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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Nov 16. 2017

기계와 자본

마르크스자본론 2_철학아카데미

때께20171115_철학아카데미

마르크스자본론2_임경석 교수

13장 기계와 대공업 2 / 5절 노동자와 기계의 투쟁



들어가기


노동자는 언제부터 이렇게 비참한 삶으로 전락했는가?잉여가치에 대한 댓가를 비례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돌려받는 사회구조는 언제 만들어졌는가? 가내수공업-협업-분업-메뉴팩쳐-대공장'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는 어떤 방식으로 생존하게 되었는가? 막스는 무조건적으로 '기계도입'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사회주의로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즉, 생산력의 발전이 있은 후에 그것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고민하다보면 사회주의로 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5절, 노동자와 기계의 투쟁


실업의 두려움과 기계도입으로 인한 실업, 실직에 대항한 노동자의 초기 사보타지를 볼 수 있다. 농촌에서 기계를 이용한 대규모 논업의 토지약탈이 일어났다. 모든 기계 개량의 변함없은 목적과 경향은 노동의 가격을 인하시키는 것이다. 자본가의 입장에서 요구되는 자동화와 '머리의 권리'를 고민해 보자. 자본가와 임금노동자 사이의 투쟁은 자본관계가 발생한 첫날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기계가 도입된 때로부터 비로소 노동자는 자본의 물질적 존재형태인 노동수단 자체에 대하여 투쟁하게 된다. 이러한 투쟁 형태는 러다이트운동(Luddite movemen, 노동자들의 대규모 기계파괴)로 까지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반 자코뱅 정부에게 매우 반동적인 강압수단을 취할 구실을 주게 되었고, 대대적인 국가의 탄압을 받게 된다.



기계, 자본주의


마르크스는 이 5절(노동자와 기계의 투쟁)에서 이러한 현상이 어째서 일어나는지에 관해 다루고 있다. 우선 그 전에 그는 이렇나 기계의 등장에 대응하여 '노동자가 기계와 기계의 사용을 구별하고, 물질적 생산수단 그 자체를 공격하는 것으로부터 그것을 이용하는 사회형태로 나아가는 데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즉, 러다이트 운동에 대해 마르크스는 부족하다고 평가했따고 생각된다. 결국 노동자들은 이러한 단순한 파괴행동을 넘어, 자신들을 위협하는 것이 기계 자체가 아니라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이라는 것을 깨닫고 기계의 또 다른 사회적 이용형태를 발견해 내기까지 과도적인 모습이라 평하는 것이다.


면직공업에서 발전하는 기계제도는 곧 전 산업으로 확장된다.


메뉴팩쳐, 공장


왜 노동자와 기계는 투쟁하는가에 관하여 마르크스는 메뉴팩쳐와 공장의 근본적인 차이를 말한다. 메뉴팩쳐시스템은 도제제도에 의해서 전수되는 특징이 있다. 기본적으로 메뉴팩쳐 시대에는 노동자들은 그들의 투쟁 대상을 메뉴팩처 자체로 삼지 않았다.그러나 이제는 그 대상을 분명 공장이라는 자본주의적 기계 활용으로 삼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메뉴팩쳐와 공장의 차이에서 온다. 메뉴팩처는 전문노동자들의 위계제도, 내부적으로 편성된 집단, 마이스터의 존재라는 특성이 있다. 공장은 작업의 수평화, 연령과 성의 자연적 차이만 존재, 단순분업(감독자와 노동자). 교체가능성의 특징을 갖는다.



노동자, 경쟁자


이러한 차이에 의해서 노동수단은 기계의 형태를 취하자 마자 곧 노동자들의 경쟁자가 된다. 공장 시스템 안에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가지는 고유 가치를 잃고,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또 중요한 사실은 이제 기계라는 불변자본과 노동이라는 가변자본이 경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기계에 의해서 피해를 보는 과정은 이러하다.



기계, 피해


기계의 의한 자본의 자기증신은 노동자 수에 반비례한다. 이는 자본이 빨리 불변자본으로 전화노디면 더 이상 자본 투입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들 중 기계 때문에 불필요하게 된 사람들(실업자)은 수공업과 메뉴팩쳐 생산에 다시 종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기계가 필요 없는 부분메만 사람들이 몰리게 되고, 노동시장을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지기 시작해 노동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이렇게 기계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즉 공장은 노동자와 적대적이게 발전한다.



기계, 승리


결국 이러한 노동자와 기계의 대립은, 기계의 승리(정확하게 말하면 자본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메뉴팩쳐 시대까지만 해도 그 고유한 가치와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던 노동자들은 이제 그 힘을 모두 잃게 된다. 이는 기계가 임금노동자를 과잉으로 만들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는 우세한 경쟁자이며, 노동자들의 주기적 반항인 파업ㅇ르 무력하게 만들기 위한 가장 유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동자와 기계의 대립이 끝나게 되면 결과는 이제 기계 체제의 끊임없는 팽창(축적되는 힘, 늘어나는 기계 숫자, 끊임없는 기술진보)만이 남게 된다. 이는 더욱 생산적이며 규모가 큰 기계들이 소수의 사본가들의 수중에 집중됨을 이야기하며, 필요 노동자들이 감소하게 결과를 다시 낳게 된다.



제 6절, 기계에 의한 구축된 노동자에 대한 보상설


이렇듯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 이래서는 노동자들이 기계의 생산력 발전에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이는 위의 절에서 말했듯 자본은 이제 더욱 적은 수의 노동자가 필요하게 되고, 그에 따라 실업자들이 늘어나고 노동의 가치가 하락하여 착취를 더욱 유발한다. 혹자는 기계에 대체되지 않은 산업에서 노동자들이 고용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 역시 말이 안되는 것이 일단 기계가 노동자들에게 승리하기 시작하면 기계가 곧 생산을 장악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기계들을 탄생시켰던 메뉴팩처의 영역까지 기계들은 대체한다. 그렇게 팽창하는 기계 산업은 끊임없이 다시 노동자들을 산업에서 쫓아내게 된다. 물론 팽창 과정에서 또 다른 노동영역의 일자리(유통업 등)이 나타날 수 있겠지만, 그 사이 사라진 일자리 수에는 미치지 못하는데다가 다시 그 노동영역은 곧 기계들에게 점령당하게 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러한 결과에 대한 원인은 아니라고 말한다. 기계를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중요한데, 기계가 자본주의화가 되면 기계와 노동자가 경쟁하게 되고, 결국은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뺏끼게 도될 것이다기계 경영과 새로운 대규모 생산부문의 원료와 생산노동자의 필요증대와 사회적 노동분업의 촉진은 사치품생산과 세계시장을 발달시키고 결국 운송업의 발달을 가지게 오게 된다. 마르크스는 당시의 가스공업, 전신업, 사진업, 항해업, 철도업 등 비교적 신흥 사업의 확장이 결코 기계의 자본주의적 이용을 통한 성과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결론 짓는다. 왜냐하면 그에 따르면, 총생산에서 이들 분야가 차지하는 범위는 '조잡한 육체노동'의 필요에 정비례할 뿐이기 때문이다.



1929년의 대공황은 생존권을 위협받는 가운데, 기로에 서게된다. 이때 제 2차 대전은 새로운 부의 창출을 가지고 왔다


7절, 기계 경영 발전에 따른 노동자의 축출과 흡수 및 면업공황


공장노동자들의 증가는 결국 단지 취업노동자 총수의 감소로 표현될 뿐이다. 고용노동자 수의 상대적 감소는 그 절대적 증가와 양립한다. 기계 경영의확대와 소재지의 다변화를 통한 '새로운 국제적분업international Teilung der Arbeit와 미국의 경제적 발전의 원동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경제는 '활황-호황-과잉생산-공황-정체'라는 주기를 갖는다.



호황, 공황


기계는 최종적으로 노동노예를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증가시킨다. '과도기'를 거치고 나면 기계는 처음 도입될 때보다도 훨씬 더 만흔 노동자를 실업자로 만든다. 공장부문의 지나친 확대가 노동자 수를 상대적으로 감소시키며, 절대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기계제 경영의 성장에 의해 최종적으로 공장노동자가 실업자가 되는 노동자들보다 더 많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투하자본에 비해 고용되는 노동자의 수는 상대적으로 감소한다. 기계는 특별이윤을 뽑아내며, 이는 새로운 투자처를 요구하는 사회적 추가자본을 끌어들인다. 이에 기계제 경영이 확대되고, 이에 따라 기계는원료의 직접적인 증가를 가져온다. 곧, 기계제 경영은 외국의 수공업생산을 파멸시킴으로서 외국을 자기의 원료생산지로 변화시켜버리며, 식민지화를 촉진한다. 그리하여 기계제 경영의 본거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국제분업이 형성되게 된다. 기계 공장제가 엄청나게 확자오디고, 세계시장에 의존하게 되면서 생산은 과도하고 팽창하게 된다. 그에 따라 시장에는 상품이 넘쳐나게 되면서, 시장이 조금이라도 수축하면 생산은 마비 상태에 빠진다. 산업은 활황-호황-과잉생산-공황-침체라는 연속적인 국면들로 전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가들 사이에 격렬한 투쟁이 전개되며, 임금을 인하하여 상품의 가격을 낮추고자 하게 된다. 기계제 경영에 의한 경기 순환은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이리 저리 내몰아된다. 이런 과정에서 심지어 생산과정의 변혁과 혁신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호황과 불황의 주기는 점차 짧아지고 있고, 특히 불황의 시기가 더 길어지고 있다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면직공업의 제 1기에 해당하는 45년(1770~1815)에서 공황과 침체는 불과 5년에 불과했으나, 1846~1863년 사이에는 호황이 8년이었으나 불황은 9년이었다.  



8절, 대공업으로 말미암은 메뉴팩처, 수공업, 가내노동의 변혁


가난하고 영락한 부모의 자녀에 대한 노동 강요와 세대 간의 돌봄의 윤리의 파괴가 일어난다. 갑작스러운 주문의 증대와 초과과도 노동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공업과 분업에 기초한 협업이 폐기 된다. 메뉴팩처와 가내공업에 공장제도가 가지고 있는 착취구조가 더욱 압박을 강하게 되면서 생산력을 위한 노동착취가 더해지는 것이다. 근대적 메뉴팩처에서도 기계제 공장의 여파로 근로조건과 노동환경이 급속하게 악화된다. 근대적 가내공업도 마찬가지로 운영에 있어서 기계제 노동이 가지고 있는 방식을 따르면서 자본주의의 폐해가 드러나게 된다. 대기업의 방식이 중소기업과 개인기업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되어서 결국은 근대적 메뉴팩처와 근대적 가내노동의 대공업으로의 이행을 촉진한다.전체적으로 노동윤리와 노동가치, 노동조건들을 모두 파괴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메뉴팩처와 가내공업은 결국 경쟁력에 있어서 우위를 선점하지 못하고, 공장제 경영으로 전화한다.



9절, 공장입법


공장입법의 보건조항과 교육조합은 공장의 운영원리에 따라서 퇴보하게 된다. 노동일을 규제하는 법이 이러한 환경에서 만들어 질 수 있겠는가?



10절, 대공업과 농업


농업에서의 기계의 사용은 대농업으로 발전하고 농민의 공장노동자로의 전환이 일어난다. 농촌 노동자가 비교적 넓은 토지 위에 분산되어 있다는 조건이 그들의 저항력을 집중된 도시 노동자의 저항력 강화와 대조적으로 만든다. 자본주의적 농업의 모든 진보는 농민약탈, 토지 약탈, 비옥도의 지속적 원천의 약탈로써의 진보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동시에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와 노동자를 파괴함으로써만 사회적 생산과 정의 기술과 결합을 발전시킨다.


공업에 이어 농업과 축상업도 기계식 공장운영으로 변화한다


인간, 기계화


다시 말하지만, 마르크스는 기계제를 비판하지 않았다. 다만, 기계제가 가지고 오는 사회적 문제를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누어서 생각한 것이다. 사람의 가치와 방향, 목적에 기계의 생산을 맞췄다면, 대규모의 공장이 나오면서 인간이 기계에 자신의 삶을 맞춰가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민네이션, 생각


마르크스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가지가 필요하다. 일단은 역사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역사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보편화시키면 앞으로 일어나는 역사에 대해서도 보편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철학이다. 그 다음은 세상의 존재원리에 대해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물체들이 서로 연결되는 방식, 그것이 발전해서 인간사회와 국가로 가는 방식이 사실은 같은 원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또한 가치를 전제해야 하는데, 이것은 노동이 자체가 환원되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는 개념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데모니아'라는 개념과 비슷한데, 인간이 움직이고 노동하는 이유는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을 전제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또한 사회구조를 이해할 때 구조의 근본이 되는 것들을 전제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전제하는 사회는 하부구조의 보이는 것과 상부구조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이 둘의 관계는 상부가 하부를 다스리게 된다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계급으로 치환되어서 상부계급이 하부계급을 다스리는 것이 분석이 되고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상부계급을 전복시켜서 하부계급과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혁명론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민네이션, 메타인지


메뉴팩쳐에서는 도제를 기르기 위해서 자신이 모든 공정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메타인지를 가지게 된다. 공정 전체를 알고 이것을 시간과 텍스트에 맞게 변용하여 전략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쉬고, 언제 일해야할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은 자유로운 노동을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장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다. 끝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정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메타인지를 기르는 것, 이것이 오히려 혁명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끝까지 생각해본다면 지금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민네이션, 마르크스


마르크스가 가진 사회비판의 영역에서 보면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미 놓여져 있는 기술문명 안에서 어떻게 정치적으로 우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볼 수 있다일단은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한다는 것에 대해서 '기술문명' 자체는 가치 중립적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민이 생긴다. 그럼 제일 약한고리였던 러시아 볼셰비키의 혁명과 함께 중국, 북한에서 사회주의의 성공이 실패한? 혹은 그 정신을 잊어 버리는 것은 무엇인가물론 스탈린도 마오쪄둥도 산업화를 위해서 노력을 하지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것을 움직이는 방식이 사회주의적 방식, 공산주의적 방식이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닌가?마르크스는 당에 의한 사회의 구성을 마오쪄둥이나 스탈린과 다르게 말한 것인가? 혹시 그렇다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노이카, 글라스트 노이트' 혹은 등소평의 '개혁개방'은 변질이 아니라 오히려 제대로 궤도를 오른 것인가? '잉여가치'를 다루지 못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실패였던 것일까? 새로운 자본가들이 노동자들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인가?

중국의 문화 혁명. 과연 무엇을 위한 혁명이었나? 사회주의는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생산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인민들을 위한 민주주의가 확장되었다면 사회주의는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마르크스의 이상을 실현했ㅇ르지도 모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존권을 보장하는 '빵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이유는 '체제 경쟁'이라는 프레임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체제경젱에 혈연이 된 나머지 인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주지 못했고, 그것이 결국은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민주주의와 생산력을 가지고 사회주의를 만들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유지가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회주의 이념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시도는 실패했을 뿐이다. 작은 규모에서 사회주의가 민주주의와 만나서 사민주의가 탄생했고, 이것이 스웨덴에서 '복지국가' 모델로 탄생하게 되었다.



사회주의, 자본주의


2차 세계대전 전에 일어난 일은 매우 중요하다.자본주의로 표방되는 미국은 1929년에 공항을 맞이하게 되었고, 사회주의로 표방되는 소련은 1925년 레닌의 사망 후에 생산력 상승을 위한 방법론 모색에 있어서 미궁에 빠졌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미국은 전쟁의 막대한 무기들을 빨아서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생산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소련은 이 때 역시 생산력을 확보했지만 스탈린 독재의 기틀이 마련되는 '명분'을 제공했고 이것이 '체제우위'라는 프레임에 빠지면서 군사화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이러한 역사의 조타수들의 선택은 국가를, 사회를, 가정을, 개인을 완전히 다른방식으로 이끌었다.


미국드라마 높은 성의 사나이에서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일본과 독일의 지배를 받는다는 설정이 나온다


민네이션, 사회


우리는 다시 '사회'를 만들어내야 한다. 새로운 혁신은 '사회'를 자시 창조해내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사회를 국가에서 축소해서 끌어올지, 아니면 가정의 확대에서 끌어올지 아니면 '공동체주의'에서 부터 아예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낼지는 고민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어쨌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내야 한다.그것이 우리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방법론이다.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다.



민네이션, 생각


마르크스의 메타인지에서는 기계제 공장제와 자본가의 탐욕이 결국 하부구조를 모두 바꾸어 버리게 된다. 기계제 공장운영 방식은 가내공업, 메뉴팩처라는 공업 뿐 아니라 농업에서도 운영되고, 뿐만 아니라 스포츠와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삶의 부분에서 공장제가 가지고 있는 자본주의의 독성을 드러내게 된다. 결국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효율성의 방법론이 전혀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분석하고 판단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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