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송 철학_철학아카데미
20180105_철학아카데미
베르그송철학_류종렬
베르그송철학에서 인간 본성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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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송 철학에서 인간 본성을 어떻게 보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형이상학의 탄생이라는 의미에서 실재성의 철학이라고 한다. 베르그송은 한국에서는 보수철학의 으뜸이라고 보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물론 유물론의 전통을 잘 이어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보수주의를 표방하지는 않는다. 발생론이나 진화론적인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여러곳에서 인용이 되기는 하지만 피아제의 발달심리학은 칸트를 중심으로 분석철학적인 접근을 하고 뒤르켕도 역시 신칸트주의의 입장에서 지식과 정보를 통해서 철학을 한다는 의미에서 베르그송과 다르다. 그럼 베르그송은 어떤 부분이 독특한가? 유심론과 형이상학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첫번째일 것이다. 한국의 철학사조는 1920년에서부터 70년까지는 독일철학이 발전하고 60년대 이후에는 새롭게 미국에서 건너온 철학이 함께 유명하게 된다. 그당시에는 프랑스철학은 별로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었다.
정상, 비정상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혁명을 거치면서 정상normal과 비정상abnormal의 개념을 수평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영미전통은 비정상은 범죄심리학적인 접근을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 비정상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것으로 인식되는 것을 볼 수 있다.그러나 철학적으로 말하면 비정상은 이데아와 물질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이데아가 정상이고 물질이 비정상이라는 측과 이데가가 비정상이고 물질이 정상이라는 측이 싸우기 시작한다.
베르그송, 철학
베르그송 철학은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정확하게 반대적 위치에 있다. 이데아에서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서 이데아를 찾는 것이다. 플라톤에게는 진리는 이데아, 상부의 철학이다. 그러나 베르그송이 보기에는 진리는 물질속에 있다. 이데아에서 현실과 접점으로 다가오는 지점에 이데아적 시뮬라크르가 있고, 물질에서 현실과 접접으로 다가가는 지점에서도 시뮬라크르가 있다 그러나 이데아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뮬라크르는 진리의 어떤 모방이라고 부른다. 물질에서 시작해서 현상적으로 만들어진 시뮬라크르는 물질에 속해 있는 것 때문에 거직이나 허상이 된다. 이러한 도식을 가지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들뢰즈가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설명한다.
베르그송, 철학사적 성찰
서양 철학사를 개관하면 그리스로마의 고대철학, 중세 스콜라철학, 인간의 자각에서 시작하는 근대 철학이 있고, 그 다음에는 19세기에 다양한 갈래의 철학이 등장한다. 19세기에는 키에르케고르, 맑스, 니체, 프로이트 등이 있었으며, 이들을 프랑스 철학자 데꽁브는 새로운 낌새를 알아차린 철학자들이라 한다. 이 새로운 성격의 철학을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 중의 일부는 차이와 반복의 철학으로 읽는다. 이 철학자들이 각 분야(종교, 역사, 윤리, 심리)에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려 했다면, 베르그송은 서양 형이상학의 새로운 방향un nouveau sens을 제시한 철학이다. 베르그송Bergson 1859-1941에 따르면, 고대철학은 불변의 원리를 근거로 정태적 형이상학을 전개하였고, 스콜라철학은 불변의 원리와 종교의 결합에 머물렀다. 근대철학에서는 물체들 사이의 관계를 통하여 법칙을 찾고 그 인식의 틀을 구성하려고 하였다. 그 법칙이라는 것도 고대의 불변의 원리를 닮아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베르그송은 변화하면서 운동하는 실재성에 근거를 두고 경험에 근거한 새로운 철학을 시도하였다.그는 이에 대한 검증을 정확성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19세기의 새로운 실증적 자료를 검토하였다. 변화와 운동의 실재성을 맞는 실증적 자료를 새로이 등장한 생물학, 사회학, 심리학에서 길어 온다. 고대철학이 논리와 수학에서, 근대철학이 보편수학과 물리학에서 길어온 것과 다르다는 의미에서 베르그송 철학은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베르그송, 실재성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철학사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실재성이란 개념이 바뀌었다. 고대철학에서 실재성은 플라톤의 이데아idea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이도스eidos처럼 불변하며 불가분의 존재로서 모든 현상의 모델이 되는 존재이다. 중세 스콜라 철학은 이런 의미를 이어받아 천상의 존재를 실체로 파악하고 현실을 그것보다 실재성이 모자라는 것으로 여기는 관점을 그대로 전승하였다. 근대 철학자들을 이런 실체, 실재성이 순수관념이나 정의에 의해 설정된 개념에만 존재하기 보다는 사유 존재와 대상존재 모두 실재성이 있다는 관점에 이른다. 근대 사유는 주객 분열적 사유라고 할 수 있으나, 이런 생각은 대상을 조작하는 방식에 유리하고, 또한 근대의 기술과 산업화에 추동력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고대의 완전과 충만에 대한 사유가 근대에서는 분열과 분리의 사유로 변화하면서, 한편으로 인간에게 편리와 재화를 가져다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성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배제하였다. 또한 그것은 지배와 피지배, 절대선과 소외 등에 따른 불안과 비관을 방치하여 두었다. 19세기에 팽배한 염세주의와 실재에 도달 불가능성에 대한 소외로부터 베르그송은 인간 특성의 실재성을 발히고 인간의 생성과 발전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난관과 고통을 해소하며 살아왔는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 실재성은 고대와 근대의 실재성과는 본성상 차이가 있다.
본성, 차이
본성상의 차이는 존재와 당위의 구분과는 다르다.존재와 당위는 삶과 행위에서 문제이다. 지성에 의한 양적 차이의 문제도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차이의 우월성의 문제는 정도의 차이이다.이에 비해 본성상의 차이란 보편수학의 잣대가 물리학에 전적으로 맞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며, 특히 생물학에서도 잣대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보편수학과 생명과학은 본성상 차이가 있다. 순수논리와 보편수학의 실재성은 생명과 심리의 실재성과 본성상 다르다는 것이다. 근대성이 논리와 보편수학을 기반으로 생명과 심리를 다루었는데 비하여, 베르그송은 이제 생명과 심리의 차원에서는 극히 일부분만이 논리의 원칙과 보편수학의 원리에 일치한다고 본다.
베르그송, 문제제기
베르그송의 철학적 태도 중의 하나는 문제제기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잘 제기된 문제제기 속에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심리적 사실과 공동체의 삶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를 논리의 원리나 수학의 법칙을 강제로 주입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당한 문제제기는 생명질서에서나 사회조직화에 적합하다. 베르그송에서 실재성인 생명은 진화과정에서 장애물을 거치면서 겪었던 경험을 자신의 전과거로서 담지하고 있으며, 현재 행위를 통해 장애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창조의 방향으로 개방되어 있다. 그는 이 총체적 과정을 다루고자 하였다.
베르그송, 정확성
다른 하나는 정확성이다. 인간의 경험은 단지 개인의 경험에 머물지 않는다. 어느 개인이든 무인도에 떨어지면 그가 습관적 방식으로 살아온 이상으로 노력하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노력하며 정확성을 필요로 한다. 그는 개인의 삶의 역정과 과거 전 역사를 총체적으로 응용하여, 그가 속했던 사회의 삶의 방식 이상으로 인류적 방식으로 행위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현재로서 한 시대 한 사회에 정태적으로 머문 존재를 넘어서, 생명체가 겪어온 기나긴 과거 역정의 과정을 담지하고서, 미래로 향해 예상하면서 열려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이러한 시간적 과정을 지닌 존재가 인간이며, 불가분의 생명이다. 베르그송은 이를 '지속'duree이라 새로이 명명하였다. 한 개인이라도 인류 또는 생명의 전 역사과정과 불가분과정에 있따는 점에서 지속이다. 그러면 이런 사상의 태동의 배경을 살펴보자.
19세기, 새로운 형이상학
어는 철학자든지 과거를 수렴하고 미래를 여는 과정에 있으며, 시대의 상황과 지정학적 위상의 영향을 입고 있다.베르그송이 그의 첫 저술 '의식의 무매개적 자료에 관한 시론'Essai sur les donnees immediates de la conscience 1889의 서문에서 지적하듯이 대부분 철학은 언어와 그 시대의 상식과 시화적 전통에 매여 있다.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조건을 넘어서 철학은 끊임없이 반성하고 자신을 비판하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베르그송에게도 당연히 철학사적 반성과 더불어 근대철학의 방식에 대한 비판과 그에 따른 새로운 성찰이 있다.그는 고대 철학의 정지와 부동성에 대한 반성, 근대철학에서 인식론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자신의 철학적 대안을 마련하였다.
고대철학, 베르그송
그리스도 고대철학은 학문의 발생초기에는 만물의 근원적 성질을 다루고자 하였다. 그 원질arche의 생성문제가 존재의 문제로 바뀌면서 존재의 불변의 원리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였다.이 원리는 정의상으로 주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존재하는 것임과 동시에 현상과 별개로서 존재하는 실재로 여겨졌다. 이 원리는 동일성의 원리로서 그 자체로 완결적이라 지배적일 뿐만이 아니라, 천상의 원 운동만큼이나 아름답고 완전하다. 이 원리가 모든 사실의 근거가 되고 원인이 된다. 베르그송은 이 원리가 그 자체적으로 성립하는 것은 정의상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 원리의 발생적 근거에 대해서 아무 증거도 없다는 것이다. 고대 형이상학의 원리는 결국 논리와 순수 수학에서만 정립되는 구성물일 뿐이다.
근대철학, 원리
근대철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원리 자체가 이미a priori 인간에게 태어나면서 주어진innee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원리와 그에 걸맞은 대상에 대해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가를 다룬다. 한편으로는 라틴계의 합리론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앵글로의 경험론이 있다. 데카르트의 철학은 사유하는 실체와 부피를 가진 실체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였다. 합리론의 특징은 사유의 풀림처럼 세계를 분석적으로 하나의 원리로부터 전개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경험론의 특징은 빈 종이에 조금씩 첨가하듯이 인간의 지식을 축적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둘의 지식 각각은 엄밀한 정합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었다. 비판론으로는 칸트는 수학의 완전하고 정합적 지식이 물체에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선천적 종합판단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지식의 완전성과 통일성을 주장한다. 그런데, 이 세 부류의 담론은 보편 수학과 물리학이 학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지닌다는 것을 말한 것 이상의 것이 아니다. 또한 위의 세 부류의 철학은 자신의 완벽한 정합성을 지니기 위하여 은연중에 고대철학의 동일성의 원리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동일성의 원리를 선전제로 삼는다는 것을 미리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 19세기
19세기에 제기된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이미 보편 수학의 완전성이 여럿중의 하나의 정합적 담론이며, 다른 정합적 담론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물리화학의 발전은 힘과 운동의 문제를 에너지와 열의 관심으로 나아간다. 생물학의 발전은 새로운 철학을 낳게 될 것이다. 생명체에서 세포의 결합또는 단위의 통일성은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화학의 결합과 달리 유기체화하는 생명체에는 생명에 고유한 새로운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베르나르Claude Bernard는 생명의 원리는 논리학의 원리와 본성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생명이란 물체에는 어떤 적용과 실험도 다시할 수 없는 불가역성을 지니며, 개체로서 불가분적 통일성 또는 정체성을 갖는다. 게다가 생명체는 물체의 생성과 달리 긴 발달의 과정을 거쳐 왔으며, 그 진리와 과정도 불가역적이다. 이런 관점의 연장선에서 생명 있는 물체를 한 순간에 원리나 지시에 따라 창조된 것으로 여기는 관점과 달리, 진화하는 발전하는 것으로 보는 진화론의 담론도 나온다.
사회구성, 19세기
사회의 구성은 개인의 집합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구조와 구성에 따라 전혀 다른 조직화의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원리에 매인 정태적 사회에 비하여, 새로운 사회의 유기적 구성은 새로운 사회 형태를 건설할 수 있다는 동태적 사회학이 나온다. 이 시점에서 인간 개인의 성격에 대한 반성은 새로운 심리학을 낳는다. 나아가 인간의 심리도 새명체처럼 외적 원리에 의해 단번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생명의 발전과정과 마찬가지로 성숙되고 확장된 것으로 여기는 담론이 전개된다. 이 점에서 심리학은 실험심리학이나 형태심리학과는 달리 정신병리학적 문제 제기가 나오고, 이어서 자아의 인지 심리학과는 다른 방향으로 자아의 위상에 대한 정신분석학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베르그송, 자아
베르그송은 이데아와 자연의 교차점, 합리론과 생물학의 교차점에서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새로운 경험의 철학을 하고자 했다. 베르그송은 개체적 자아를 넘어서 온자아Moi라는 실재성이 곧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존재가 현상으로 표면에서 표출로서 생기는 다양한 담론을 밝히려 한다.그리고 이 존재자들이 서로 연관을 맺는 삶의 새로운 양식과 조직화에까지 관심을 넓혀 간다. 이런 조직화는 물체의 결합에 대한 담론이나 생명체의 유기화에 대한 담론과는 달리, 인간들 사이의 어떤 유대를 강화하고 장애물을 우회하고 위험에 대비하려는 방식이다. 생명의 도약으로 생명의 창조적 진화의 한 극한에 이른 인간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삶의 형성체를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란 존재가 자신의 성립을 유지하고 그리고 새로운 개척을 실ㅎ애하며, 나아가 좀 더 나은 삶의 터전을 위하여 새로운 조직을 형성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베르그송은 철학자에서의 주요 문제제기를 검토하고 수렴하면서, 각 시대의 철학이 각각의 정합성에 의한 담론의 형식일 뿐이라고 여기고, 총체적 경험의 새로운 형이상학은 다른 방식으로 담론을 전개할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베르그송, 인간본성
베르그송의 새로운 철학, 새로운 형이상학은 칸트의 형이상학 불가능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왔다. 영국의 경험론과 관념연합 심리학을 계송한 스펜서의 진화론에서의 시간개념의 오류와 총체의 인식불가능성을 비판하면서 나왔다.19세기 후반을 지배했던 세기말적인 사조와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에 대한 저항 의식에서 나왔다. 쇼펜하우어류의 비관주의를 극복하고 자아의 자유와 새로운 인류성의 실현을 제시하려는 베르그송 철학은 낙관주의적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시간 혹은 지속과 생명도약을 설파하였다. 베르그송은 심리자아의 존재론적 근거를 밝히는 것은 '의식의 무매개적 자료에 과한 시론'이다`1987.'물질과 기억' 1896에서 생명자아의 발생론적 진화와 창조를 설명한다. 금기와 미신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의 성립할 수 있는 실천자아의 행위대한 노력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도덕과 종교의 두원천'1932에서 이다. 베르그송은 '정신적 에너지'1919에서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고 묻는다. 베르그송의 의도는 생성하고 생활하고 다름을 가늠하는 인간에 대한 경험 철학의 담론을 전개한 것이다. 그는 인간 본성을 탐구한 철학자이다. 이런 방향에서 베르그송 사상을 살펴보기 위하여 세가지 방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베르그송, 3가지 자아
심리존재는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이 존재는 변화하며 연속적이고 비가역적 존재이다.
발전자아는 존재의 현전은 시간 지속에서 생성과 진화과정을 통해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실천적 자아는 진화의 한 쪽 극한에 있는 인간이 왜 원만한 인류공동체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인간이 자연에 대해서는 자기 생존을 위해 사회형성에서 금지를 만들었으며 사회에서는 생명의 보존과 관삼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동체의 이념을 닫힌 신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게되었다고 베르그송은 설명한다.
민네이션, 생각
서양철학사는 크게 이데아와 물질로 나누어진다. 플라톤의 계보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데카르트-칸트-헤겔-쇼펜하우어' 같은 주지주의 전통이 발달하게 되고, 플로티누스의 계보에서는 '브르노-스피노자-루소-베르그송-들뢰즈'로 이어지는 자연철학자들이 발달하게 된다. 이러한 구분은 진리nous가 어디에 있는가를 규정하는 것에 따라서 달라진다. 진리가 자연에 있으면 물질을 더 중요시하며 실재계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된다. 진리가 이데아에 있으면 주지주의자가 되고 이것은 서양철학의 큰 흐름을 이룬다. 쉽게 말하면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고 이것을 연결하려고 하는 철학자들도 여럿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민네이션, 베르그송
베르그송은 19세기의 학문적 교차점에서 생명의 지속성을 주장했다.생명은 현시되어 있는 한 시간의 개념을 가지고, 시간의 축적인 경험은 생명의 지속성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경험의 축적의 개념에서 볼 때 동일자의 논리는 통하지가 않는다.
민네이션, 들뢰즈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와 반복은 처음과 나중에 다른 대상을 지칭한다.처음에 들뢰즈는 이데아세계의 차이와 반복은 동일반복이기 때문에 당위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차이와 반복은 자연의 자연스러운, 생명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본성이라고 한다. 들뢰즈는 스피노자와 베르그송을 이어서 자연과 본성에 대해서 우위를 주장했다. 자연과 본성에서 차이와 반복은 비동일반복이기 때문에 새로움을 만들어내고 생명체의 귀중함을 보여준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