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김동춘교수님
- 월터 윙크의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을 읽어보면 세상의 지배세력들을 위해서 악한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탄의 체계는 사조, 경향, 시스템, 관습, 제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윙크의 저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 어느정도는 윙크의 이야기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스템은 그 자체로 문제가 없도록 내구성을 가지게 된다. 결국 시스템의 방향이 어디인가를 고민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시스템을 이루는 내부 구조가 비민주적이면서 시스템이 생산해 내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 한 인간의 사상체계는 항상 어떤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는가? 이론의 정합성이 항상 이론과 같지는 않지 않나? 경험적인 새로움이 등장할 수 있고, 각자가 처한 자리context에서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될 수 있지 않나?
- 윌리암 프랑케냐의 철학적 방법론에서 perpose-context-goal-method-practice에서 볼 때 context가 다르면 목적은 같지만 현실에 처한 문제를 해결하느라 목적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 통치의 방식'에서 볼 때 결국 하나님나라와 경합을 이룰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규범과 자연의 법칙'에서 계시의 영역인 하나님의 나라가 등장하는 것이다. 인간의 규범은 자유의지의 각축장이다. 자연의 법칙은 지적설계의 관점에서 이미 하나님의 완전하게 창조한 것이다. 하나님의 법은 일부 자연법칙에서 일부 인간의 규범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이제 문제는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이다.
20170425_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_김동춘 교수
분리, 적응, 변혁
들어가기
-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세상을 어떻게 연결하는가에 따라서 자신의 삶에 윤리를 가지고 삶의 방향을 정한다.
- 니버의 문화 이론은 크게 5가지가 있지만, 로버트웨버에게는 3가지의 모델이 있다.
- 오늘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념의 지형, 문화선택의 전제들을 살펴보고, 우리가 포함되어 있는 세계관에 대해서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리차드니버Ricahrd Niebuhr, 그리스도와 문화 유형론
- 분리유형
- 일치유형
- 종합유형
- 역설유형
- 변혁유형
로버트웨버Robert E. Webber
- 분리모델
- 동일모델
- 변혁모델
- 이러한 모델은 로버트웨버의 '그리스도인의 사회적책임'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1. 분리모델, 웨버
- 세상과 분리하는 사회관
- 초대교회, 재세례파, 대안공동체, 그리스도인은 사회와 분리되어야 한다
- 분리모델, 개관
-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분리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속해 있고, 세상은 죄와 마귀에게 속해 있다.
- 그래서 터툴리안처럼, 예루살렘과 아테네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고 생각한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인과 세상은 빛과 어두움, 그리스도와 벨리알처럼 대립하고, 조화할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거리를 두고 긴장을 유지하면서 반 세상적 태도로 살아야 한다.
성경, 세상과 분리를 말하는가?
- 성경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이방 제국의 백성과 구별되어 살아갈 것을 요구한다.
- 죄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타락한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간다.
- 모세는 히브리 민족의 고난 속에 합류하여 애굽의 질서에 동화기를 거절하여 자신을 분리한다.
- 하나님의 사람은 제국적 질서에 순응하거나 동화되지 않고 분리해야 함을 보여준다.
- 토라의 법이 요구하는 이스라엘백성의 삶의 방식은 이방인의 삶과 구별된 '거룩한 삶'이다.
- 거룩은 계약백성과 세상백성과의 구별된 삶에 대한 명료한 표지였다.
- 이러한 삶의 방식은 제의법과 도덕법, 타부명령, 음식방식, 복장, 농사짓는 법, 우상숭배 금지, 이방문화에 대해 오염을 금지하는 데서 드러난다.
- 예수의 산상수훈은 '불가능한 가능성의 윤리'라고 불리울 만큼 그리스도인과 이방인들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구분한다.
-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세상과 분리되라고 요구한다.
- 초대 교회의 공동체와 신앙은 기독교를 세상과의 철저한 대립radical antithesis의 종교임을 고백한다.
- 분리모형, 역사적 형태
콘스탄티누스, 이전의 교회
- 교회탄생 후 3세기까지의 '콘스탄틴 이전의 기독교'는 카타곰의 교회요, 소종파로 교회와 국가의 대립관계를 유지하면서 분리주의적 기독교로 존재하였다.
- 이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특정직업(공무원, 군인, 검투사)에 종사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 또한 순전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 영접과 긍휼을 배풀었으며, 노예를 자유케 하고 타인을 환대하였다.
재세례파, 분리모델
- 재세례파는 교회와 국가가 결합함으로써 태동된 '콘스탄틴적 기독교', 즉 국가교회를 거부한다.
- 위를 위해 국가교회의 제도화된 형식으로서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원시주의Pimitivsim을 표방하며, 국가와 교회의 근본적인 분리를 전제하는 이원론Dualism에 뿌리를 둔 소종파 운동이다.
공동체운동, 분리모델
- 대안적 공동체는 세상 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동주의 방식이 아니라 반문화적 삶의 방식을 세상 속에 보여주는 '존재'방식을 통해 복음을 증거한다.
- 대안 공동체의 독특한 삶의 방식, 즉 재산공유나 형제됨과 자매됨의 사랑의 공동체, 그리고 평등한 교회구조에서 국가교회의 유산이나 시민종교적 경향으로부터 탈피하여 교회가 세상 문화에 적응하거나 순응하는 것을 거부한다.
- 분리모형, 세계관
- 비관적 세계관의 입장에서 볼 때 부리주의는 세상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태도에 근거한다. 이 세상은 죄로 오염되고 부패된 현실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세상이란 타락과 방탕, 무질서, 도덕적 오염과 추악함만이 가득한 죄 많은 세상이다. 창조-타락-구속이란 도식에서 볼 때 분리모형은 선한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선함이나, 구속을 통한 세상의 변혁보다 세상의 전적타락total depravity에 강한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 무의미한 세속적인 삶에 대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 세계분리적인 소명관을 가지고 거룩한 세속성이 없이 교회나 미래의 하나님나라로 현실을 외면한다.
- 비세상적인 구원관의 관점에서 구원이란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구원받음이다. 구원이란 죄된 세상에서 탈출하는 것이며, 죄악된 육체상태로부터 영혼이 벗어나는 것이다.
- 세상의 흐름을 거부하는 분리주의에서 세상적 가치는 멀리해야 한다고 믿는다.
-분리모델, 문제점
- 세상과 이 세상에서의 삶의 의미를 죄악시하고, 세상을 등지게 하여 도피적 종교인이 되게 한다. 세상적이며, 현세적 삶을 부정적이며, 비관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역할을 소홀히 하게 한다. 그리하여 신앙은 지나치게 왜소화되고 게토화된다.
- 분리주의 세계관은 기독교신앙의 사회 공공적 기능을 갖지 못하여 복음의 사회적 차원과 복음의 사회변화적 측면을 간과한다.
- 분리주의 유형의 신앙은 세상속에서 보편 타당성을 보여주기보다 기독교 신앙의 특이성과 정체성에 매몰될 우려가 있따. 신앙이란 단지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만 유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 분리주의신앙은 인간이 살아가는 공적인 삶보다는, 개인적인 경건과 종교활동에 의미를 찾게 된다.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는 것은 성경읽기, 기도, 교회출석, 교회봉사 차원에 국한된다. 더 나아가 분리주의는 금욕적이며, 율법주의적 경향으로 흐르게 되고, 현세적 삶과 일상의 삶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간주하여 상업활동이나 세속직업 자체를 죄악시하거나 경시하기도 한다.
- 세상은 그리스도인에게 분리되어야 하는 곳인가?
- 부정적 의미로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신약성경은 세상(코스모스)을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거기서 세상, 즉 코스모스는 악한 사회질서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치체계를 말한다.
- 신약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세상은 그리스도밖에서 죄에 의해 지배되며, 죄오 오염된 세계 혹은 그런 삶의 촟체, 즉 죄로 왜곡된 모든 삶의 방향과 사고들과 경향들을 말한다. (H. Ridderbos)
- 한 마디로 세상은 하나님의 주되심이 부정되는 삶의 영역이다.
- 긍정적 의미로서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이고, 하나님의 구원의 무대라는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선교의 자리이며 또한 그리스도인의 문화명령을 수행하는 자리이다.
2. 적응모델, 두왕국론적 사회관
- 그리스도인은 세상나라와 그리스도의 나라의 이중의 역역에서 동시적으로 살아간다.
- 적응모델, 개관
- 그리스도인과 세상은 분리될 수 없다. 세상과 교회, 하나님나라와 세상나란느 다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다.
- 그리스도인은 한편으로 그리스도안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세상 안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이중의 존재방식안에 있다.
- 신앙과 이성, 철학과 신학은 터툴리안의 정식처럼 항상 충돌하고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교환적으로 공존하기도 한다.
- 불합리한 신앙과 합리적 이성이라는 두 날개는 상충되지만 그럼에도 상호보환적인 날개들이다.
- 루터의 두 왕국론은 초대교회와 다른 사회상황에서 생성된 사회 이론이다.
-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을 통한 교회-국가시대가 도래하기 이전의 교회의 사회적 존재방식은 세상문화와 대하고 충돌하는 분리모델이었다면 교회가 국가와 협력하고 일치된 중세사회에는 자연과 은총, 신앙과 이성, 교회와 국가의 아퀴나스적 종합모형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 근대사회의 여명기에 서 있던 종교개혁자 루터는 두 왕국 이론을 통해 기독교와 세상이라는 두 영역을 새롭게 해석했다.
- 두 왕국론은 초대교회같은 분리모형도 아니며, 중세적인 종합도 아닌, 교회와 국가의 기능을 이원론으로 분화하되, 기독교 왕국과 세상왕국을 유지, 보존하여 공존과 병립을 꾀하는 두 질서 사회형성론이라 평가할 수 있따. 따라서 루터의 두왕국론은 초대교회의 분리모델이 아니요, 중세 종합모델도 아니며, 적응모델이라 할 수 있다.
- 두왕국론적 사회론, 적응모델
두왕국론, 개관
- 이중적 통치개념으로서 두 왕국론이 존재한다. 두개의 왕국론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는 이중의 방식에 대한 고찰이다. 한 분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왕국과 세상 왕국을 세우셨다. 두 왕국은 상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영원한 나라, 하늘의 나라, 영적 정부이다. 세상의 왕국은 시간의 나라, 잠정적인 나라이며 지상의 정부이다. 하나님은 이 두 왕국을 상이한 방식으로 통치하신다. 그리스도 왕국은 내면적인 영역을 통치한다면, 세상왕국은 외면적인 영역을 통치한다. 이중의 통치론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중의 존재방식으로서 두왕국론을 보자. 두 왕국론은 애매한 이중적 실존을 규정한다. 이 둘의 방식은 항상 모순 속에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동거해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왕국과 세상나라는 그 어느 영역도 포기될 수 없는 나라이다.
- 한계와 갈등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보자.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영적, 종교적 영역외에도 세상의 나라를 자율적 나라로 주셨기 때문이다.
- 두 나라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영적나라와 세속나라 사이를 오고간다.
- 이중적인 삶의 모습으로, 이중적인 윤리적 기준이 자유의지 안에서 서로 교차한다. 하나님나라의 원리가 세상나라의 원리와 교차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 이것이 성서적 현실주의 입장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 의미, 한계
- 이 세상적 삶에 긍정성을 부여한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의미가 있다.
- 그리스도이의 통치의 제한과 세상의 자율성을 생각해 볼 때, 두 영역은 방식과 범위에서 한계를 갖는다.
- 현실주의적이면서 기회주의적 적응모델로 발전할 수 있다.
- 이러한 방식은 불의한 독재국가에서도 적응을 강조하는 잘못을 경험하기도 한다.
- 무엇보다 세상나라를 자율통치에 위임함으로써 세계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적극적인 역할을 위축시킨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 루터는 아래서부터 위로 가는 폭력은 불합리하고,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폭력을 합리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현재에 충칠하게 된다.
3. 변혁모델, 그리스도 왕적 통치론의 세계관
-두왕국적 사회론, 한계
- 루터의 두 왕국론은 그리스도의 나라와 세상 나라를 분리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통치를 영적이며, 종굑적 영역에 제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통를 지상 나라에 직접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이성의 원리와 세속권위(군주, 지배자)에게 위임한다.
- 루터의 두왕국 원리는 하나님의 왕국과 악마의 왕국이 이원론적으로 분리시키면서, 그 둘 사이는 모순과 대립으로 만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통치가 세상 속에 개입하지 않고, 세상나라는 이성과 자연법치게 따라 존립하는 자율적 왕국이 된다.
- 이제 세속은 그리스도 혹은 교회의 지배없이 별개로 유지, 보존되는 이성의 자율의 나라가 됨으로써 신앙과 이성, 교회와 국가의 이원론적 분화를 초래한 근대적 세계형성의 토대로 작용한다.
- 그리스도의 왕적통치론(Kingship of Christ), 그리스도는 온 세상의 주님이시다.
-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영역은 영적, 개인적, 종교적 영역에 국한될 수 없다. 모든 창조가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되었고, 창조된 세계는 타락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전면적인 새창조를 향해 진행되어 간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악마적 세계현실전체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이므로 죄된 현실구조 전체를 변혁적 과정에로 이끌어 간다.
민네이션, 생각
- 월터 윙크의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을 읽어보면 세상의 지배세력들을 위해서 악한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탄의 체계는 사조, 경향, 시스템, 관습, 제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윙크의 저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 어느정도는 윙크의 이야기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스템은 그 자체로 문제가 없도록 내구성을 가지게 된다. 결국 시스템의 방향이 어디인가를 고민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시스템을 이루는 내부 구조가 비민주적이면서 시스템이 생산해 내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 한 인간의 사상체계는 항상 어떤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는가? 이론의 정합성이 항상 이론과 같지는 않지 않나? 경험적인 새로움이 등장할 수 있고, 각자가 처한 자리context에서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될 수 있지 않나?
- 윌리암 프랑케냐의 철학적 방법론에서 perpose-context-goal-method-practice에서 볼 때 context가 다르면 목적은 같지만 현실에 처한 문제를 해결하느라 목적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 통치의 방식'에서 볼 때 결국 하나님나라와 경합을 이룰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규범과 자연의 법칙'에서 계시의 영역인 하나님의 나라가 등장하는 것이다. 인간의 규범은 자유의지의 각축장이다. 자연의 법칙은 지적설계의 관점에서 이미 하나님의 완전하게 창조한 것이다. 하나님의 법은 일부 자연법칙에서 일부 인간의 규범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이제 문제는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