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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Apr 27. 2017

긍정과 부정

피로사회의 발전단계

- 포스트모더니즘의 방식으로 사용되는 '긍정'의 방식은 차이'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 우리의 동질성'은 타자를 부정으로 부터가 아니라 타자의 긍정으로 부터 modeling의 방식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 고지론'이라는 것도 사실은 세상을 하이라키로 인식하고 바로보는 것이 아닌가? 그런 고지론을 택했다는 것 자체는 이미 그 안에 위계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한다고 할 수 있다.


- 긍정'과 사랑'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랑은 그래서 무조건 긍정이 아니다. 우리는 샬롬'을 이야기할 때 있어야 할 것들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생물학적 자연주의'는 자연의 질서를 그대로 인간의 세상으로 가지고 오는 것이고, 정신적 자유주의는 정신의 질서를 그대로 인간세계를 가지고 오는 방식이다. 그에 비해서 윤리적 실증주의는 실제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규범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칸트의 기준 안에 있다.


- 배제'는 왜 일어날까? 두려운 것이 아닐까?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 가능성이 극대화가 되는 것이 아닐까?


- 유데모니아' 인간의 욕구가 다시 제자리를 찾은 것인가? 욕구가 무한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욕구를 폭발시켜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켈리포니아 드림이라 던지 유로피언 드림이라든지, 우리는 욕구의 폭발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인생 가운데 왕이 되시는가?


- 하나님은 is'로 일하신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신다. 그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면역학적인 사회에서도, 긍정의 사회에서도 직선의 인생을 살아가야 되는게 아닌가?


- 그것은 한마디로, 욕망에 이끌리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면서, 두려움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유의지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가?




20150412_주일저녁 독서모임

한병철_피로사회

1장 신경성 폭력


들어가기


- 우리사회는 왜 이렇게 피로한가?


- 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 우리는 왜 피로사회를 읽는가?

- 2012년 대선 당시 출판업계에서 다음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1위에 뽑혔다.


- 한병철씨는 이 책에서 나와 동지를 나누는 방식으로 시대를 구분하는 이전 시대가 끝났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제 다른 패러다임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활동적인 삶이 아니라, vita comtemplativa의 삶인 것이다.


한국어판 서문


- 피로사회는 2010년 독일에서 출간되었고, 출간되자마자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 그것은 이 책이 시대의 뇌관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 주요 언론매체들의 서평을 쓰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이러한 예상 밖의 성공은 이 책이 소진증후군, 우울증, 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 등과 같은 정신 질환의 역사적 위치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 "시대마다 그 시대의 주요 질병이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느 이 책은 오늘날 이 사회가 성과사회의 근저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은 전반적인 패러다임 전환의 결과로 인해서 생겨났다고 해석하고 있다.


- 성과사회 주체가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으며,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것이다.


- 자기착취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로서 타자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더 많은 성과를 올리다.


- 이러한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망가질 때까지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하는 것이다.


- 한국 역시 성과사회이고 그에 따른 사회적 폐해와 정신 질환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1장 신경성 폭력

- 질병


-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 박테리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는 항생제의 발명과 함께 종료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더이상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 우리는 면역학적 기술에 힘입어 이미 그 시대를 졸업했다.

- 21세기의 질병은 그러나 신경성 질환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이 21세기의 질병들이다.


- 이러한 질병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라 경색성 질병이며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다.


부정성, 긍정성


- 20세기까지 부정성이 주류가 된 사회, 그래서 그 부정성을 몰아내는 것이 사회의 주요한 방향이었다.


- 이러한 시기는 타자의 부정성을 중심으로 타자를 평가하는 시대였다.


- 그러나 21세기에는 긍정성의 과잉의 시대가 되었다. 타자에게도 우리는 긍정성을 요구한다. 그리고 긍정성은 지나치게 많아져서, 자기 자신을 해칠 정도로 커지게 되었다.


면역학적 행동


- 20세기의 주요한 시대정신은 면역학적 행동이었고, 이러한 행동의 본질은 공격과 방어였다.


- 낯선 것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맹목성은 부정성이 중심이 되는 면역학적 사회의 표본이다.


- 면역 방어의 대상은 타자성 자체이다.


- 아무런 적대적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타자도, 아무런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타자도 이질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면역학적 담론


- 어떤 패러다임 자체가 반성의 대상으로 부상한다는 것은 그 패러다임이 몰락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 냉전의 종식 역시도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흐름 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 그러나 이제 시대는 바뀌었고, 새로운 구도는 이질성과 타자성의 소멸을 가지고 왔다.


- 모든 면역 반응은 이질성에 대한 반응이다.


- 오늘날 이질성은 아무런 면역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 차이로 대체되었다.


차이, 새로운 구도


- 사회가 변화되면서 이질성의 표현은 이제 차이'로 바뀌게 되었다.


- 면역학적 구도에서 차이는 아무런 병을 유발하지 않는다.


- 타자성 역시 날카로움을 잃고 상투적인 소비주의로 전락한다.


- 낯선 것은 여행객들의 향유대상이 된다.


- 관광객이나 소비자는 더이상 면역학적 주체가 아니다.


- 로베르토 에스포지토의 면역성 이론은 잘못된 가정인 '면역성, 삶의 보호와 부정'에서 출발한다.


- 이런 의미에서 이민자는 이방인, 타자라기 보다는 짐스러운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면역학적 방식으로 사회를 분석하는 방식은 항상 과거의 일을 분석하는 것이 전부이다.


세계화, 이질성


- 면역학적 패러다임은 세계화 과정과 양립하기 어렵다.


- 이질성은 탈경계 과정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 면역학적으로 조직화된 세계는 특수한 공간 안에서 경계를 갖지만, 세계과 시대에는 이러한 제한이 없어진다.


- 세계화 시대에는 혼성화 경향이 일어난다.


- 구분이 없어지면서 정체성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부정성, 변증법


- 면역의 근본 특징은 부정성의 변증법이다.


- 자아는 타자의 부정성으로 인해서 파멸하게 되는데 이를 피하려면 자아내부에서 타자를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


- 면역학적 자기주장은 부정을 부정하면서 관철된다.


- 면역반응을 촉발하기 위해 타자의 파편만이 자아 속으로 투입되면서 부정의 부정은 치명적 위험없이 이루어진다.


- 타자와 직접대결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치명적인 폭력에서 벗어나 자발적인 약간의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21세기, 긍정의 변증법


- 이질성이 차이로 변환되면서 21세기에는 신경성 질환들은 모두 긍정성 과잉에서 온 것이 된다.


- 이러한 긍정성 안에서도 충분히 폭력이 나올 수 있다.

- '같은 것에 의존하여 사는 자는 같은 것으로 인해 죽는다.'_장 보드리야르


- 그러나 장 보드리야르도 역시 부정성의 측면에서 지나간 과거의 분석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지방(pet)은 어떤 면역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다. 정보의 과잉, 공급의 과잉을 통해서 우리는 이질성이 문제가 아닌 긍정성이 문제가 되는 시대를 살게 되는 것이다.


같은 것, 저항력


- 같은 것이 지배하는 시스템 속에서는 저항력을 강화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 그래서 우리는 면역학적인 저항과 비면역학적인 저항을 구분해야 한다.


- 긍정성의 과잉 속에서는 부정성의 과잉은 들어갈 자리가 없다.


바이러스, 긍정성


- 네트워크와 가상세계의 폭력은 바이러스성 폭력이다_장보드리야르


- 적으로 표현되는 바이러스는 처음에는 늑대로, 그 다음에는 쥐의 형태로, 그 다음은 해충의 단계를 거치고, 마지막에는 바이러스로 변한다.


- 네번째는 바이러스의 단계이다. 바이러스는 사실상 사차원에서 활동한다.


- 이러한 시스템 안에 들어와 있는 바이러스는 테러리즘이라고 보드리야르는 전체에 대한 개별자의 저항이라고 한다.


민네이션


- 사회과학이 자연과학, 특히 생물학을 자신의 영역으로 가지고 올 때는 플라톤이 제시한 방식으로 대부분 가지고 온다.


- 긍정성이 윤리적 실증주의 방식에서 이전에 방식들을 모두 뒤집고 나서,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은 정신적 자연주의에서 찾고 있다.


- 매트릭스 3편에 보면 네오'가 매트릭스 속에 스미스요원을 죽이는 방식은 자기안에 타자를 받아 들이고 자신을 그 다음에 부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 긍정성의 과잉이 부정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남을 돕는 것이 긍정성이 남아 돌아서 돕는 것이라면, 우리가 남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 과잉해서 돕는 것이라면? 이러한 생각은 신플라톤주의의 하나이다.


- 이것이 경제학적으로는 trickle down, spill over, 거점중심 불균형 개발론의 중심이 되었다.


- 우리가 어려운 사람들(부정성의 천국)을 돕는 것이 우리의 소유(긍정성의 천국)에서 나온 것이라면 우리의 도움은 진정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


- 그래서 하나님은 계속해서 없는 것에서 없는 것을 주라고 하면서도 있는 것에 있을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 가신다.


- 부정성은 긍정성을 요구하지 않고, 부정성은 부정에 부정을 하지도 않는다.


- 부정성은 그대로 인정되고, 부정성 안에서 긍정성이 저항하는 방식으로 희망이 태어난다.


- 긍정의 긍정은 반어법이 된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 된다. 긍정의 긍정은 시스템상으로는 부정으로 치환되지는 않으나, 그것은 반어법이 된다.


- 이러한 논의로 볼 때, 우리는 혁명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우리의 혁명은 부정성을 가지고 타자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긍정성을 가지고 타자에게 나아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대정신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긍정성 폭력


- 긍성성의 폭력은 박탈하기 보다 포화시킨다.


-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갈시킨다.


- 따라서 그것은 직접적으로 지각되지 않는다.


- 활동과잉에서 과잉은 면역학적 범주가 아니며, 다만 긍정적인 것의 대량화일 뿐이다.


나눔


- 피로사회의 테마를 가지고 한국적 상황으로 가지고 올 때, 헤겔의 역사철학의 발달처럼 정-반-합이라는 상승의 효과를 막는 것은


-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긍정성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가?


민네이션 2


- 포스트모더니즘의 방식으로 사용되는 '긍정'의 방식은 차이'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 우리의 동질성'은 타자를 부정으로 부터가 아니라 타자의 긍정으로 부터 modeling의 방식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 고지론'이라는 것도 사실은 세상을 하이라키로 인식하고 바로보는 것이 아닌가? 그런 고지론을 택했다는 것 자체는 이미 그 안에 위계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한다고 할 수 있다.


- 긍정'과 사랑'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랑은 그래서 무조건 긍정이 아니다. 우리는 샬롬'을 이야기할 때 있어야 할 것들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생물학적 자연주의'는 자연의 질서를 그대로 인간의 세상으로 가지고 오는 것이고, 정신적 자유주의는 정신의 질서를 그대로 인간세계를 가지고 오는 방식이다. 그에 비해서 윤리적 실증주의는 실제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규범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칸트의 기준 안에 있다.


- 배제'는 왜 일어날까? 두려운 것이 아닐까?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 가능성이 극대화가 되는 것이 아닐까?


- 유데모니아' 인간의 욕구가 다시 제자리를 찾은 것인가? 욕구가 무한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욕구를 폭발시켜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켈리포니아 드림이라 던지 유로피언 드림이라든지, 우리는 욕구의 폭발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인생 가운데 왕이 되시는가?


- 하나님은 is'로 일하신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신다. 그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면역학적인 사회에서도, 긍정의 사회에서도 직선의 인생을 살아가야 되는게 아닌가?


- 그것은 한마디로, 욕망에 이끌리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면서, 두려움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유의지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가?


참고_칼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 자연적 법칙과 규범적 법칙은 사회과학탐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 자연적 법칙은 과학적인 객관성을 통해서 파악이 가능한 대상으로서 고정불변의 규칙성을 가진다.


- 규범적 법칙은 행위양식 혹은 당위성의 표현으로 인간에 의해서 제정되고 변경될 수 있는 법칙이다.


- 자연접 법칙과 규범적 법칙은 공통점이 없다.


- 양자의 결합 방식에 따라서 일원론이 나오기도 하고 비판적 이원론이 나오기도 하는데, 일원론과 이원론 사이에 중간 단계로서 3가지의 방식이 나온다 .

- 3가지의 방식은 생물학적 자연주의, 윤리적 법률적 실증주의, 심리학적 정신적 자연주의이다.


참고

- 생물학적 자연주의


- 도덕적 법칙과 국가 법률이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자의성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그 규범들의 전제에는 자연의 법칙들이 존재한다는 입장이 생물학적 자유주의이다.


- 이 이론은 평등주의를 옹호하기도하면서도 반평등주의를 옹호하게 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 즉 자유가 자연의법칙으로 발견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독재 역시 자연의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부터 온다는 것을 뜻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 윤리적 실증주의


- 규범을 사실로 부터 도출해야 한다는 점은 생물학적 자연주의와 비슷하다.


- 실증적으로 존재하는 규칙 외에는 어떤 규범도 존재하지 않느다.


- 역사적으로 윤리적 실증주의는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이었다.


- 정신적 자연주의


- 생물학적 자연주의+윤리적 실증주의


- 인간의 진정한 자연적 본성으로 부터 규범이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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