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예술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민네이션 Apr 18. 2018

가난과 사랑

가난한 사랑의 노래_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난한 사랑노래_신경림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시안은 시를 지었다


사랑을 모르는 이들에게

사랑은 어디나 있음을


그러나 구조의 갖힌 사랑노래는

작은 옹아리 조차 되지 못하고


쓰레기 통에서 발견해야하는

시대의 아픔을 노래했다


오랜기간 사랑을 외치지만

많은 이들이 내가 하는 말을 외면한다


부유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하나의 기준이 사람을 정의내리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인간으로 살 수 없다


어떤 기능의 하나로 전락하는 순간에

사랑이라는 통합적이고  정의내리기 힘든


세상을 움직이고

너를 나와 연결해주는 진리는


자취를 감춰 버리고서는

어떤 사건이나 어느 사람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버리는고서는 간신히 간신히

돌담에 속삭이는 듯한 햇발에서만


잠시 피어나는 자연현상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나와 너의 사랑이 부활하여

우리의 이야기가 되길


그것으로 놓어 버린 존재들이

부활하는 인격적인 아침이 찾아오길


버려지고 던져저버린

가난한 사랑의 노래가


가난 때문에 버려지지 않도록

불가능한 꿈을 계속 꾸어가길


그 옛날 시인의 가슴을 품고서는

급진적인 혁명의 움직임을 일으킨


어떤 나라들의 이상주의적 혁명가들처럼

현실에 발 붙이고 있기는 하지만


끊임없이 꿈을 꾸길

눈을 뜨고도 꿈을 꾸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꾸준히 걸어가길


한 걸음 한 걸음

이루는 길마다


사랑의 노래가

울려 퍼지길

매거진의 이전글 절망과 실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