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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낭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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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r 08. 2016

풀과 당신

김수영의 시에서, 당신의 시로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풀'

<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4>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리가 

바람처럼 몰아쳐 올 때 

당신의 움직임을 기억합니다

풀과 같이 누웠다가

모든 것들을 다 듣고 

거기서 다시 시작하는 당신을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지만

모든 것들을 내뱉지 않고


모든 것들을 기억하지만

모든 것들을 드러내지 않는


당신의 현명함에

오늘도 바람처럼 불어오는 

세찬 부정적인 언어 속에서도

내일을 기대하는 

희망의 언어를 

준비하는 내 마음을 봅니다


당신의 울음소리

당신의 숨소리

당신의 세밀한 흐느낌

그 가운데 

어떻게

다시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말들이 피어날까요


매번 눕는 풀의 움직임처럼

당신의 숨소리는 

매번 가느다란 

흐르낌으로 누웠다가


다음날 아침이면

또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들려주는 아라비안의 이야기들처럼

새롭고

반갑고

즐겁고

신기합니다


반응의 언덕에서 

무의미의 동굴로 들어가지 않고

자유의 들판으로 걸아가 


불어오는 바람에 

세차게 일어나는 

당신의 그림자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다시 시작하자

나도

새롭게 일어나자

라는 

다짐으로 


하루를 열어가는 

스스로의 뒷모습을 

보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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