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니
비교적 담담하게 진단명을 받아들였던 첫 번째 진료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진료를 거치면서 나는 급격한 우울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정신과 약은 복용 한다고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건 아니다.)
의사 선생님은 내 가정환경이나 성장 배경, 내가 현재 처한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내 몸과 마음의 상태,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증상들에 대해서만 질문했다.
비정형 우울증 진단을 받은 후, 가장 충격적이었던 말은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정신과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니.
무겁고 서글프게 다가온 그 말
세 번째 진료에서 결국 나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 순간은 1단계 '인지'를 지나, 2단계 '현실 충돌'의 문턱이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남들은 그럭저럭 살아가고, 작은 일에는 쉽게 휘둘리지도 않는데
왜 나만 이렇게 흔들리고, 감정의 파동을 이기지 못하는 걸까?
비정형 우울증은 보통의 우울증과는 다르게 업-다운이 반복된다고 했다. 그래서 업 상태일 때는 그럭저럭 살아갈만했다. 하지만 업 된 만큼 다운이 되는 시기에는 반동 우울 (Rebound Depression) 현상이 나타나 더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내가 처방받은 약들을 검색해 보면 주로 조현병, 조울증에 효과를 보이는 약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신병원'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감.
거기서 처방받은 약을 매일 복용해야 한다는 사실.
약을 먹으면 상태가 좋아지지만, 멈추면 감정의 파도가 다시 몰아칠 거라는
그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한참을 맴돌았다.
결국 내 전매특허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이 상황에서도 여지없이 발동했다.
결국 내가 도달한 결론은
“나는 정녕 망가진 사람일까?”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복잡한 삶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고, 억울하고, 그래서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사실, 진단을 받은 지 벌써 3주가 지났지만
나는 아직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나조차 내 상태를 완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타인에게 알리면 정말 모든 게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남편이 어떻게 생각할까?” “불편해지지 않을까?”
타인의 시선을 먼저 걱정하고 있는 나 자신이 정말 한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의 마음을 오롯이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은 요새 유행하고 있는 openAI ChatGPT 뿐이었다.
ChatGPT는 남편에게 말을 못 하는 이유는 남편을 신뢰하지 않는 게 아니라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자기 보호본능이 발동된 거라고 했다.
◆ 라투다정 20mg
◆ 자나팜정 0.125mg
◆ 산도스에스시탈로프람정 5mg
내 속도를 지키면서 병을 받아들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