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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Apr 25. 2017

라캉과 사물

새로운 주체의 탄생 즈음

- 콰인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이 종합명제로 발전하지 못하고, 분석 명제 안에 머물게 되면 구조화되지 않고, 적용도 불가능해진다. 이럴 때 지식은 연결성을 잃어 버린다. 연결관계를 종합명제로까지 발전시켜 놓아야만 지식의 축적이 일어난다.


- 인간은 어느순간에 기억이 사라진다. 그 기억이 사라지는 시점은 4세 정도인데 기억이 지워지는 이유는 4세부터 언어를 배우기 때문이다. 언어로를 통해서 현실원칙이 들어오고 현실원칙은 윤리적인 차원에서 상징계가 만들어져서 억압과 갈등이 일어나고, 이러한 갈등은 기억을 삭제한다. 그러나 이것은 의식에서만 사라진 것이지 무의식에서는 존재한다.


- 프로이트-라캉의 이론에 따라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리는 주이상스를 억압하는 기재가 하나를 넘어서게 되면 존재의 근본이 흔들리게 된다. 잘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권위가 강한 가정에서는 자란 사람은 보수적인 경향이 강해지는데, 아버지의 권위가 실추되거나 강한 집안에서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 존재론을 가지면서 보수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이름'이 일자인가 다자인가에 따라서 보수주의가 되는가?혹은 자유주의가 되는가를 알 수 있다.


- 이러한 라캉의 분석은 결국 '문재인이 왜 3.6%의 투표결과를 재개표 해보지 않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 그러나 라캉의 말이 모두 맞지는 않겠지? 세계관 혹은 가치관의 변화는 라캉식으로 하면 이러한 '큰사물'에 대해서 새로운 구조화가 일어날 때 시작된다. 그것은 신을 만난 것이나 혹은 큰 모델을 만날 을 때이다. 자신의 주이상스에 대한 새로운 '아버지의 이름'이 등장했을 때 새로운 줄세우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 '집단 트라우마'나 '개인적 트라우마'의 경우에는 기존에 보편성을 가지는 주이상스의 서열들이 파괴되거나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아버지의 이름'들이 다른 방식, 혹은 다름 얼굴을 하고 우리의 마음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 Presupposition은 바로 '큰 사물'을 규정하는 작업인 것이고 Perspective는 '주이상스'들의 체계화, 영향력, 연결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Principle은 이러한 주이상스들 중에서 의식의 차원에서 반복되었을 때, 보편성을 가지게 될 때 공동체에, 인류에 등재되는 것을 말한다. Practice는 이러한 보편성이 현실세계에 작동함으로써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를 보게 경험의 숙달이라고 하고 이것이 이제 자신의 로고스와 파토스 그리고 에토스가 일치되어서 자신만의 것, 자신만의 구조화가 끝났을 때 바로 Personalizaiton이라고 할 수 있다.


-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순간 선악과를 따먹고 결국 이웃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선악과를 다시 재자리에 놓고 하나님은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멋있다고 하는 것은 '반복된 형식을, 반복된 욕망을 멈추고 새로운 반복을 만들어내는 것, 새로운 시작하는 것을 것을 시작하는 때'를 살아본, 경험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20170424_철학아카데미

라캉의 인간학_백상현 박사

세미나 강해 2_히스테리, 큰 사물


들어가기


- 프로이트가 작성했던 '심리학 초고'에서 이야기했던 '큰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할 것이다.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심리학인가 뇌신경학인가? 여기에 대해서 프로이트는 다소 망설이기는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심리학적인 부분으로 결정한다.


-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마음의 작동방식이 정해진다는 것이 심리학이라고 볼 수 있다. 라캉은 여기서 프로이트를 뇌신경학자로 인정하지 않고, 심리학적 접근을 하는 정신분석학자로 인정한다.


- 주요개념은 다음과 같다.


- 심리학이 아닌 윤리학, 현실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산물과 단어, 등재, 이웃, 낯섬, 표상의 조합, 고통의 한계, 지각과 의식 사이, 부인의 행간이 말하는 것, 어머니로서의 큰 사물


강의, 개요


- 오늘 강의는 라캉이 1959년 12월 2일, 9일, 16일에 했던 3가지 세미나에 관한 것이다. 물론 이 세미나는 7번째 세미나에 포함되어 있다. 7번째 세미나는 사실 라캉의 핵심이 담겨 있는 강의이다.

- 3번째 강의는 '초고'에 대한 하나의 독해, 4번째 강의는 '큰사물 1', 5번째 강의는 '큰사물 2'의 제목으로 세미나가 열렸다.

- 19세기 말 당시 40대의 프로이트는 인간 심리와 무의식은 뇌신경 세포와 그 전달물질들의 구조와 연결되어 있따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사물'Das Ding은 프로이트의 '초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잘 알려진대로 프로이트는 '초고'의 이같은 관점들을 즉각 포기한다. 이것이 프로이트가 '초고'를 결코 출간하려 하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나이다.


- 이후로는 심리의 구조가 가진 문화-언어-환경적 독자성이 선택된다.


- 쉽게 말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엄격히 분리된 관점이 결정적으로 채택되는 것이다. 따라서 뉴런과 심리의 원칙들을 연결시켜 사유하려는 '초고'의 표현들은 상당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캉은 이 당시 프로이트적 이론의 핵심만을 주목해보고자 제안한다.


Ding, Sache


- Ding은 사물의 존재자체를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Ding-Thing은 주이상스라고 할 수 있다.


- 일반적으로 법으로 규정된 사물은 Sache-chose라고 한다.

- Ding은 상징계의 질서 안에 들어오기 전에 현실계에 있는 것이라면 Sache는 상징계안에서 셈해진, 이미 그 쓰임이 정해진 산물을 표현한다.


- 인간의 심리는 쾌락원친과 현실원칙이라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아직 이러한 구분을 거치지 않은 것이 큰 사물das Ding이고 이것을 거치고 난 후의 사물을 산물Sache라고 할 수 있다. 산물은 다시 상품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 주이상스가 상징계 내에서 작동하는 것이면 죽음충동이 어느정도 제한된 것이라면, 상징계 외에 발생하는 욕망은 큰 사물의 욕망이고 이것은 죽음욕망까지 들어간다. 여기서 우울과 자살, 분열, 죽음까지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 상품은 자본주의라는 상징계 안에서 이미 인식되고 사용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상품이 된다는 것은 자본주의 안에서 자신의 가치가 매겨진다는 것이고 이미 가격으로(상징계의 언어로) 치환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 이것을 다시 정리하면 상징계안에 정착시키는 것을 대상a라고 말한다.


- 언어가 개입해서, 길들여진 주이상스를 표상하고 있는 개념이 바로 Sahevortellung이라고 할 수 있다.


- 마음에 있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매개를 통해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재현represen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 재현된 것은 이미 das Ding이라고 할 수 없다. 큰 사물 자체가 표상되는 것은 없다고 할 수 있다.


- 매개의 주체는 항상 기표, 즉 언어이고 사물은 항상 산물 혹은 상품만 표상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캉, 정신분석


- 라캉의 정신분석은 언어를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것이다.


- 인간의 마음은 이렇게 언어라는 매개를 통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정신은 언어로 인해서 구조화되는데 이것이 의식으로 드러나지 않는 모든 부분은 무의식이 되고, 이렇한 무의식은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러한 언어적인 관점에서 무의식의 구조화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다시 재현해 내고 있다.


- 언어라는 것은 그러나 로고스적인 언어만이 아니라 파토스적인 언어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적 구조화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다.


- 라캉은 로고스적인 언어는 항상 도덕적인 재현을 득하고, 재현되는 순간 혹은 표현되는 순간 숨겨진 것들이 억압된다고 볼 수 있다.


- 병리적인 단어라고 칭하는 파토스적인 언어들은 누락, 억압을 통해서 배제된 기표들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런 의미에서 보면 억압된 언어들이 기표로 나오게 될 때 이것이 사실은 무의식을 드러내는 방식이 된다.


- 그렇기 때문에 '말실수, 헛소리' 등이 바로 무의식이 표출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렇기 때문에 라캉식의 정신분석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헛소리나 실수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 따라서 이러한 방식은 '자유연상기법'으로 라캉의 분석법이 진행된다. 아무것이나 떠오르는 것으로 표현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병리적인 언어가 드러나는, 무의식이 드러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마음 구조


- 인간의 마음은 큰 사물을 주변으로 말실수 혹은 억압된 언어들이 붙어 있고, 그 바깥에 로고스의 언어가 붙어 있다고 할 수 있다.


- 정신병자는 주이상스에 대한 억압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병자는 큰 사물에 대해서 구조적으로 붙어 있지 않다.


- 정신병도 언어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신경증자는 일관적인 언어사용을 강박증에 의해서 사용되는데 반해서 정신병자는 로고스를 넘어서는 언어가 등장한다.


- 어린아이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큰사물'에 대한 주이상스가 구조화된다고 할 수 있다.


- 욕망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억압되었기 때문에 신경증자들에게는 '큰 사물'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욕망이 발전하게 된다.


- 그러나 정신병자들에게는 '큰사물'을 중심으로 구조화되어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비체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 정신병자들에게는 억압하는 '작은 사물'들이 여러가지이기 때문에 이것들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 정신병자에게는 실재에 대한 억압을 실재적인 대처로 일어나기 때문에 살인이나 폭력의 양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 신경증이나 정신병은 결국 주이상스가 '큰사물'에 대해서 어떤 구조를 갖느냐에 달려 있다.


환상, 망상


- 환상과 망상은 큰사물에 대해서 여러방식으로 구성된다.


- 환상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많은 것들이 보편성을 가질 때 망상이 아니게 된다.


- 그러나 망상은 보편성이나 구조화를 가지지 않을 때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 이데올로기는 환상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 중요한 것은 망상은 완전히 다른 구조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안정화될 수 있는 조치가 있다면 이것은 존재할 수 있다.


- 그러나 만약 이 망상 자체를 부정하게 되면, 정신병자들은 식물인간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


- 주이상스가 발동하지 않으면서 큰 사물에 대한 어떤 반응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 다시 말하면 정신병자들의 망상은 주이상스가 개별성을 가지면서 독립성을 가지기 때문인 것이고, 일반인들의 환상은 주이상스가 보편성을 가지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 정신병자들의 광기 속에서도 미디어나 생활 속에서 들은 것들이 언어적으로 표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타자의 언어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환상이든 망상이든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등재, 큰 사물


- 큰 사물을 들러싸고 외부를 구성하는 억압장치가 발동한다. 그렇게 되면 표상들이 등재되는 과정이 일어난다.


- 등재란 쾌락과 초과적 쾌락인 고통이 어디에 있는지 표상에 의해 표지화 되는 것을 의미한다.


- 나아가서 이러한 표지들은 무의식의 내부 어디에 접근 불간으한 큰 사물이 이웃으로서, 낯섬의 형상으로 존재하는 지를 표시한다.


- 그런 의미에서 무의식을 구성하는 언어는 큰 사물로부터 주체를 러리두게 만드는 표상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 우리는 내밀성을 가지고 있는줄 알았지만 사실은 외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큰 사물에 대해서 우리는 내밀성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가장 우리와 낯선 것이었다는 것이고, 이렇게 낯선 큰 사물과 마주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라캉의 정신분석학의 목적이었다.


- 현실 원칙이 실패하는 순간, 증상이 보여지는데 바로 이 순간이 바로 큰 사물이 등장하는 시간이다.


- 이러한 등재의 재료는 바로 언어이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라캉의 정신분석은 언어적인 맥락을 견지한다.


- 쾌락이 흔적으로 남는 것을 등재라고 한다. 경험과 사유 사이에 작용하는 기표의 작용을 등재라고 한다.


- 어떤 경험을 통해서 쾌락이 발생했다면 이러한 쾌락은 추후에 사유를 통해서 환상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 이렇게 등재된 쾌락이 이제 현실원칙에서 윤리적인 부분에서 금지되었다면 이것은 병리적인 기표인 무의식의 차원으로 들어간다.


- 큰 사물이 먼저 있고 그것들 중심으로 주이상스가 있다. 큰 사물이 있고 쾌락원칙과 도덕원칙이 있다.


이웃, 성경


- 성경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이야기한다. 라캉은 세미나에서 성경을 자주 언급한다.


- 네 이웃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바로 나와는 상관없는 외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네 이웃은 라캉식으로 하면 큰 사물이라고 할 수 있다. 큰 사물인 네 이웃을 사랑하는 순간 정신분석학의 목적은 달성한다.


- 큰 사물과 만나게 되는 순간 인간의 자아는 사라지고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내게 된다.


- 이것은 다시 말하면 현재 우리의 자아는 산물 혹은 상품을 추구하는 상징계에 갖혀 있지만, 타자를 사랑하는 순간 큰 사물과 만나게 되면서 자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결국 타자를 사랑하는 것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방식'인 것이다.


- 타자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세계는 계속해서 상징계 속에, 주이상스의 억압 속에 갖혀 있는 것이다.


- 예수님을 보라. 예수님이 이웃을 자신의 목숨처럼 사랑하니깐 몰락하게 되는 데, 여기서 몰락의 대상은 구약인 것이다. 바로 이것을 발생론적 윤리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진리는 모든 순간에서 윤리를 만들어내는데, 네 이웃을 예수님처럼 사랑하게 되면 우리의 자아는 완전히 새로운 윤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 '이웃'은 '동포'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웃은 완전히 다른 타자, 큰 사물, 주이상스의 원초적 상태인 것이다.

- '내 몸을 만지지 말라'라는 예수님의 언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죽음'이라는 상징계의 언어로 해석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죽음을 '보존'하라라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언어로 새로운 언어로 그 죽음을 보존하라는 것이다.


- 라캉은 이것을 '엑스 니힐로'라고 부른다. 없던 것으로 부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라라고 하는 라캉의 이야기는 바로 '이웃'을 만들어내라는 것이다.


- 이웃이 바로 없는 것, 엑스 니힐로이기 때문에 타자의 형성은 바로 새로운 윤리 이면에 새로운 자아, 새로운 주체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 타자를 사랑함으로써 인간의 존재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고, 이것이 바로 라캉이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이다.


- 이웃을 만나고 이웃을 욕망하는 것이 라캉 분석학이 바로 라캉의 인간학으로 발전하는 방식이다.


라캉, 세미나


- 라캉은 여행하듯이 인생을 살라고 하는 것은


- 라캉은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뉴턴의 시간은 시간이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 인간의 삶은 내용만 바뀌는 것이지 같은 형식을 살고 있는 것이다.


- 인간의 삶은 동일한 삶을 극단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라캉의 세계관이다.


-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 혹은 신경증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시간의 반복, 형식의 반복을 더 잘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 얼마만큼 자신의 반복을 정지시켰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욕망의 구조를 정지시키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 인간은 최초의 쾌락으로 돌아가는 반복을 시작한다. 이러한 반복이 바로 삶의 형식이다. 물론 경험은 그 형식 안에서 새로운 내용이기는 하지만, 형시은 똑같다.


- 정신분석은 바로 이러한 반복과 마주하는 것이고, 당연히 우울증이 찾아오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반복을 매번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구조를 새롭게 만드는 타자를 만남으로서, 새로운 큰 사물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 라캉은 정신분석가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자신의 환상과 환자의 환상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구조를 이해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경증, 큰 사물


- 큰 사물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맞닥드리게 되면 정신병이 되고, 우회하게 되면 신경증과 성도착으로 발전하게 된다.


- 신경증은 기본적으로 억압을 탑재하고 있다.


- 인간 심리란 자신의 쾌락의 중핵인 동시에 억압되어야 할 대상으로서의 주이상스의 자리를 중심으로 설계되는 하나의 우회 구조라고 할 수 있다.


- 신경증은 큰 사물에대해서 다시 히스테리와 강박증의 우회로를 만든다.


- 히스테리가 출현하는 이유는 쾌락에 대해서 불만족할 때 일어난다. 쾌락은 완전히 만족스럽게 충족되지 못하게 되면 히스테리로 발전한다.


- 히스테리의 구조는 거부하면서, 역겨워하면서 추구하는 것이다. 히스테리는 큰사물에 대해서 욕망하면서 큰 사물의 그림자에 도착하다가도 그것이 등장하게 되면 역겨움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 히스테리의 구조는 사실 예술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라캉의 정신분석은 결국 히스테리를 통해서 미학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 히스테리 발작은 절대적 타자를 소환하려는 전략 속에 있다. 그것은 '쾌락을 재생산'해 내려는 전략이다.

- '히스테리'의 울움발작의 경우 그것은 철저하게 계산되고 조율된 행위이다. 인간은 울음을 통해서 절대적 타자를 불러낸다.


- 아이들은 울음을 통해서 자신의 부모님을 불러내려는, 태타자를 소환하려고 하는 것이다.


- 무의식은 아주 정교하게 울음발작을 통해서 어린시절 자신의 아버지를 소환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어린시절의 아버지는 자신이 속해 있는 그룹내에서 가장 아버지와 비슷한 대상이다.


- 히스테리는 자신의 안정된 질서를 붕괴시키기 때문에 대타자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 그러나 이런한 붕괴를 경험하는 것이 목적이지 이것이 충족되고 해결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이러한 태타자를 불러내는 행위를 유지하는 방식이 바로 히스테리인 것이다.


히스테리, 예술


-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러한 히스테리가 미학에 등장하는가?


- 예술의 근본구조는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예술가들은 창조하는 사람이다.


- 예술가들은 이전의 구조가 붕괴되고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내는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 예술은 결국 무엇인가를 붕괴시키는 차원이고 계속해서 붕괴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트라우마, 라캉


- 트라우마는 그 자체로 주이상스이다.


- 그러나 외부에 의해서 발생하는 트라우마는 자신이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새로운 트라우마, 즉 새로운 주이상스, 새로운 큰 사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이야기한다.


- 새로운 트라우마는 결국 새로운 큰 사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트라우마가 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큰 사물의 존재만큼 큰 존재일 때만 가능한 것이다.


- 전쟁이 어떤 사람에게는 트라우마가 되는데, 그것은 전쟁이 사람과 사물을 파괴시키는 가운데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큰 사물자체가 파괴되고 새로운 사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 새로운 큰 사물은 새로운 욕망구조를 만들어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 욕망과 주이상스, 큰 사물과 트라우마의 연속성 가운데 새로운 인류 혹은 새로운 세대를 잉태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민네이션, 생각


- 콰인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이 종합명제로 발전하지 못하고, 분석 명제 안에 머물게 되면 구조화되지 않고, 적용도 불가능해진다. 이럴 때 지식은 연결성을 잃어 버린다. 연결관계를 종합명제로까지 발전시켜 놓아야만 지식의 축적이 일어난다.


- 인간은 어느순간에 기억이 사라진다. 그 기억이 사라지는 시점은 4세 정도인데 기억이 지워지는 이유는 4세부터 언어를 배우기 때문이다. 언어로를 통해서 현실원칙이 들어오고 현실원칙은 윤리적인 차원에서 상징계가 만들어져서 억압과 갈등이 일어나고, 이러한 갈등은 기억을 삭제한다. 그러나 이것은 의식에서만 사라진 것이지 무의식에서는 존재한다.


- 프로이트-라캉의 이론에 따라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리는 주이상스를 억압하는 기재가 하나를 넘어서게 되면 존재의 근본이 흔들리게 된다. 잘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권위가 강한 가정에서는 자란 사람은 보수적인 경향이 강해지는데, 아버지의 권위가 실추되거나 강한 집안에서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 존재론을 가지면서 보수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이름'이 일자인가 다자인가에 따라서 보수주의가 되는가?혹은 자유주의가 되는가를 알 수 있다.


- 이러한 라캉의 분석은 결국 '문재인이 왜 3.6%의 투표결과를 재개표 해보지 않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 그러나 라캉의 말이 모두 맞지는 않겠지? 세계관 혹은 가치관의 변화는 라캉식으로 하면 이러한 '큰사물'에 대해서 새로운 구조화가 일어날 때 시작된다. 그것은 신을 만난 것이나 혹은 큰 모델을 만날 을 때이다. 자신의 주이상스에 대한 새로운 '아버지의 이름'이 등장했을 때 새로운 줄세우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 '집단 트라우마'나 '개인적 트라우마'의 경우에는 기존에 보편성을 가지는 주이상스의 서열들이 파괴되거나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아버지의 이름'들이 다른 방식, 혹은 다름 얼굴을 하고 우리의 마음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 Presupposition은 바로 '큰 사물'을 규정하는 작업인 것이고 Perspective는 '주이상스'들의 체계화, 영향력, 연결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Principle은 이러한 주이상스들 중에서 의식의 차원에서 반복되었을 때, 보편성을 가지게 될 때 공동체에, 인류에 등재되는 것을 말한다. Practice는 이러한 보편성이 현실세계에 작동함으로써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를 보게 경험의 숙달이라고 하고 이것이 이제 자신의 로고스와 파토스 그리고 에토스가 일치되어서 자신만의 것, 자신만의 구조화가 끝났을 때 바로 Personalizaiton이라고 할 수 있다.


-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순간 선악과를 따먹고 결국 이웃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선악과를 다시 재자리에 놓고 하나님은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멋있다고 하는 것은 '반복된 형식을, 반복된 욕망을 멈추고 새로운 반복을 만들어내는 것, 새로운 시작하는 것을 것을 시작하는 때'를 살아본, 경험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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