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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Apr 16. 2018

인간과 신학

하나님과 그의 세상_기독연구원 느헤미야

20180412_기독연구원느헤미야

하나님과 그의 세상(조직신학)_김형원

17장_인간이란 무엇인가?

18장_온전한 인간

19장_하나님의 형상

20장_죄



들어가기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내인생은 어디로 가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인간론이다. 베르나르베르베르는 이러한 인간론을 세가지로 규정했다. ‘인간은 어디서 오는가?’, ‘인간은 왜 사는가?’, ‘인간은 죽어서 어떻게 되는가?’와 같은 질문들이다.


인간은 그렇다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지식과 의지는 어떤 관계인가? 기독교에서는 그렇다면, 조직신학에서는 그렇다면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나님의 형상인가? 죄는 무엇인가?이에 대해서 오늘 알아보자.



불교, 인간이해


불교는 인간의 본래 성품이 선하다고 본자.

문제는 마음이 미혹을 당해서 번뇌가 일어나 시달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 즉 마음 공부를 통해 그런 번뇌를 제거하는 것이 진정한 구원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하는데,이것이 해탈이다. 이런과정을 거쳐 우리가 부처가 되며, 부처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번뇌를 걷어낸 우리 자신이 바로 부처인 것이다.


인간을 이렇게 이해하면 가장 힘써야 할 것은 수행을 통해 욕심을 걷어내고 내 안에 있는, 온갖 오물로 뒤덮여 있는 부처를 끄집어내는 일이다.

‘인간의 본성은 과연 선한가?’ 선하다면 왜 자연스럽게 돌아오지 않는가? 원래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진정한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가능하다.


헬라철학, 이성주의적 인간


라철학에서는(그리스) 인간을 다른 존재들과 가장 구별되게 하는 것은 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말하는 이성이라는 것은 단순히 생각나는 기능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ㅇ원을 성찰하고 이데아를 꿈꾸는 능력 다스리며 살아갈 수 있는 절제능력을 가지고 있따고 본다.


이런 이성적 삶을 방해하는 것이 육체이며, 그래서 육체의 정욕을 억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원론적 사고방식의 전형이며 여기서부터 금욕주의가 발생한다. 근대철학도 기본적으로 이런 사상을 계승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언명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을 이렇게 보는 것은 기본적으로 엘리트주의적인 사고방식이다.


실제로 플라톤을 비롯한 헬라 철학자들은 대중은 무제한 무지몽매한 자들이라고 보았다. 오직 철학자들만이 이성을 충분히 개발하고,이성을 따라 생각하고 살 수 있다고 본 것이다그래서 철학자들이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깊이 있는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무지한 찌꺼기같은 존재, 그저 찰학자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이런 주장은 맞는 것인가? 이런 인간관을 지금도 그대로 수용할 수 있을까?



유물론, 인간관


찰스다윈은 인간의 이성은 신적 기원을 갖는 것이 아니며 단지 진화과정을 통해 자연선택적으로 생겨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동물적 특성을 공유하는, 본성으로 이기적이고 충동적이며 공격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유물론적 인간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영호나과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우연하게 생겨난 것이며, 그래서 삶의 목적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대 신경생물학은 인간의 정신도 물리적, 화학적 작용이라고 말하면서 이제 더는 정신, 영혼과 같은 것들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와 같은 철학적 종교적 질문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저 진화의 원리를 따라 본능에 충실하게 살면 된다고 본다. 이 말은 맞는가? 이렇게 인간이 동물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인간관을 수용할 만한가?



인간, 성경


성경은 인간의 기원과 성격에 대해 처음부터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존재로서, 자연적으로 우연히 생겨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자로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세상은 남자와 여자가 힘께 있어야 하는 것이며, 인간은 다른 사람과 밀접한 인격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의존적인 존재다. 탄생부터  생존, 활동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과 다른 사람, 다른 피조물과 협력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인간은 인격적 존재앋.이성을 사용해서 무언가를 아고 판단할 수 있고, 좋고 나쁜 느낌, 즐겁고 힘겨운 느낌을 느끼며, 선과 악에 관한 도덕적 판단을 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로 만들어졌다.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를 나누는 것은 영적 존재인 인간에게 매우 자연스런 모습이었다. 비록 죄로 인해 인간이 하나님을 피해 도망가게 되었지만, 그것이 원래 의도된 자연스런 모습은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권위 아래 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한느 것이 인간됨을 최대한 발휘하는 길이고, 참된 행복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피조물을 관리할 수 있는 책임을 맡은 존재로 창조되었다. 인간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존재로 만들어졌다. 이는 원래 인간이 순수하고 의로웠음을 이야기해 준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창조성을 발휘하면서 문화를 창조하여 하낸ㅁ의 창조세계를 더욱 빛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인간은 자녀를 낳고 가족을 이루고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무위도식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일을 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비록 타락으로 일이 고되고 고통스러운 것이 되었지만, 일이라는 것은 원래 인간에게 보람을 주고 세상에 이바지하는 좋은 통로이며, 인간은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졌다.



인간구성, 삼분설


사람은 세 부분으로 구서오디어 있따고 보는 것이 삼분설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 ㄹ때에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흠이 없이 완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을 볼 수 있다. 이 말씀은 영, 혼, 육이라는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육체는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몸을 의미하고, 혼은 지성, 감정, 의지와 같은 인격적 요소들이며, 영은 그리스도인이 될 때 살아나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구성, 이분설


삼분설과는 달리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사람들은 영ruach, pneuma과 혼nephesh, psyche은 두 개의 구분된 실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것을 다른 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혼과 영은 같다는 것이다.  육체는 물질적인 부분을 의미하고, 영혼은 인간에게 있는 비물질적인 요소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성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분설이 더 적절한 설명이라고 생각된다.



인간, 통합적 존재


인간의 구성 요소가 영혼과 육체로 구분될 수 있다는 자체보다 성경이 더 강조하는 것은, 인간이 통합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통합적 존재로 나타난다. 육체와 영혼이 하나가 되어야 완전한 인간이다. 둘 리되면 인간이 아니다. 창조 때에 흙으로 육체를 만들었지만 하나님이 영을 불어 넣으신 후에야 완전한 인간이 되었다.


인간 활동은 통합적이다. 실제로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활동들은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이 함께 작용한다. 몸과 영혼이 통합적이라는 것은 특히 한 쪽이 약해질 때 다른 쪽도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사람은 영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육체적으로도 증상이 나타날 때가 많다. 인간이 통합적 존재라는 사실은 인간이 겪는 문제의 원인도 복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통합적 존재, 이해


구분되지만 통합적인인 존재인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밀라드 에릭슨Millard J. Erickson은 ‘복음주의 조직신학’에서  육체와 영혼의 결합을 화학적 복합체로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소금은 화학원소로 염화나트륨이다. 염소와 나트륨의 결합체다. 이 두개는 분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분리되었을 때는 소금이 아니다. 둘이 하나로 합쳐져야 소금이 된다. 이처럼 인간도 엄밀히는 육체와 영혼을 분리할 수 있지만, 분리하는 순간 인간이 아니게 된다. 둘이 통합되어 있어야 진정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에 변화가 일어날 때가 딱 한번 있다. 바로 육체적 죽음이 일어날 때이다. 이때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다. 이러한 분리는 한시적이다, 인간의 부활 때에 분리된 두 부분이 통합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완전한 인간이 될 것이다.



인간, 세가지 기능


우리는 인간을 육체와 영혼의 통합체로 뿐만 아니라 ‘인격체’라는 관점에서 이해해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신학자, 철학자, 사상가들은 인격을 지, 정, 의 세부분의 통합적인 모습으로 이해한다.


인격의 세 요소 역시 모두 필요하고, 통합적이다. 어느 하나가 빠지면 온전한 인간이라고 할 수 없으며, 어느 하나가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다. 세가지 요소가 서로 의존적이고 영향을 주고 받는다. 지성은 의지적 선택에 영향을 받는다. 지성은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

지성은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지성은 의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간, 하나님의 영광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을 닮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다.따라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은 다스리는 역할을 가지고 공동체적이며 사회적인 특성을 지닌다. 또한 하나님을 닮은 유사성을 가지는데 사랑과 선을 좋아하고, 정의와 평화를 사랑한며 창조적 행위와 통치행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의 원형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부분이 있고, 하나님의 존재를 닮은 부분이 있다. 영성과 창조성 그리고 관계성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과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인간이전, 죄


하나님은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으므로 처음에는 죄가 없었다. 그러나 천사가 타락하면서 죄가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천사드를 지옥에 던져서 사슬로 묶고 심판때까지 어두움에 있게 하셨다. 타락한 천사들은 하나님이 내린 어떤 명령을 거역하였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자리와 영역을 벗어난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하나님께 반역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해서 죄와 악이 시작되었다.



인간, 최초의 죄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에덴이라는 낙원에서 살게 하고 몇 가지 지침을 주면서 특별히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는 먹지 말라고 엄중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죄이며, 타락의 시작이다.


인간은 자유의지글 가지고 있는 존재였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존재였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권을 하나님을 거역하는 방식으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타락이 시작되었고 죄가 이 세상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권위에 대한 거부는 자아 중심성으로 나타나고, 교만은 하나님의 판단보다 자신의 판단을 우선시하게 만들었으며, 이기적 욕망은 잘못된 욕망을 드러내었다.



죄, 구약의 용어들


죄를 뜻하는 말로 아바(avah/구부리다), 아발(aval/허물), 아바르(avar/범하다), 라아(rah/악의 지배), 마알(maal/신뢰가 깨짐), 파샤야와 같이 반역하다 혹은 올바른 권위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다라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단어는 ‘하타’chatha이다. 이것은 표적을 잘못 맞추다 혹은 올바른 목표를 빗나가다, 규범으로 부터 일탈하다라는 의미이다.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의 목적으로부터 떠나다, 목표를 빗나가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내면의 성향보다는 대개 구체적인 행동을 가리킨다.



죄, 신약의 용어들


신약에서 죄를 뜻하는 단어로는 파라바시스(parabasis, 경계를 범하다), 파라코에(parakoe, 청종하지 않음), 파랍토마(paraptoma, 넘어짐), 아그노에마(agnoema, 무지), 헷테마(hettema, 온전히 수행하지 않음), 아노미아(anomia, 율법을 지키지 않음), 플렘멜레이아(plemmeleia, 부조화), 휘브리스(hubris, 하나님읠 무시하는 교만), 아디키아(adikia, 불의)등이 있다.


이 중에서 대표적으로 하마르티아hamartia와 하마르타노hamartino가 사용된다. 이 역시 과녁을 빗나가다와 실패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특정한 잘못된 행위를 가리키지만, 내면의 불순한 마음이나 동기를 지칭하기도 한다.



하나님, 대항


죄에 대한 신구약의 개념들을 종합하면, 죄를 실패로 본다고 결론내닐 수 있다. 하타와 하마르티아가 모두 의미하듯이, 죄를 과녁을 빗나가는 것이나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죄는 하나님이 설정하신 모습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간으로서의 위치를 지정해 주었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살면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하나님ㅇ니 정하신 법을 위반하면서 하나님이 정하신 삶의 표준을 벗아난 것이다. 이는 죄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항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구체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마음의 태도를 갖는 것도 포함된다. 결론적으로 죄란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항하는 태도와 행동을 의미한다.



죄, 결과


죄의 결과로 인간은 삼중적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육체적 죽음, 영적인 죽음, 영원한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육체-영-영원한 죽음은 순차적으로 온다. 최초의 죄가 왜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가? 하나니의 계명을 어긴 것은 율법전체를 어긴 것과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좀 더 본질적으로 생각할 때, 죄는 마음의 태도의 문제이다. 하나의 계명을 어기는 마음이 있다면 이미 순종은 깨진 것이다. 죄의 결과는 관계의 파괴를 가지고 오는데,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가 파괴된다.



죄, 은혜


판의 유보와 회복의 가능성은 항상 있다. 은혜로 심판을 유보하셨을 뿐만 아니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신다. 사탄에 대한 심판 속에는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 그가 사탄을 무찌를 것이라는 약속, 인간을 향한 구원의 약속이 동시에 담겨 있다.


아담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지었는데 그것은 생명이라는 뜻이었다. 인간은 죄를 지었지만 여전히 생명ㅇ르 가지고 있으며 회복의 기회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찾아올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죄, 언약


언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것은 대표성의 원리이다. 대표성의 원리에 의해서 죄가 인류로 들어오고, 대표성의 원리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은혜가 인류에게 들어왔다.


죄는 전적타락total depravity라는 측면에서 모든 범위에서 미치고 있으나 일반은총의 측면에서 선한 행동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처럼 죄가 우리의 모든 것을 사로잡아 불구로 만들어버렸으므로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 굴레를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것이 total inability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죄의 영향력으로 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회개의 기회가 있으며,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언약의 길이 열려 있다.



사회적, 죄


개인적인 도덕적인 죄가 있는 반면에 사회적인 구조적인 죄도 있다. 인간은 사회를 만들고, 제도를 만든다. 그리고 그 제도에서 기득권이 만들어지고 제도에서 죄악이 발생해서 허물이 만들어 진다. 전적 타락에 의해서 개인들의 삶 뿐 아니라 사회의 구조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회제도에도 죄의 영향력이 미쳤고 인간을 착취하고 하나님의 성품과 멀어지는 제도를 만들어냈다. 사탄은 이렇게 사회 구조와 제도를 이용한다. 사회적 죄에 대한 비판과 책임을 가지고서 선지자와 같이 실제적인 삶의 부분에서 활동해야 한다.


자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며, 구조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 악한 구조의 동자자가 되지 않기 위한 자기 부인이 필요하다. 왜곡된 질서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새로운 삶의 질서, 사회질서를 만들어내는 대안이 필요하다.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민네이션, 사피엔스


유발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본주의에 대한 3가지의 분류를 말한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의 해방을 외치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인간존재의 본질을 설명하는 사회적 인본주의, 동물의 하나로 고등한 동물이 더 잘 살아남는다는 진화론적 인본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의 인류의 기원은 사피엔스 인데 사피엔스는 그 당시 네안데르탈인이나 자바인이나 크로마뇽인과 다른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인지혁명’을 겪었다는 것이다. 다른 종들과 다르게 인지혁명을 ‘우연한’(책에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기회에 맞이하게 되었고 그러한 인지혁명에서 부터 농업혁명-산업혁명-정보화혁명-4차산업혁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피엔스는 생각한다는 뜻이다.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기억하고 회상하고 반추하고, 사유하는 것이고, 이것은 사피엔스의 가장 큰 핵심을 이룬다는 것이 유발하라리의 주장이다. 과연 맞는가? 과연 이러한 방식으로 인간을 정의하는 것이 맞는가? 이런 고민들을 해 보자.



민네이션, 악의 상징


폴 리쾨르가 이야기하는 악의 상징에서는 '흠-죄-허물'의 단계로 악이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흠은 우리 영혼이 어떤 금기를 어겼을 경우 긁혀지는 자극이고, 흠이 쌓여서 하나의 길이 되면 개인 차원에서 완전한 죄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죄들이 모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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