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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Apr 19. 2018

구약과 성경

구약이야기_기독연구원 느헤미야

20180419_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구약이야기1_김근주

구약의 숲_김근주저

구약의 개론적 접근의 필요성, 구약 성경의 형성




들어가기


성경은 ‘너희의 몸을 거룩한 제사로 드려라, 이는 너희의 영적 예배니라’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몸 자체이다. 그러나 영적이라고 하는 것은 헬라어원어로하면 논리적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예배이면 더더욱 논리적으로 말씀을 나누고, 토론하고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conform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transform’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세대가 가지고 있는 틀 자체를 변화시켜서 새로운 틀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다.


마음의 변화와 세계관의 변화라는 transform에 대해서 고민해보자. 이번 학기에는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과 생각을 새롭게 하는 것에 대해서 ‘구약의 실제적인 텍스트’를 통해서 알아볼 것이다.


열심히 강의 중이신 김근주 교수님


성경, 특징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사람이 쓴 글이다. 성경이 지닌 신성은 100%우리가 고백하는 바이다. 이것은 케리크마의 측면에서 선포되는 것이 바로 진리이기에 논쟁이 되지 않는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쓴 글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구약에서 십계명을 제외한 모든 글은 인간이 쓴 글이다. 사람이 쓴 글이라서 문학적인 수사법이있고, 대구법도 있고 이야기와 개념들이 충만하기도 한다. 성격은 또한 각 책마다 각자의 양식이 있다. 문학적인 양식도 있고 논리적인 글들도 있다.



성경, 하나님의 의도


셩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뜻은 보통 ‘계시’라고 불려지는 초월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닌다. 하나님은 우리의 회복을 이루기 위해서 ‘제사’제도를 제안하신다.


하나님은 이야기를 통해서 ‘대속’의 원리와 함께 ‘무르기’를 친근하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순간이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니’라고 했던 것들이 ‘자유’가 충만해지는 것이다. 자유는 그러나 마지막 최종 의도가 아니다. 자유는 ‘사랑’하기 위함이다.



성경, 영감설


성경영감설은 무오설과 연결되어서 축자설까지 간다.

그런데 영감을 준다는 의미에서 생각해볼 게 있다. 영감을 주었다는 input이후에 어떤 output이 나오는가?이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성경은 인간의 영혼에 숨을 불어 넣고 마음의 변화와 삶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유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이 영감으로 불어넣어졌다는 의미에서 ‘계시’라는 것은 생명을 불어넣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성경, 내러티브


그레코로만 전통에 따라서 구약은 내러티브로 쓰여져 있다. 이야기로 쓰여진 장르라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성경은 사람의 글이다. 중요한 것은 해당 글의 장르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시편은 장르로서는 ‘시’인데 만약 다큐멘터리처럼 하나하나 팩트를 체크해가면서 읽는다면 ‘시’로써 역할을 잃어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내러티브는 의도가 있고, 전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레토릭과 은유와 환유와 같은 표현법도 주의해야 한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보는 성경을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경,  context


성경의 의도는 ‘문맥’에 있다. 문장에 있지 않고 어떤 문맥에서 이 문장이 말해지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성경을 지금까지 문장에서만 그대로 현실로 가져오는 방식으로는 우리의 현실을 반대로 투영해서 성경자체를 잘못읽게 되어 버린다.


요절만 보게되면 문맥을 놓치게 되고, 그 의도를 놓치게 되면서 자기만의 편협한 하나님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다시 생각해볼 때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하나님이 진실로 우리를 보호하신다면 우리가 성경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이 진리로 성경을 주셨다면, 하나님께 입증부담을 묻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 문맥에 대해서도, 이해에 대해서도, 해석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의도와 그 글을 쓴 의도를 제대로 살펴보는 것이 성경을 읽는 사람들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성경, 유대인 분류


성경은 토라, 네비임, 케투빔으로 구성되어 있다. 토라는 율법로서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이다. 네비임은 예언서로 8권인데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함께 12예언서에 호세아부터 말라기를 모아 놓았다. 케투빔은 성문서로 11권인데 시편, 욥기, 잠언, 룻기, 아가서, 전도서, 예리미야애가,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이다.



성경, 개신교 분류


오경 5권과 역사서 12권, 시와 지혜 5권, 예언서 17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마카톨릭의 경우 오경 5권, 역사서 16권(노피트, 유딧, 긴 에스더, 마카오상, 마카베오하 포함), 시와 지혜 7권(집회서 포함), 예언서 18권(바룩, 긴다니엘 포함) 으로 구분하고 있다. 카톨릭에서는 외경 apocrypha을 제2정경deuterocanonical book이라고 해서 구약과 신약 사이에 쓰여진 책들도 정경의 범위 안에 포함하고 있다.



정경, 외경


초대교부의 교부였던 제롬은 외경에 대항하는 책을 교육에 사용할 수는 있지만, 교리와 실천의 규범이 될 수는 없다고 여겼다. 이데 반해서 어거스틴은 외경들도 나머지 정경과 똑같은 권위를 가진 책으로 여겼다. 당시 서방 정교회와 분리되어 있던 동방정교회는 외경을 정경으로 여겼다.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세력들은 가톨릭 교회가 사용하던 외경의 정경적 지위를 거부하였고, 종교개혁 운동의 거부에 대한 반응으로 가톨릭은 외경 역시 정경임을 1546년의 트렌드 종교회의에서 더 확고하게 선포하였다. 루터 같은 경우 외경의 정경성은 부정하였지만, 여전히 신앙과 도덕의 유익이라는 차원에서 외경의 가치를 인정하였고, 루터가 번역한 성경에 외경도 포함되어 있었다.  



외경, 의미


외경에 대해서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히 이단적인 것은 아니다. 부활신앙 같은 경우 구약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구약과 신약 사이의 시기에 쓰여진 외경에서는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런식으로 외경이 가지고 있는 브릿지의 역할을 고려한다면 구약과 신양이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정경에 대한 도전이라기 보다는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보조 도구 정도로 생각해보자. NRSV에서 with apocrypha라고 쓰여진 것들은 모든 외경이 동방정교회의 입장에서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경, 배열


유대교의 경우 율법서는 원칙을 선포하고 기초를 정초하는 역할을 했다. 예연서는 심팜에 대한 선포와 회복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 성문서는 거룩한 이상에 따라 살아가는 삶의 일상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기독교에서는 배열을 오경-역사서-시편과 지혜서- 예언서로 진행된다. 그 이유는 예언서 마지막인 말라기의 종말에 대한 예언과 멸망이 비로소 정오의 해와 같이 예수그리스도의 등장으로 해소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배열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면 예수님을 강조하는 구약의 성경의 구조에 따라서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그리고 구약시대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꿈꾸던 하나님 나라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구원에 대한 내용도 구약에서 이미 기-승-전-결로 이어져 내려와서 그리스도까지 오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민네이션, 생각


신자유주의는 감정을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감성과 기분, 흥분을 사용한다. 감정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 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감성이나 기분, 흥분은 대부분 긍정적인 것 그리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거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들이다.


감정이 구조 안에서 기분과 흥분의 flow가 역사를 가지고 stock이 되었다는 것이라면, 반대로 기분과 흥분은 여전히 flow상태로 있는 것이다.


기분이 집단적으로 존재하게 될 때 ‘분위기’라고 한다. 이 분위기 안에서 사람들의 ‘기분’은 대부분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자극에 따라서 그것이 흥분이 되기도 하고, 냉소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분과 흥분이 믿음이나 종교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면서 flow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조그만 자극에도 자신을 위해서 흡수하고 flow안에서 믿음을 위치시킨다.


그럼 노래, 음악, 드라마 같은 부분에서 우리의 감성을 얼마나 터치하는가에 따라서 좋은 예배와 좋은 시간이 결정되어 버린다. 신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시간을 인질로 잡고 시간의 가속화를 통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성적인 부분에서 모든 근본을 가져가 버린다.



민네이션, 진리


진리에 대해서 생각할 때 진리란 무엇인가?라고 고민하기 전에 일어나는 일이 있다. ‘진리는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정리하기 전에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해야만 그 다음에 관점이 생긴다. 그것이 좋은가? 나쁜가?라는 것은 그 존재가 인정되어야만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진리관이 잡히면 진리에 대한 수 많은 고민들이 나온다. 진리는 존재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우리의 생각에서인가? 우리의 삶에서인가? 구조 안에서인가? 자연에서만인가? 진리관이 인간관과 윤리관과 만나서 다양한 복층 구조를 갖는 인간의 감정과 지식과 행동을 규정하게 된다.


진리가 없다는 것도 ‘진리관’ 중의 하나이다. 진리가 없다면 진리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 자신만의 새로운 해석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진리가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더 힘들 것이다. 자기 자신을 믿거나 어떤 철학자를 끌어오는 것의 다름 아닐 테니까 말이다.



민네이션, 케리그마


성경의 언어는 3가지로 구분된다. 선포인 ‘케리그마’, 율법과 교훈인 ‘디다케’, 일상의 언어 ‘파라클레오’이다.


선포라는 뜻의 케리그마는 논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거나 배척하는 것이다. 선포되는 것은 우리의 의지를 활성화시켜서 자유의지의 회복을 가지고 온다.


디다케는 가르치는 것이고, 논리적인 것이고, 그래서 논쟁하거나 토론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배움이라는 측면에서 교훈이 되기 때문에 우리의 ‘지성’을 활성화시켜서 깨달음을 준다.


일상의 언어인 파라클레오는 친근한 안부인사와 같은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감성을 활성화시키면서 감동을 준다.


오늘 강의에서는 명확하게 ‘칸트’와 같이 선험적으로 선포된 말씀인 성경에 대해서는 ‘케리그마적 권위’를 부여하고 그외의 디다케의 목적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 논쟁을 하기로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는 대부분 ‘케리그마 중독’에 빠져 있다. 강단에서 뿐아니라 일상에서도 모두 케리그마로 대응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스스로도 자만에 빠지게 되고, 모든 범죄의 온상이 된다. 반대로 디다케 중독이나 디다케 남용이 일어나면 모든 것들에서 설명이 들어가면서 ‘자유의지’를 활성화시키지 못하고 다만 이해와 지식적인 측면에서만 깊어지는 것이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민네이션, 멋


요즘들어 멋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예전에는 멋있다라는 것은 어떤 겉모양이나 스타일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어떤 사람이 멋있다라고 할 때 ‘내재적인 윤리’를 가지고 삶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윤리는 철저하게 행동과 연결되어 있다. 행동이라하면 행위뿐 아니라 말도 포함되어 있고, 생각역시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하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를 가지고 있을 때 안정감이 들면서, 무엇인가 신뢰감이 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뢰감이 가는 사람이 멋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겉모습이나 스타일로 흉내는 낼 수 있으나 통합적인 삶의 각 부분에서는 흉내낼수 없고 진짜 자기것일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단지 상대적으로 훌륭한 인격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견고하게 서 있는 것이 멋지다는 것이다. 40이 다가오니깐 어떤 것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보수’적인 조건들이 생각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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