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기리는 나라에 평화는 없다
천천히 부서진 이름들 가운데
시간이 쌓아논 무게를
찬찬히 뒤집어 본다
전해져오는 이야기로는 절대로
들을 수 없는 당신들의 목소리
옆집 철수
앞집 영희
모두모두
사라졌다
이제는 외국인들의 관광지가
되어버린 민족의 아픔이 서린 곳에서
잠시마나 그 어린시절의 당신의 인생을
그 숨결을
그 호흡을 그리어 봅니다
그랬겠지요.
지금처럼
철없이 미래를 기대하고
이제 갖 맞은 광복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를
그 때의 순수함에
포탄이 부서지듯이
당신들의 인생이 부서졌겠지요
알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빚을 지고 있어요
오늘이라는 이 선물을
제대로 살아갈 기회를
그리고 수 없이 묻혀져간 이름모를
당신들의 숭고함보다
누군가를 때려눕히고
명분 때문에 청춘들이라도
희생해야 한다는 각오를 가진
이들의 큰 호통이 더욱 생생한
지금의 현실에서
같은 질식,
같은 기침이 나옵니다
전쟁을 기념하는 나라에는
전쟁을 그만둘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전쟁을 치뤄낸 사람들의 입가에
또 다시 전쟁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당신들이 전쟁을 대면하지 않아서겠지요
다시 전쟁을 기린다면
나는 먼저 평화를 생각하겠고
다시 총성이 들리노라면
나는 희생을 감내하겠습니다
다만,
그 전에 이 전쟁이 끝나도록 기다리느니
이 전쟁이 시작되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 볼 참입니다
숭고한 이상을 가진
이들은 비록 점점 휘날리는 태극기처럼
곳곳에 숨어버렸지만
아직 제 가슴은 타오르고 있어요
사랑이 꽃필 때
정의가 하수같이 흘러 넘칠 때
다시 당신들을 기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조금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