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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추억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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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r 11. 2018

서랍과 시간

낭만이 시작되는 그 때 만난 그를 생각하며

기억의 서랍에서 하나를 꺼냈는데

아름다운 추억인 날은 너무나 기쁘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서랍에

흘러간 시간의 기억을 넣어 놓고는


잠시 미래가 현재를 가져가기 전에

과거를 꺼내어 현실에 덧붙인다


그것이 과거의 아픔일 때는 우울함으로

혹은 과거의 기쁨일 때는 추억으로 덧붙인다




현실이 과거와 덧붙여져서

과거-추억-현재가 될때 낭만이 흘러나오는 시점이다


나는 지금 그런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낭만이 흘러나와서 아름다운 추억이 떠오르는 중


사랑하는 사람들과 동시대에 만났다는 것은

우주와 우주가 연결되는 기쁜 일이다


그의 세계에서 나는 무한한 코스모스를 보고

나는 나의 동산에 그를 초대한다


함께 자연이 되어갔던 풍경과

뜨거웠던 여름날의 감정들이 하나가 된 추억이


2층서랍 오른쪽 작은 상자에 담겨져 있고

오늘은 그때 만났던 그들을 생각하고 추억한다




나에게 삶의 의미를 알려주던 그는

30이 조금 넘었지만 새치가 조금 있었다


그는 상대성이론을 고민하던 아인슈타인같았고

시간이 향기가 난다며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20세를 조금 넘은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그때 처음으로 나는 쏟아져 들어오는 빛들의 근원이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출발하여

지금에서야 나에게 다가온 오래된 미래라는 걸 알았다


문득 그와의 아득한 시간들도 한편은

오래된 미래가 아닐까 생각했다


오래된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비춰온 각자의 빛들이

오늘에서야 이 곳에서 만나는 그런.


나는 그때 시간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자신의 것인 비밀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 거기서부터인 것 같다

낭만이 시작된지점 말이다


더 이상 남의 시간에 나를 맞추지 않아도 되었고

나의 시간을 바꾸어서 현실에 맞추지 않아도 되었다


역시 이 때부터 나는 현실을 이탈해서

고갱과 같이 과거와 미래를 한자리에 불러모으곤 했다


사람들은 가끔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는

이상주의자라고 놀리듯이 불러내곤 했다


그러나 상관은 없었다

모두는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기에


나는 굳이 내가 투사한

현실적인 장면들의 중첩된 모습들을


하나씩 번호를 매기고 줄을 그어

일자로 늘여놓고 2차원으로 표현할 필요가 없었기에.


이렇게 시작된 그와의 만남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우리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고


나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내가 누구인지

세상은 무엇인지를 한 시점에 불러모아서


그들에게 각각 의미를 부여하고

나열된 것들에게 다리를 놓았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는 내 삶 속에서 사라졌다


연락이 닿지도 않고 그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외로웠지만

한편으로는 영원히 그와 함께 이 시대를 걷는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그렇게 배운대로

가끔 나와 만나는 이들에게 낭만을 선물하고 있다


현실을 잠시 멈추고 과거의 추억을

한 자리에 불러모으는 사이에


그들에겐 내가 과거 내가 만났던 그가 되고

그들은 과거의 내가 되어서


함께 시간을 주관적으로 바꾸고서는

오래된 미래에서 불어오는 빛을 만끽하게 된다


함께 이 길을 걷는 이들에게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들이 낭만에 이르는 길이 되길.


어느 일요일 늦어가는 오후에 가끔

그가 생각나고 자연스럽게 나는 시간을 멈춘다




이런 하나의 만남에서부터

인생은 각자의 길을 걷고


나름대로의 데미안이 되어갔다

우주와 세계가 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나의 내면의 서랍에

오늘 꺼냈던 그와의 추억을 다시 살며 넣아두고


나는 시간을 다시 흘려보냈다

서랍과 시간.


다음에는 지식의 서재를 열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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