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연구원느헤미야_구약의 숲_김근주
20180517_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구약의 숲_김근주
민수기, 신명기, 예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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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구약이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하나님이 하신 ‘약속’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민수기와 신명기와 같은 모세오경의 특징은 무엇인가?예언서가 가지고 있는 관점은 무엇인가? 오늘은 이렇게 민수기와 신명기까지 오세 5경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 후에 예언서를 볼 것이다.예언서는 대선지서부터 소선지서까지 알아볼 것이다. 특히 주전 8세기에 있어서 아모스 이전의 예언서와 그 후가 왜 다른지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게르하르트 폰 라트의 이론을 알아볼 것이다.
민수기, 광야에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로 들어간다.
광야의 방향성은 가나안이다. 가나안을 가기 위해서 40년의시간이 걸린다. 방향이 있고 그 방향에 맞게 걸어갔는가?라는 부분에서 역사가 탄생하고 평가가 가능한 영역이 생긴다. 히브리성경에서 민수기의 첫 단어는 ‘베미드바르’인데, 그 뜻은 ‘광야에서’이다. 이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이면서도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이 광야같은 현실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민수기, 불평
40년의 광야 시절의 이스라엘 하면 곧장 떠오르는 것ㅇ느 그들의 불평이다.어찌보면 ‘광야에서’in the wildenes는 불평하며in the complaints라고 말할 수 있다. 시내산에서 성막을 세우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며 출발한 여정이었지만, 여러가지 상황들이 모두 불평의 상황이 되었다. 상황에 대한 불평에서부터 이 모든 일의 시작을 만들어낸 모세와 하나님의 대한 불평도 끊임없이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불평은 사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불평이었다. 먹을 것이 단조로울 때마다, 가는 길이 험할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며 불평하고 원망하고 그렇게 죽어간다.
임재, 동행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불평과 대조적으로 민수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을 뜻하는 많은 상징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진을 칠 때에는 회막을 중심에 두고 사면에 둘을 진을 쳤다. 그리고 행군할 때는 유다군대-게르손군대(성막의 시설구조에 해당한느 무거운 부분을 옮기는 일을 담당)-므라리-르우벤-고핫(성물을 어깨에 메고 운반) - 에브라임 군대 - 단군대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고핫이 도착하기 전에 게르손, 므라리에 의해 이미 성막이 세워지게 된다. 게르손, 므라리는 그들이 옮긴느 특성상 수레를 받아서 옮기지만, 성물을 옮기는 고핫은 어깨로 운반해야 했다. 제사를 드릴 때에도 진을 친 순서를 따라 유다가 먼저였고, 납달리가 젱리 나중이었다. 이러한 진은 여호와께서 머물러 계신 거룩한 처소로서의 이스라엘의 진영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이 민수기가 전하는 이상적인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이스라엘은 그분의듯에 따라 이제 약속의 땅으로 진군하는 것이다.
광야, 중심
광야 시절 동안 낮에는 구름이 성막을 덮었고, 저녁에는 불 모양의 같은 것이 나타났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읜 광야의 불평에 대해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는 언제 보여지는 것으로, 믿음이 없는 이스라엘에게 드러나는 방식으로 전해졌다.또한 법궤 역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다. 법궤의 노래는 이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법궨가 동행하면 그 전쟁은 승리하게 되고 법궤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 전쟁은 패하고 만다. 광야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그 백성을 안으시고 인도하신 길이었다.
신명기, 말씀들
신명기의 히브리말 제목은 ‘데바림’으로 ‘말씀들’이란느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말 성경이 지니는 ‘신명기’라는 이름은 ㅡ영어제목인 Deuteronomy를 옮긴 것으로 여겨지는데, ‘두 번째 율법’ 쯤으로 이해할 수 이는 영어표현은 17장 18절에 나오는 ‘등사본’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자어 자체는 ‘되풀이 되는 말씀’이란느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신명기의 내용들은 비슷한 내용들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한자말 제목도 그럴 듯하다. 출애굽 40년째 11월 1일날짜로 시작하는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기에 앞서 모세가 요단강 동편에 있는 모압평지에서 행한 고별 설교의 형태를 띠고 있다.
신명기, 구조
모세의 고별설교는 신명기에서 대략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진다. 첫번째 설교는 1장 1절에서 부터 4장 43절까지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 설교는 4장 44절에서 28장 68절까지이다. 세번째 설교는 29장 1절에서부터 30장 20절까지이다. 각각의 설교들은 제목과 장소르 포함하는 비슷한 첫 머리말로 시작한다.
첫번째와 세 번재 설교는 모두 ‘말씀’이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고, 가운데 설교는 ‘율법’이란느 제목ㅇ르 지닌다는 점에서 이 세번의 서교는 가운데를 둘러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음과 마지막 설교는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저인 지침으로서의 규례와 법도들을 다루고 있으며 그에 따라 분량도 가장 많다.
신명기, 고대 조약
신명기를 연구하던 사람들은 ㅡ신명기 전체의 자임새가 고대 중동 나라들의 조약 체계와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특별히 주전 14, 13세기경 히타이트 제국의 조약 문헌들이 그러한 유사점을 보여주고 있음 알게 되는데, 이 조약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계된 사람의 칭호를 밝히는 전문, 계약 당사자들이 이전에 지니고 있던 관계와 종주국이 속국에 베푼 은혜호운 행동들을 강조하는 머릿말, 충성과 신실함을 요구하며 구체적인 조항들을 밝힌 조약의 본론, 조약에 대한 증인과 문헌의 보과노 장소와 정기적인 낭독 요구를 밝힌 증언, 그리고 이 조약에 따른 축복과 저주로 구성되어 있다. 고대조약은 충성과 신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구약전체에서도 이것을 받아 들인다. 합리적으로 옳은게 아니라 관계적으로 약속한 것을 어기는가 아닌가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정치적인 관계에 쓰이던 이렇나 조약 체계가 이스라엘에게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종교적인 관계를 표현해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봉신국가가 주군 국가에게 충성을 다하듯이, 이스라엘은 그들의 한 하나님 여호와에게 충성을 다해야하고 두 주군을 섬실 수 없었다.
고대 중동의 종교들은 여러 신을 섬기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그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이것이 정치적 조약 형태로 표현된 이스라엘 신앙의 특징이다. 그러나 고대 중동의 조약과 신명기 조약의 차이점으로는, 정복과 점령에서 강제된 고대 조약과는 달리,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과 선택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신명기, 사랑
조약관계로 표현된 신명기에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태도가 태도가 정해졌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죄는 단순히 도덕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관계적인 문제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관계를 표명하는 이 언약이 깨어지는 것이 바로 죄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거나 이방의 신들을 섬긴다면, 그것은 여호와 한 분에게만 충성하겠다는 이 언약을 파기헌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장 무거운 죄는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이다. 구약의 율법이 우상숭배를 엄하게 처벌하게 규정ㅇ르 지니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아울러 그들이 이웃에게 잘못을 하는 것 역시 단지 이웃에게 잘못한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린 죄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웃과의 관계역시 하나님과의 관계로 포함하고 이해하는 것이 구약 율법의 근볹거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8세기, 문서예언자
이스라엘의 최후의 시기는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자랑스런 예언자들의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닌 구약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예언서들은 모두 주전 8세기부터 활동한 예언자들이다. 이 예언자들을 가리켜 문서예언자writing prophets라고 부르기도 하고, 예언자들의 기본적인 형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전예언자classical prophets라고 부르기도 한다.
왜 주전 8세기 이래의 예언자들은 이전 시기 예언자들과 구벼뢰게 그들의 이름으로 전하는 책이 존재하게 되었을까?아모스로 시작되는 예언의 새로운 전통은 이전의 예언자들과 다른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이전의 예언자들이 주로 특별한 영적인 체험과 결합되어 있는데 비해, 이들은 그러한 현상을 그다지 담고 있지 않으며 그러한 경험을 수반하더라도 가장 근본적인 과노심사는 이와 더불어 선포되는 말씀이다.
예언서, 선포
예언서는 여러가지 분류가 있지만 아모스 이전과 아모스 이후로 나누어 진다. 이러한 구분은 주전 8세기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지는데 가장 큰 변화는 예언자들의 예언이 문서로 남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언의 기간이 한세기를 넘어서거나 예언의 효과가 한 나라를 넘어서는 경우 한 사람의 인생에서 그것을 볼 수 없을 만큼 길어지거나 넓어지게 된다. 이럴 때는 적혀진 예언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이루어졌는지를 볼 수 있게 된다. 아모스 이전에는 예언의 실현을 한세대 혹은 한 세기 안에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예언자 그룹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스시대에는 혼자서 예언을 하고, 예언을 하는 자기자신도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결과를 보지 못하는 시대였다.
이러한 변화는 게르하르트 폰 라트가 쓴 ‘예언자들의 메시지’에서 볼 수 있다.
게르하르트 폰 라트, 주전 8세기 해석
구약에서 왜 주전 8세기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가? 구약예언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4가지의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번째, 8세기에 이르러 이전부터 지속되어 오던 바알신앙과의 혼합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현격히 퇴조하게 되었다.
두번째, 정치적인 측면에서, 국가가 성립되고 그 틀이 견고해지면서, 여호와께 대한 믿음과 여호와의 보호하심으로부터 벗어난 세속국가가 등장하게 된다. 여호와 신앙으로부터 자율을 획득한 국가의 출현은 이 시기의 또다른 새로운 특징이었다.
세번째,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의 변화도 있다. 세금제도와 제반 공공의 의무를 부과하는 국가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자유롭던 소농들은 세금의 의무와 군역의 의무속에서 점차 자유로운 지위를 잃게 된다. 국제무역의 발전으로 상업과 유통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웃시야에게서 볼 수 있듯이, 농업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특정 지역에선느 특화된 작물을 재배하였는데, 이러한 시스템은 각각의 농촌의 자급자족 능력을 현격히 저하시키게 되고, 국가와 그 중심을 이루는 중앙 세력들이 주도하는 유통망에 절대 의존하게 만든다. 그래서 흉년이 들거나 전쟁이 나서 이러한 유통망이 붕괴하게 되면, 특화된 농업을 행하던 농촌들이 급속히 나락으로 빠지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로 말미암아 농촌의 부가 점점 도시로 집중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는 경제의 중심이 농사에 기반한 지역과 지파 중심의 구질서에서 도시 중심의 새질서로 옮겨지는 것을 수반한다. 도시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대토지 소유자들이 점점 증가하게 되고 자유민들은 점차 땅을 잃고 노동력을 팔아 생존을 이어가게 되며 사회적 불의가 증가한다. 이것은 사무엘이나 엘리야, 엘리사 시대엔느 다루어지지 않던 새로운 차원의 문제였다.
네번째, 이스라엘의 존립을 위협하는 초강대국의 출현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실상 초강대국이 약해졌을 때 가능했던 것이었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는 실상 초강대국이 약해졌을 때 가능했던 것이었지만, 앗수르 이래 초강대국은 바벨론으로 이어지면서 이스라엘의 진정한 독립과 회복은 물 건너 가버렸다. 다글랏빌레셀 3세 이래 북왕국과 남왕국은 나날이 약화되었고, 강대국들의 침략으로 인한 국가적인 위기가 문서 에언자로 불리는 이들이 등장하는 시기였다. 앗수르 위기와 연관해서는 호세아, 아모스, 미가, 이사야 등이 있으며, 바벨론 위기와 연관해서 스바냐, 하박국, 예레미야, 에스겔이 있다.
문서예언자들, 공통점
첫번째, 예언자들은 근본적으로 오래된 거룩한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당대의 백성들이 지키지 않은 지 오래되었고 이제는 기억조차 못하는 규레들이, 여전히 구속력이 있고 조금도 약화되지 않은 타당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시키기 위해서였다.
두번째, 예언자들의 또 다른 특징은 미래에 대한 강력한 견해이다. 그들은 가까운 미래에 역사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완전히 새로운 행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ㅇ르 내다본다. 그들에게 있어서 열강은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일 뿐이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해하실 다른 일들을 기대하는데, 이 새로운 일들은 심지어 이전 일들을 능가하리라고 본다. 그래서 극심한 심판 가운데서도 구원을 향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민네이션, 생각
약속에 의해서 목적이 생기고, 그 목적에 따라서 방향이 생기고 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 역사를 만들게 된다. 성경에서는 인간이 자기자신을 구성하는 것에서 부터 사회를 구성하는 것 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사회적 구성주의, 국가적 구상주의, 세계사적 구성주의에 따라서 사용하는 툴과 방법이 다르다. 이러한 다른 관점에서 구성되는 방식에 따라서 그 당시의 제도와 문화, 사회가 구성되었다.
성경은 이러한 구체적인 변화 위에 구체적으로 쓰여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해석이 매우 중요하게 된다. 해석을 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다가 쓰게 되면 구체적인 이야기를 달라진 구체적인 상황에 갖다 쓰면서 결국 문제가 만들어지게 된다. 성경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지금 한국교회의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온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민네이션, 예언자
성경에서는 예언자는 미래에 있을 일을 미리 보는 선지자라는 느낌보다는 하나님의 영역의 확신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뜻과 생각을 가지고 ‘지금처럼 산다면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다’라고 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경제적인 변화, 국제정치적인 변화, 시간개념의 변화등을 볼 때 예언자들이 하는 예언의 성격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전혀 뜻도 맞지 않고 이해도 될 수 없다는 것을 파악할 수 없다. ‘하나님이 왕이시고, 그가 다스리시고,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라는 점에서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마음을 대언하는 위치에 있었다. 여기에서는 미래는 열려 있고, 그것은 인간의 어떤 자유의지가 남기게 될 경험도 포함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아 새로운 미래가 열리기도 하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