후에 정체성을 가지는 개인들이 만들어가는 사회를 말하고 있다.
-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고 이러한 현상 안에서 '연대'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몰트만의 이론을 따르지 않는다.
- 정체성의 확대를 이야기하면서 포용으로 가는 방식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끌어 안으시고 다시 우리에 안에서 시작하신다.
- 그럼 가능하다. 우리 안에서 inside-out되는 방식이라면 우리의 정체성은 이제 그 분과 함께 만들어가는 정체성이다.
- 이렇게 되면 우리가 잊어 버렸던 정체성과 연결된 윤리학을 찾아올 수 있다.
- 그리스도인의 존재론을 넘어서 그리스도인의 윤리론까지 발전할 수 있는 테두리가 완성된다.
- 그것은 십자가 안에서 하나닝미 내어주신 자신의 정체성과 새롭게 시작해 가시는 정체성의 시작인 것이다.
-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 다름에서 같음을 찾아가는 형식이라면, 다름 안에서 같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이제부터 새롭게 부여될 정체성이 되는 것이다.
-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참여'가 되고 그 결과가 연대'가 되는 것이다.
- 예수님의 고통이 가장 극명해지는 까닭은 바로 버려진다는 사실 때문이다. 버려진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 하나님으로 부터 버려졌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이다. 이 사이에 생략되고 결과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가 된다.
- 그런데 볼프의 의견대로 말한다면, 하나님은 자신을 버리시고 우리와 함께 새로운 부활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 아니! 이렇게 좋은 하나님이 계시는가?
- 이렇게 사랑으로 존재하시는 분이 계시는가?
- 그분의 정체성이 이제 우리의 정체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우리 안에 오셔서 이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그분과 만들어 간다.
-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으며, 하나님은 완전히 새로운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 이것이 볼프가 이야기하는 포용의 원리이다.
-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버려지고, 무덤에서 그는 새로운 인류가 되셨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새로운 인류라는 공동체에, 정체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 그러니깐 그 분께 피하는 자마다 모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고 새로운 하나님을 만난다.
- 그분은 우리보다 먼저 나가시지 않고, 우리보다 늦게 나아가시지도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나아가신다.
- 임마누엘이셔서 그렇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명확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 진리는 배제적이지만 현실은 포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