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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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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Feb 05. 2016

요한과 복음

요한복음 첫 장을 대하는 어떤 자세

요한이 바라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약간 다른 제자들과 다른 것 같아


그리고 태초라는 것이 시간의 개념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사건의 개념으로 보게 되는 것 같아.


 태초라는 사건, 그 분이 말씀을 으로 세상을 만드시고 하나도 그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사건.


 그 사건을 오늘 내가 만나니깐 나에게도 오늘은 태초야.

드래곤볼의 수련의 방

 수련의방처럼 곧 우리의 내면과 우리인간은 하나의 거대한 세계잖아?

그렇다면 우리의 세계가 오늘 이 말씀, 이 빛을 만남으로 태초가 시작되는 거지.


 사건이 시작되는 거지.

그리고 그 사건에는 주체들이 등장하지.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모으시는거야.

그런데 나는 오늘도 그 앞에 불려 갔어. 마치 사도요한이 거룩한 예배에 불려갔듯이, 마치 이사야가 거룩한 성전에 불러갔듯이, 나는 오늘도 태초에 불려가서 그 분이 창조하시는 세계를 보고왔어.


그래 맞아 바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그 분의 사건이 오늘도 내게 일어나는 것이 복음이야.


마치 헌법 전문에서 주어를 찾으면-대한국민- 완전히 새로운 헌법이 되는 것 처럼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사건이야.

 이 사건이 오늘도 나를 새로운 세계로 초청해. 그 말씀이 나를 어디로 부르시냐면 다음에 나오는 것들과 같지.


말씀이 육신이 되셨고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라는 말은 말씀이라는 것이 언어의 구조 그리고 그 언어의 구조 안에서 재료가 되는 언어기반(형식-랑그)과 언어행위(의미-담화, 빠롤)를 이룬 이미 완벽한 생명이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야


왜 요한은 이렇게 말씀이신 예수님을 먼저 주목한 걸까? 궁금해진다

또한 그는 빛이고 세상에 오셨는데, 사람들이 꺠닫지 못했데, 그렇데. 빛이 세상에 오셨는데 자기들이 악함으로 깨닫지 못했데.  한번도 빛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하지.


실상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된 디렉션을 모르는 상황에서는 어느것이 옳은지 분간하지 힘들잖아. 무엇을 판단한다는 것은 무엇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미 포함된 것인데, 그 관점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결국 모르는 좌표없는 인생을 살게 되잖아?


그게 빛이 없는 것 같아.

그 빛이 내 안에 있다면 오늘도 나는 그 빛을 따라 갈테야.

율법은 모세로 부터 오고 은혜와 진리는 그리스도 예수로 부터 온다고 하네. 요한이 경험하고 느낀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였고 진리였어. 그 진리라는 것은 진짜 변하지 않음. 실제와 상징, 상상이 하나가되는 일치의 값. 혹은 온전한 상상이 하나의 상징에서 수 많은 자유의 현실의 값을 현시하는 것일수도 있지. 율법의 왕의 대로를 수축하는 것이었다면, 이제 우리는 그 대로를 걸어가는 왕을 만나는 거야, 그 왕이 곧 진리이시고 은혜이신것이지.


정말 이렇게 풍부한 텍스트가 있을까?

나는 벌써 태초의 사건에 초대되어서 빛이 없는 사람들을 지나 빛을 따라서

그리스도의 길을 걷고 있어.


중2학년 떄 백일장을 했는데,

그 때 '빛'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썻고 상을 탔었지.

아마도 요한복음을 읽고 시를 써서 그런것 같아. 잠시 생각해보면 그 때를 '빛이 온다, 그 빛은 모든 은하계를 거쳐서 마침내 온다.


뚜렷하게 오고 절대 꺽이지 않는다.

그 빛이 닿는고마다 모두 생명이다.

모두 기쁨이다.


생명의 자신의 온전한 뜻을 꺠닫고 마침내 자신들도 빛이 된다' 이 정도 였던 것 같아. 내 안에 막연하게 발생한 사건을 찾아다니면서 묘사했던 건데, 상을 탔어. 신기하게도 나는 그냥 묘사한거였는데 상을 탄거지.


이렇게 생각하면 헤르만해세의 '골드문트와 나르치스'에 나오는 조각가들의 심상과도 같아. 이미 그들은 받았어. 조각하기 전에 그 조각의 완전한 모습을 받은거지 그리고 그 모습을 표현하는 족족 예술작품이 되지.


봐봐. 내 안에 빛이 있고 그 빛은 나를 비추고 나의 내몀을 비추어서 새롭게 새롭게 날마나 나를 태초로 부터 사람들을 지나 그 대로까지 인도해.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2장부터 드러나는 그 분이, 그 말씀이 내게 말씀하신다는 거지. 그리고 내가 직접 그 음성을 듣고 그 분을 따라간다는 거야. 나중에 요한복음 10장이후부터 나오는 주의음성을 듣는 양으로 또 사건이 발생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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