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상징과 리쾨르
계속해서 폴 리쾨르의
악의 상징을 읽고 있다
생각나게 하는 생각과 생각하게 하는
생각의 싸움인 현실이다.
오늘 계속해서 생각나게 하는 생각은
온유함의 진정한 가치
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다가
이제야 조금씩 모든 것의 기본적인 발현은
온유함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온유함으로 통해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오는 모든 유혹과 자극에 대해서
반응하는 자아의 모습을 뒤로 하고
나를 지으신 분의
호흡을 생각하게 된다
온유함으로 통해서
우리는 내가 먼저가 아니라
그 분이 먼저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 분이 먼저라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여전히 지금도
나를 기다리시며
귀를 귀울이시는 하나님을 만날 때에야
비로소 나의 자유의지의 차원에서
선악과를 조용히 내려 놓고
온유함으로 겸손을 선택하게 된다
겸손 역시
생각나게 하는 생각에 대한 반응이다
즉, 우리가 겸손하고 싶어서
겸손해지는 것은 생각하는 생각이다
이것은 다분히 힘들기도 하고
누군가의 욕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나게 하는 생각의 중심에는
말씀과 그 분의 삶
오셔서 실제로 사셨던 말과
행동이 기반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온유함과 겸손은
생각나게 하는
생각들의 총체이다
함브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자아의 아우성 속에서
조용히 나 자신을 돌아 본다
그리고 생각나게 하는 생각의 근본
예를 들면,
분주함의 근본을 생각해 본다
왜 이렇게 바쁘고
누군가를 통제하고 싶고
빨리 말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면
누군가가 내게 불어 넣어준
생각하는 생각을 따라간 것
온유함을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을 생각한다
진정한 겸손함은 자기 자신이
겸손한지를 잊는 것이다
온유함도 마찬가지게지
내면에서 끌어오르는 전쟁을 잠재우고
사랑과 용서의 결론이
온유함이라는 겉옷을 입고 나올테니
오늘도 내 안에 치열한 전쟁이
하루의 마지막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옷입고 기뻐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