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교과서 니체_니체철학의 핵심
20180716_흥사단철학모임
프리드리히 니체_인생교과서_이진우, 백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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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철학을 하는가? 니체의 생각은 이렇다. ‘철학은 건강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삶의 지혜를 찾는 실존적 행위이다. 여기에 철학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니체는 1844년 10월 15일 프로이센의 뢰켄에서 목사의 첫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자신의 동생도 일찍 죽고 아버지도 5세때 죽었고 주로 여성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어느정도 여성스러운 부분들을 가지게 되었다.
1858년에 추어 포르테라는 학교에 입학하여 고전에 대한 이해와 문학적 능력 및 음악에 대한 자질이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1864년 본 대학에서 신학, 고전문헌학과 예술사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1865년에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학교를 옮겨서 고전문헌학에 집중하고 이 때 처음으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접하고 철학공부를 시작하였다.
1868년 바그너를 처음 만나게 되고 바그너의 음악에 매료되었으나 바그너의 기도교적인 성향과 맞지 않아서 나중에는 멀어지게 되었다. 1869년에는 바젤 대학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위촉되었다. 1879년에는 건강악화로 교수직을 사임하고 1889년 이탈리아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졸도하였다. 이후 10년간 정신질환을 앓게 되었고 1900년 바이마르에서 사망하였다.
니힐리즘, 허무주의
니체는 최고가치(신, 역사, 도덕)의 탈가치에 의해서 초래되는 의미상실의 경험을 허무주의라고 했다. 절대적으로 무의미함을 경험하는 상황을 허무주의 현상으로 규정했다. 인간은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최고가치들을 신, 자아, 진리, 역사적 목표 등으로 규정해왔는데 이러한 것들이 결국 연약한 인간들이 허무에 대한 두려움으로 만들어낸 허구적인 가치임을 깨다는 순간 허무를 경험하게 된다.
기독교적 전통에 의하면 역사에는 처음과 끝에 의미와 목적이 있고, 그 의미와 목적의 실현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모든 삶의 원칙이었다. 삶의 목적은 미래에 있기때문에 현재에 대해서는 금욕적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니체는 우리의 삶과 역사에는 헤겔이나 마르크스가 말하는 궁극적인 목표도 없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피안도 없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삶에는 어떤 목표도 의미도 주어져 있지 않으며, 목적도 의미도 없는 상태가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 삶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니체는 인간의 삶의 실상에는 허무주의가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니체는 금욕주의적 삶을 본능으로 부정하는 삶, 퇴화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니체는 이런 종류의 삶을 ‘데카당스’(퇴화)라고 지칭한다.
영원회귀, 무한 반복
영원한 시간은 영원을 이루고, 그 원형 안에서 일체의 사물이 그대로 무한히 되풀이되며, 그와 같은 인식의 발견도 무한히 되풀이된다는 내용이다. 결국 영원회귀의 사상은 연약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사상이라는 것이다. 니체에 의하면 허무주의를 긍정하는 인간, 영겁회귀의 상태를 적극적으로 인수하는 인간이 강한 인간이다.
그들은 피안과 미래를 믿지 않고 오직 현세와 현재를 탐닉한다. 니체는 영겁회귀의 사상을 통해서 천국의 경험을 피안으로 미루지 않고 현세에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정신의 자유를 얻으려 한 것이다. 정신이 자유로운 자는, 만약 모든 행동을 하기 전에 그리고 행동을 한 이후에 “이 행동이 영원히 반복되기를 원하는가?”라는 지룸ㄴ에 대해 환희에 차서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는 인간이다. 영겁회귀 사상을 통해서 니체의 허무주의는 자신을 위로하는 거짓된 이데올로기를 벗어버리고 자신의 생에 대한 조건 없는 긍정을 지향하게 되었다.
선악, 피안
선악을 초월하여 대립과 차별이 없는 경지이다. 도덕적 판단은 상대적으로 타당할 뿐이다. 절대적인 진리에서 볼 때에 도덕의 궁극적 이상은 선악의 피안에 있다는 뜻이다.
초인, 위버멘쉬
다음의 내용은 버트란트 러셀의 관점으로 본 것이다. 서양철학사에서 러셀은 니체를 매우 비판적으로 본다. 인간만이 구현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인간이라면 그렇게 살아야 할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다. 항상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인간이다.
자유정신의 소유자이며 주인의식의 소유자이다.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처럼 조형하는 삶의 예술가이다. 이 세계 전체가 거대한 관계세계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도 그 관계세계의 한 계기라는 점을 인정한다. 니체는 데카당스와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건강한 인간, 즉 위버멘쉬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니체는 다수는 단지 소수의 탁월한 능력을 돋보이게 하는 수단이 되어야 하므로, 그는 여기저기서 평범한 인간을 ‘섣부른자’라고 말한다. 독자적으로 행복이나 복지를 주앙하는 존재로 여겨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위대한 인간의 탄생에 필요하다면 평범한 인간이 고통을 당해도 반대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의 행복이 선 자체의 일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일은 모두 우월한 소수에게 존재할 뿐, 나머지 열등한 다수에게 일어나는 일은 무시한다. 니체는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귀족이란 보편적인 유형의 인간이 아니라 지배귀족과 같은 부류이다. 그의 귀족인간은 공상 속에서는 자기 자신으로서 공감능력이 결여되어 있으며, 냉정하고 교활하며 잔혹하고 오직 자신의 힘을 키우는 데 관심을 가는 존재이다.
노예도덕, 군주도덕
그는 이 두가지 도덕이 대립하는 것으로 전자는 긍정되어야 하고 후자는 부정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군주도덕이란, 강자가 자기 긍정의 생명력에 넘쳐 남을 지배한느 것을 가리키는 도덕, 즉 ‘권력에 대하 대한 의지’를 체현하는 초인에게 부과된 도덕이다.
이에 반해 노예도덕은 약자의 도덕으로서 기독교가 설파하는 사랑, 동정, 평화, 민주주의, 사회주의가 주장하는 것이다. 노예도덕은 인간을 평균화하고 수평화하는 퇴폐도덕이라고 한다.
민네이션, 허무주의
허무주의의 핵심은 결국 운동성이다. 모든 것들이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해진 것은 없다.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한다는 것은 기억에 의해서 약속된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이 되면 계속 변화는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허무주의에서 어떤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의지이다.그러나 니체는 한마디로 ‘의지 우선주의’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20180716_혼자공부
니체가 제시한 미래철학의 서곡, 관계론
백승영_처음읽는 독일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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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신선한 점은 ‘관계론’이라고 볼 수 있다. 관계론을 제대로 이해하면 영원회귀나 상입이나 파토스 같은 개념들도 모두 하나로 연결된다. 의지를 바탕으로 그 의지가 만들어내는 힘’의 관계를 지금 여기, 현실에서 적용하고 있다는데 있어서 니체의 철학은 현실성 혹은 현대성의 철학이다.
‘의지’라는 개념은 쇼펜하우어에게서 ‘에너지’의 개념은 라이프니츠에게서 빌려왔고 스스로 여러 학문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철학을 만들어 내었다. 허무주의라는 것은 삶이 허무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stock’으로 정해지는 것들이 없다는 뜻에서의 허무주의이다. 그럼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이 ‘flow’라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헤라클레이토스의 계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은 돌고 돌아서 회전하므로 그리고 다시 운동으로 연결됨으로 이것들을 연결할 수 있는 것은 ‘의지’라는 것이다. 이렇게 의지로 연결되는 것이 바로 힘이라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자연철학에서 이 힘은 자기장과 같은 에너지의 요소이지만 인간사회에서는 권력과 같은 정치적 요소가 다분하다고 할 수 있다.
미래철학 서곡, 관계론
19세기 말 니체는 자신의 철학을 새로운 철학이라고 했다. 그는 ‘선악의 저편’의 부재인 ‘미래철학의 서곡’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을 제시한다. 니체가 제시했던 탈형이상학적 전회, 본질주의와의 결별, 중심주의 모델 및 절대주의 모델의 파기, 다원주의 모델을 통한 일원론 극복 프로그램, 실체론에서 관계론으로 변화되는 것들을 살펴보면 정말로 현대성 담론 특히 포스트모더니즘과 비슷한 면이 많다.
니체의 철학은 후기로 갈 수록 ‘긍정의 철학’으로 바뀌게 된다. 긍정의 철학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운동하고 변화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생성적 성격을 갖는 모든 것에 대한 유보 없는 긍정 가능성을 철학적으로 확보해내는 것이다. 관계론 모델은 철학영역을 넘어서도 소쉬르의 언어학 및 기호확, 코헨의 색체 이론, 만하임이나 호이슬링의 관계적 사회학, 그리고 양자역학에서도 발견된다.
관계성에 대한 인식은 불교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것은 ‘상호의존적 발생’ 혹은 ‘관계적 발생’이라는 연기pratitytasamutpada의 사전적 정의에서도 확인된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_상응부경전
이 과제는 존재론에서부터 시작하여 인식론, 도덕론을 거쳐 사회, 정치론 및 법론에 이르기까지 그의 철학 전체에서 수행되며, 거기서 관계론 패러다임은 토대적 사유의 역할을 한다. 이것이 바로 ‘힘에 대한 의지’이다. Wille zur Macht이다.
관계론, 존재론
니체가 말하는 관계론은 독립적 개체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상대주의라는 다원성의 아포리아를 해소하는 다원주의를 제공한다. 부분과 전체에 대한 우선순위 없는 공속 관계를 보여주면서 전체주의적 위험이 사라진 부분과 전체의 모델을 제시하는 사유이다.
가장 큰 특징은 니체가 생각하기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관계론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인정’과 ‘긍정’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성적 세계와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 긍정 가능성을 철학적으로 확보하려는 니체 철학의 과제 수행에 이 관계론 모델은 토대이자 핵시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철학적 관계론은 ‘존재한느 모든 것’은 그 존재와 본성과 의미가 관계적 구축의 형태로 이해되어야 한다라는 기본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실체론에 대한 근본적인 대립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관계론적 전통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유전설에서, 니콜라우스 쿠시누스의 체계적인 시도에서 보여진다.
더욱이 근대 철학에서 라이프니츠는 탈실체론적 시간과 공간 이론과 살아있는 힘vita activa 개념, 개체들의 연관에 관한 스피노자의 이해, 리케르트의 대상 이론에서도 연유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철학적 사유들도 여전히 ‘실체론’의 관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 철학은 이들로 부터 시작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관계론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철학에서 니체의 관계론은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하이데거 후기철학 및 들뢰즈의 일원론적 존재론, 현상학과 해석학,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 영향을 미친다.
힘에 대한 의지, 방법
니체가 제시한 관계론의 토대 개념은 ‘힘에 대한 의지’이다. 힘에 대한 의지 개념은 니체가 쇼펜하우어의 의지철학과 라이프니츠의 자연철학, 마키아벨리와 투키디데스의 구너력개념, 그리고 힘-질료 논쟁과 동역학적 세계관 및 생리학 등의 당대의 자연과학 및 자연철학의 성과를 수용해서 구성한 것이다.
니체는 이 개념을 자신의 전 철학을 관통하는 유일한 설명 원리로 사용한다. 따라서 니체 철학은 총체적 환원주의라는 비판을 듣게 된다. 니체에게 이 세계는 다수plural의 힘에 대한 의지들이 거대한 관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힘에 대한 의지는 ‘항상 힘 상승과 강화와 지배를 추구하는 의지작용’이다. 다시 말하면 힘에 대한 의지는 방향성을 위로 향하고 그것이 확대되면서 다른 힘들을 포섭하여 자신의 체계 안에 포함시키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의지는 힘의 상승과 강화 및 지배를 추구하고 힘에 대한 의지는 다른 의지들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한 개체 안에서 존재한다.
그 의지들은 나중에 보겠지만 다시 그 자신으로 돌아오면서 더 강화되는데 이것이 바로 ‘영원회귀’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세계는 이런 힘에 대한 의지들이 구성해내는 관계-세계인 것이다. “이 세계는 힘에 대한 의지이다. 그 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너희 역시 이 힘에 대한 의지이다. 그 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힘에 대한 의지의 관점에서 볼 때, 셰근 본질적으로 관계-세계다. 그 말은 세계가 관계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힘에 대한 의지는 활동과 운동이 바로 존재양식인 한에서 존재적 특징과 운동 방식을 분리할 수는 없지만, 설명의 필요성으로 인해 구분해서 다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