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빛나던 순간은 사실 조증이었다?
비정형(비전형적) 우울증을 진단받은 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널을 뛰던 기분은 약 덕분에 잠잠해졌지만,
그만큼 어떤 욕구도 들지 않는 무감각 속에 빠져버렸다.
의사 선생님은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좋아지면 반드시 우울증이 동반된다며
롤러코스터처럼 올라갔던 기분은 낙하할 때 더욱 아프다면서
그래서인지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정 인간처럼 지냈다.
바싹 말라버린 건조한 마음에도 설렘과 벅찬 감정으로 가득 찼던 순간이 분명 존재했다.
이제는 지나가버린 먼 과거의 한편
진료시간에 지나가버린 과거를 추억하느라 잠을 못 이뤘다고 말을 하니
그 순간에 나는 어쩌면 '조증'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생각했던 내게,
그 말은 그야말로 심장을 찌르는 벼락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 사실은 조증 때문이었다니, 그게 말이나 돼?
잠시 그때를 회상해 보자면
22살 첫 회사를 퇴사한 무더운 여름날
영국으로 향하는 날이었다.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것도 아니고 해외여행을 처음 가보는 것도 아닌데
문화권이 전혀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세상을 체험한다는 기대감, 그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먼 곳으로 떠나는 두려움 반으로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안고 밤을 꼴딱 새웠다.
J 성향답게 철저히 분 단위로 준비했지만 설렘은 도저히 진정되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12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말똥말똥 뜬 눈으로 창밖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벌써 10년 전의 일인데, 그때의 마음과 기억이 생생하다.
런던에 도착하니 고작 낮 2시.
숙소에 체크인했지만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서둘러 런던 시내를 관광하고 싶은 마음뿐
숙소 문 밖을 나서 빨간색 2층 버스를 타고 피카디리 거리로 향했다.
첫 번째 일정이었던 <레미제라블> 뮤지컬을 관람하고 숙소로 돌아온 뒤에서나 겨우 잠이 들어버린 나
무려 30시간 넘게 한숨도 자지 않고 깨어 있었다.
내 말을 가만히 듣던 의사 선생님은 이게 조증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렸고 신났고 처음 보는 서양국가의 건축 양식이 좋았고 흐리고 비가 많이 내린다고 들었던 런던이 맑은 게 감사했다.
그래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었는데..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조증'의 증상이라는 게 아직도 충격적이고 마음이 아프다.
영국 다음 일정으로 넘어갔던 스페인
오렌지와 레몬이 선명한 빛을 띠며 익어가던 계절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수로 안에서 배를 타던 순간도,
해가 넘어가고 있던 스페인 광장에서의 산들바람도 이렇게 생생한데..
"아쉽지만 이제 보내줘야 해요. 그 순간은 다시는 돌아와서는 안 돼요."
조증은 필연적으로 우울증을 동반하기 때문이라고.
의사 선생님의 진단적 시선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살아있었다고 느낀 그 모든 찰나가
병의 증상으로 치부될 때,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순간들이 더 애틋하고, 더 가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