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3장_박정하
20180716_철학아카데미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_박정하
3장, 포이어바흐의 한계
4장, 마르크스의 주장
https://brunch.co.kr/@minnation/985 지난 2강 강의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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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엥겔스가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서 해석한 것이다.그러므로 엥겔스는 포이어바흐가 기독교를 비판했던 내용들을 역시나 함께 고민한다. 관념론은 객관론과 주관론으로 구성되는데 객관적인 객관적인 관념론에는 신(헤겔)과 내세(플라톤)의 의해서 그 객관성을 인정받는다.
이렇게 객관적인 관념론적으로 볼 때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신의 대한 이야기, 천년왕국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엥겔스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프롤레탈리아 독재와 비슷하다. 예수가 심판의 때에 현실에 내려와서 1000년동안 다스리는 동안에 악을 몰아내듯이, 공산주의도 프로레탈리아 독재를 통해서 사회적인 악을 몰아낸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규황 같은 작가들은 ‘예수전’을 쓰게 되는 모티브가 프로레탈리아 독재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기독교의 본질과 공산주의가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지를 알아보자. 이것을 통해서 포이어바흐의 한계와 마르크스주의의 특징을 알아보자.
-3장, 포이어바흐의 한계
포이어바흐, 관념론
포이어바흐의 실질적인 관념론은 그의 종교철학과 윤리학을 보면 곧 드러난다. 포히어바흐는 결코 종교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완성하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철학자체가 종교속에 용해되어야 한다.
“인류의 각 시기는 종교의 변화에 의해서만 서로 구별된다. 하나의 역사적 운동은 인간의 마음에 깊이 받아들여질 때에만 자기의 지반에 도달한다. 마음은 종교의 한 형식이 아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마음 속에도 역시 존재해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마음은 곧 종교의 본질이다”(슈트르케의 저서)
포이어바흐의 학설에 의하면 종교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감정에 기초한 마음의 관계로서 이 관계는 지금까지의 현실의 환상적 반영 가운데서 자기의 진리를 찾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나와 너 사이의 사랑에서 매개없이 직접 진리를 찾는다. 그리하여 결국 포이어바흐에게는 성애가 그의 새로운 종교 실현의 최고 형식은 아니라 하더라도 최고 형식들 중의 하나가 된다. 사람들 사이의, 특히 이성 간의 감정에 기초한 관계는 인류가 존재한 이래 계속 있었다. 성애는 특히 최근 800년간 굉장한 의의와 중요한 지위를 획득하여 시와 노래 모두에 없어서는 안되는 핵심이 되었다.
현존하는 기성 종교는 성애에 관한 국가의 법규, 다시 말해 혼인법을 최고도로 신성화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러한 종교는 내일이라도 완전히 없어질 수 있으나 애정과 우정의 실천에서는 티끌만한 변화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1793년부터 1789년에 이르는 기간에 기독교가 사실상 쇠토해버렸기 때문에 나폴레옹 같은 사람도 기독교를 부활시키는 데 저항에 부딪히고 곤란을 겪었다. 그러나 이 기간에 기독교를 포이어바흐의 새로운 종교와 같은 것으로 바꾸어 놓자는 요구가 나타난 적은 한번도 없었다.
포이어바흐, 종교
여기에서 포이어바흐의 관념론은 인간 상호 간의 애정에 기초한 모든 관계가 특정종교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의의를 가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종교라는 것으로 묶이지 않으면 이제 모든 것들이 종교화된다는 것이 엥겔스의 지적이다. 종교라는 말은 본랠 결합이라는 의미를 표시했다. 따라서 두 사람이 상호 결합하면 모두 종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어원학적 요술은 관념론 철학의 마지막 피난처이다.
종교라는 말에 그것이 실제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발전한 결과로서 획득한 의미보다 어원적으로 지녀야할 의미가 중요시되는 셈이다. 이와 같이 오직 관념론적 추억을 위해서만 귀중한 종교라는 단어가 언어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성애와 이성 간의 관계를 종교라는 높은 자리에까지 받들어 올리고 있다.
마지막까지 가면 엥겔스의 시대에서는 부르주아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종교화 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였으며, 이것이 바로 포이어바흐의 작업에 따라서 자본주의가 종교화되어서 신성시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도덕, 윤리
도덕과 윤리는 99%가 비슷하다. 그러나 한국어에서도 ‘직업윤리’와 같은 용법으로 쓰이면 특정 집합에 속해 있을 때 쓰는 게 보통이다. 도덕은 로마에서, 윤리는 폴리에서 왔다. 다시 말하면 전세계가 자신들의 전장이었던 로마의 입장에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을 ‘도덕’이라고 이야기한 반면에, 폴리마다 각각의 규범들을 이야기할 때는 ‘윤리’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다. 그래서 도덕과 윤리는 비슷하지만 그 범위에 있어서 인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가? 아니면 조직을 범위로 하는가에 따라서 사용법이 달라진다.
포이어바흐, 도덕
헤겔에 비하면 포이어바흐가 전개하는 도덕의 개념은 빈약하였다. 3가지 영역에서 빈약한데 그것은 도덕적으로 빈약하여 정치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과, 악에 대해서 제대로된 고찰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헤겔은 절대정신 하에서 이성의 간지가 ‘악’을 선하게 바꾸어서 사회를 만들어 간다고 보았다. 그러나 포이어바흐는 여기까지 가지는 못한다. 마지막으로 행복을 도덕적 가치로 놓는 포이어바흐는 개인주의적인 경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행복이 과연 도덕의 기초인가? 행복에 대한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기초를 선억한다는 것은 사실 대상이 없는 것이다. 노동을 통해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포이버하흐는 도덕정치, 악, 행복’이라는 입장에서 도덕을 잘못 정의하거나 빈약하게 정의하고 있다고 말한다.
헤겔, 악
헤겔이 말하는 악이란 역사 발전의 동력이 발현되는 형식이다. 여기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어떠한 새로운 전진이든 그것은 다 필연적으로 어떤 신성한 것에 대한 모독이며, 낡아서 사멸해가고는 있으나 인습에 의하여 신성화된 제도에 대한 반역으로 나타난다. 다른 한편으로는 계급 대립이 발생한 이후로 사람들의 추악한 욕심, 즉 물욕과 권세욕이 역사 발전의 지렛대가 되었다. 예를 들어 봉건제도와 부르주아지의 역사는 부단히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포이어바흐는 도덕적인 악의 역사적 역할을 연구하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역사적 영역은 그에게는 그야말로 불편하고 불쾌한 영역이었다. 그의 다음과 같은 주장조차 그에게는 전혀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인간이 자연의 품속에서 금방 태어났을 때에는 순전히 자연적인 존재에 불과하였고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이란 인간의 산물이며 문화의 산물이며 역사의 산물이다”
이와 같이 포이어바흐가 도덕에 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란 빈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행복추구나는 인간의 천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도덕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행복 추구는 이중의 수정을 받는다.
행복추구, 수정
우리의 행위의 자연적 결과에 의해서 행복은 수정된다. 몹시 취하면 그 이틑날까지 술이 깨지 않으며, 상습적으로 방탕하면 병이 생긴다. 행위의 사회적 결과에 의해서 수정된다. 즉, 우리가 동일한 행복을 추구하는 다른 사람들의 지향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들도 우리의 행복을 추구하는 지향을 반대하고 방해할 것이다. 이로부터 만일 우리가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지향을 만족시키려고 한다면, 우리는 자기 행위의 결과를 옳게 평가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지향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권리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성적 자제와 타인에 대한 사라 이런 것이 포이어바흐 도덕의 기본 규칙이며 다른 규칙들은 이로부터 파생한다. 그리고 포이어바흐의 대단히 기지에 넘친 논의도, 슈타르케의 아주 힘있는 찬사도 이렇나 두 세 개 명제들의 빈곤성과 진부함을 은폐할 수 없다.
포이어바흐, 도덕론
포이어바흐의 도덕론은 그보다 선행하는 자들의 도덕론과 동일하다. 그의 도덕론은 온갖시대, 온갖 민족, 온갖 사정에 맞도록 꾸며진 것이며,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디서나 또 언제나 적용될 수 없다. 현실세계에서 그것은 칸트의 정언명령과 마찬가지로 무력하다. 실제로 각 계급마다, 심지어 각 직업마다 자기의 고유한 도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위반해도 처벌당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들은 언제든지 이 도덕을 위반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통일시키려고 하는 사랑은 도리어 전쟁, 쟁의, 소송, 가정불화, 이혼, 일부 사람들에 의한 다른 사람들의 최대한의 착취 속에서 발현된다.
포이어바흐, 한계
포이어바흐가 정신적 운동에 준 그 강력한 충격이 포이어바흐 자신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린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포이어바흐 자신이 그렇게 증오하는 추상의 왕국에서 살아 있는 현실로 나갈 길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는 있는 힘을 다하여 자연과 인간에 매달린다. 그러나 자연이나 인간이나 그에게는 한갓 공허한 명사에 불과하다. 그는 현실적인 자연에 관해서도, 현실적인 인간에 관해서도 확정적인 어떤 것도 말하지 못하고 있다.
포이어바흐의 추상적 인간으로부터 현실적이고 살아 있는 인간으로 이행하자면 이 인간들을 역사 속에서 행동하는 인간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포이어바흐는 이 점을 집요하게 반대했다. 그렇기때문에 그가 이해하지 못했던 1848년이라는 해는 그에게는 현실 세계와의 최후의 절연, 은거생활로의 이행을 의미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주로 그를 이러한 가련한 종말에 끌어 넣은 독일의 사회 상황에 있었다.
그러나 포이어바흐가 이룩하지 못한 진보는 어쨌든 이룩해야 했다. 추상적 인간의 숭배하는 포이어바흐의 새로운 종교의 핵심은 현실적 인간과 그 역샂거 발전에 관한 과학으로 교체되어야 한다. 포이어바흐 철학의 한계를 넘어 포이어바흐의 견해를 앞으로 더 발전시키는 일은 1845년에 마르크스에 의하여 신성가족Heiligen Famile에서 시작되었다.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포이어바흐는 종교를 관념론으로 보았고, 마르크스는 유물론적인 접근을 과학으로 모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이러한 도식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실과 상관없는 도덕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논리였다. 그런 의미에서 포이어바흐의 도덕은 불교에서 보면 미타불(극랑왕생)과 같았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미륵불과 같이 용화세계를 통해서 새롭게 세상을 만들어내는 종교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는 자신들이 처함 환경에서 세계를 변화시키는 이론과 실천을 만들어 내고 이것이 레닌의 소련과 마오쩌둥의 중국과 김일성의 북한을 만들어 낸다.
-4장, 마르크스주의의 특징
과학, 종교
과학과 종교의 이분법은 칸트에게서 명확해졌다.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이 그것이다. 과학은 현실을 분석하고 상황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었던 반면에, 종교는 가치를 지향하고 미래를 긍정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도식은 공산주의 안에서, 그리고 마르크스 안에서도 동일하게 존재하게 된다. 과학자로서, 사회과학자로서 마르크스는 후기 마르크스주의, 종교에 비슷하게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가치지향과 비전을 강조하는 전기 마르크스주의로 바뀐다.
과학적인 접근으로 후기 마르크스주의는 역사법칙을 과학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전기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주의를 당위로 놓고 윤리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과학을 강조한 후기이고, 오스트리아에서 발전한 윤리적 마르크스주의는 전기의 성향이 강하다.
헤겔, 마르크스
슈트라우스, 바우어, 슈티르너, 포이어바흐는 그들이 아직도 철학의 지반을 떠나지 않았던 한에서는 헤겔 철학의 분파였다. 슈트라우스는 자기의 저서 ‘예수의 생애’와 ‘교의론’을 발표한 이후로는 르낭 식으로 철학적, 교회사적 미문학을 연구했다. 바우어는 다만 기독교 발생사의 분야에서만 다소 가치 있는 일을 했을 따름이다. 슈티르너는 심지어 바쿠닌이 그와 프루동을 뒤섞어서 그 혼합물을 ‘무정부주의’라고 명명한 후에도 단순히 기인으로 남이 있었다.
포이어바흐만이 탁월한 철학자였다. 그러나 모든 개별 과학위에 군림하면서 그것들을 하나로 종합하는 과학의 과학으로서 자칭하던 철학이란 그에게서는 여전히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이자 불가침의 신성한 것으로 남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철학자드로서도 그는 철핮허지 못하여 아래로는 유물론자였고 위로는 관념론자였다.
그는 헤겔을 비판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다만 그를 무용지물로 여겨 포기함으로써, 그 자신은 헤겔의 체계의 백과사전적인 풍요로움에 과장된 사랑의 종교와 빈약하고 무력한 도덕 이외에는 아무것도 적극적으로 대체하지 못했다. 그러나 헤겔학파가 해체되자 거기에서 다른 한 유파가 형석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성과를 거둔 유일한 유파였다. 이 유파는 주로 마르크스의 이름과 결부되어 있다.
여기서도 헤겔 철학과의 분리는 유물론적 관점으로 되돌아감으로써 비롯되었다. 이는 이 유파의 사람들이 현실세계(자연과 역사)를 선입견에 의한 관념론적 변덕 없이 그것에 접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이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결심하였음을 의미하였다. 그들은 어떤 환상적인 연관에서 파악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연관에서 파악된 사실들과 합치되지 않는 모든 관념론적 변덕을 무자비하게 내던지려고 결심했다.
그리고 유물론이란 원래 그 이상의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유파가 남다른 점이 있다면, 이는 다만 여기에서 처음으로 유물론적 세계관이 진정으로 진지하게 취급되었고 세상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지식의 모든 영역에서 철저히 관철되었다는 것 뿐이었다.
헤겔, 개념
헤겔은 단순히 포기되지 않았다. 반대로 이 유파는 위에서 지적된 헤겔 철학의 혁명적 측면, 즉 변증법적 방법을 섭취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헤겔식 그대로는 쓸 수가 없었다. 헤겔에게 변증법은 헤겔식 형태 그대로는 쓸 수가 없었다. 헤겔에게 변증법은 개념의 자기 발전이다. 절대개념은 옛날부터 존재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또 현존하는 전 세계의 참다운 살아 있는 넋이었다.
그 절대 개념은 논리학에서 상세히 고찰되고 있는 모든 예비적 단계, 절대 개념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그 예비적 단계를 통과하여 자기 자신으로 발전한다. 다음에는 자기 자신을 외화하여 자연으로 전화하고 거기에서 자기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면서 자연 필영선의 형태를 취하여 새로운 발전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에게서 다시금 자시의식에 도달한다. 이 자기의식은 이번에는 역사에서 또 다시 미숙한 상태로부터 점차 벗어 나오며, 그리하여 드디어 절대 개념은 헤겔 철학에서 다시 완전히 자기자신에 도달한다. 이와 같이 헤겔에게는 자연과 역사에서 나타나는 변증법적 발전, 즉 모든 지그재그 운동과 모든 일시적 후퇴를 통하여 낮은 차원에서 높ㅇ느 차원으로 자기의 길을 개척해가는 전진적 운동의 인관적 연관은 어디서인지 모르나 어쨌든 사유하는 모든 인간의 두뇌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영원히 진행되는 개념의 자기 운동의 모사에 지나지 않는다.
엥겔스, 변증법
관렴론적 헤겔의 왜곡을 제거하고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유물론적 관점으로 돌아와 현실의 사물을 절대 개념의 일정한 발전 단계로의 모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의 머릿속에 있는 개념들을 현실 사물들의 모사로 보았다. 그래서 변증법은 외부세계와 인간 사유의 두 영역의 일반적 운동 법칙에 관한 과학으로 환원되었다. 이 두 계열의 법칙은 본질상 동일하지만 그 표현상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간의 두뇌는 이 법칙을 의식적으로 적용할 수 있으나, 자연에서 이 법칙은 외견상으로는 무한한 우연성 가운데서 외적 필연성의 형식을 취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개념의 변증법 자체는 다만 현실 세계의 변증법적 운동의 의식적 반영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이와 함께 헤겔의 변증법은 전도되었다. 다시 정확히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서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그것이 거꾸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는 기성의 완성된 사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의 총체이며, 여기서는 불변적으로 보이는 사물도, 두뇌에 의하여 구서오딘 사물의 사유적 모방인 개념도 다 같이 부단히 변화하면서 혹은 발생하며 혹은 소멸한다는 것, 그리고 또 전진적 발전은 모든 외견상의 우연성과 일시적 퇴보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기 자신의 길을 개척한다는 것이다. 이 위대한 기본 사상은 헤겔시대 이래 일반의 의식에 깊이 침투했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일반적 형태에서는 이를 논박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를 말로 인정하는 것과 각각의 개별적 경우에, 또 각각의 주어진 연구 영역에 적용하는 것은 다르다.
엥겔스, 자연과학
지난 세기 말까지는 자연과학이 주로 수집하는 과학, 완성된 대상들에 관한 과학이었다면 금세기에는 본질상 체계화시키는 과학, 과정에 관한 과학, 대상들의 기원과 발전, 자연의 과정들을 하나의 큰 전일체로 통일시키는 연관에 관한 과학이 되었다. 동물과 식물 유기체 내의 과정들을 연구하는 생리학, 개별 유기체의 발생부터 성숙에 이르기까지의 발전을 연구하는 발생학, 지각의 점차적인 형성을 연구하는 지질학 등 모두 금세기(엥겔스시대)의 산물이다.
엥겔스시대의 새로운 과학의 발견은 3가지였다. 세포의 발견, 에너지 전화 법칙의 발전, 생물체의 진화의 법칙의 발견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법칙들에 의해서 연관된 전일체로서 자연의 일반적 모습을 상당히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므로 자연변증법적 관점에서 엥겔스는 자연에 대한 분석을 맞췄다. 이제는 마르크스가 어떻게 ‘역사유물론’을 완성하는지를 봐야할 때이다.
마르크스, 엥겔스 사상
마르크스는 역사에 대해서 변증법적 고찰을 하기로 했고, 자연의 변증법에 대해서는 엥겔스가 고찰하였다. 마르크는 역사 유물론이라고 명명했고, 엥겔스는 자연변증법의 관점에서 자연들의 연관성과 네트워크를 보았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역사 유물론은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뒤집에서 역사가 유물론에 의해서 발전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연 유물론을 뒤틀어서 변증법을 도입하여 자연철학적 접근에서 네트워킹 효과를 가지고 왔다. 두 사람은 분업을 했고 자신들의 무기인 유물론적 변증법을 역사와 자연에 적용하면서 실제적으로 변화를 예측하고 보여주고 증명했다. 바로 이러한 설득력에 의해서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가 되어가는 것이다.
민네이션, 생각
악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포이어바흐의 빈약한 부분이 악에 대한 고민의 부재이듯이, 사회성, 인간, 시민사회나 공산주의에서는 인간의 악과 사회적 악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을 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악에 대해서 경계심을 갖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에 더 큰 강조점을 두다 보면 결국은 미세한 악의 침입이 인간사회 전체를 갉아 먹는것을 볼 수 있다.
악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악을 만들어내는가? 악은 어떻게 구조화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나아렌트가 이야기한 ‘평범한 악’은 한편은 악이 구조 안에서 평범하게 존재한다는 것도 되지만, 사실 악을 실행할 때 그렇게 깊은 고민을 하고서 악을 추구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악에 대해서 경계하는 것과 함께 악이 구조화되지 않도록, 또한 쉽게 꺼내지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민네이션, 도덕
엥겔스가 비판하는 포이어바흐의 빈약한 ‘도덕’은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포이어바흐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도덕철학은 사실은 현실적인 필요와 변화를 무시한 것이고 이것은 어떻게 보면 보수적인 논리이다. 이러한 보수적 논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현실을 위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명확하게 시기적절한 적용점을 주지 못한다면 그 철학은 상위에만 머물고 실제적으로 내려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역사속에서 행동하는 인간이라는 마르크스의 관점을 포이어바흐는 집요하게 반대했다. 그것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상황화할 것인가를 포이어바흐는 ‘도덕’이라는 명분으로 미루거나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부분이 열받았던 것 같다. 현실의 악과 정치의 문제를 타파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철학의 테제로는 절대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반대로 물질로 내려가서 컨텐스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민네이션, 이데올로기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으로 볼 것인가? 종교로 볼 것인가?는 동구권과 서구권의 기나긴 싸움이었다. 그래서 마르크스를 과학자로 보는 사람들은 레닌주의자들이 많았고, 과학으로 인정하는 이상 분석이 과연 과학적인지를 보는 경향이 강했고 당연히 경제학적 접근이 강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를 철학자로 보는 사람들은 오스트리아나 유럽에서 많았는데 이들은 철학적인 당위와 정합성의 입장에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어떻게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계속 입증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그포르스의 입장에서는 마르크스를 과학자로 보고 그의 과학이 왜 과학적이지 않은지를 분석하고 비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경제학적 입장에서 과학자인 마르크스가 사실은 철학적인 당위성으로 역사발전을 본 것이지 그것이 진실로 과학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민네이션, 변증법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을 그 모순적인 체계는 버리고(헤겔좌파입장에서 우파의 입장을 버리고) 그 방법론인 ‘정-반-합’이라는 혁명적 측면만 강조하게 된다. 그리하여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체계를 놓는데 그것이 바로 ‘유물론’이다. 다시 말하며 관념이 먼저가 아니라 물질이 먼저이고, 이러한 물질의 변증법을 통해서 인간의 관념도 따라서 변증법적인 상승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도식에서는 생산관계, 혹은 물질의 관계에 따라서 관념도, 이데올로기도 정해진다는 유물론이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유물론도 사실은 파르메니데스의 도식(정해진 생각이나 물질)이 아니라 헤라클레이토스(변화, 흐름)이라는 헤겔좌파의 입장을 가지고 온다는 것이다. ’유물론적 변증법’이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유물은 계속 변화되면서 정반합을 이루어가고 있고 이것이 사물을 포함한 생명체 모두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민네이션, 유기체적 정치체제
유기체적 정치체제는 ‘인간’이 그 중심에서 형이상학적 ‘문화’를 형이하학적 ‘제도’와 연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 방법론은 ‘flow’인 변증법의 핵심을 마르크스가 사물까지 나가서 생명까지 포함했다면 나는 중간에 뒤틀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물-식물-동물-인간’에서 생명을 ‘식물-동물-인간’에만 국한했지만 사물도 ‘생명’의 흐름에 포섭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사물은 생명이 없다. 그런데 언제 생명이 생기는가? 그것은 바로 네트워킹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다.
인간과 네트워킹, 식물과 네트워킹, 동물과 네트워킹에 따라서 사물은 생명체와 연결된 유사 생명체가 되는 것이다. 유물론으로 보면 인간도 물질에 속하지만, 유기체적 정치체제에서는 인간이 중심이 되어서 네트워킹을 통해서 정치문화로적으로는 이념들이 연결되고, 정치제도로는 물질들이 연결되는 것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다음에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인간이 그럼 문화와 제도를 어떤 방식으로 연결하는가?이다. 이제 여기서 정치공학이나 정치과학이 나온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이러한 과정으로 분석을 할수도 있다. 정치문화가 인간과 네트워킹 하는 과정을 분석할수도 있고, 정치제도가 인간과 네트워킹하는 것을 ‘네트워크 이론’에 의해서 분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호모파베르와 호모엠파티쿠스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제도는 도구와 연결되고 문화는 공감과 연결된다. 그러나 이것들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항상 연결되어 있다. 나는 이러한 연결이 아주 작은 부분인 bio차원에서도 존재하고, 큰 차원인 eco차원에서도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랙탈적 변증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변하고 ‘정-반-합’으로 발전하지만 그 가운에서는 반드시 코흐곡성 1.0이상의 프랙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나 프랙탈이 크거나 작게 되면서 다원주의적인 크기가 커지고 작아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