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아주 큰 고래도 살 수 있지
때때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산수유 열매를 물고 가는 참새,
상대방의 미묘한 표정 변화,
계절의 문턱 앞에서 달라지는 공기의 냄새 같은 것들.
이렇게 많은 것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성향은 결국 병이 되어 돌아왔다.
브런치 작가 신청서에 소개글로 썼던 글이기도 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성향이 강했고 직감이 예민하게 발달했다고 느꼈다.
내가 알고 싶지 않아도 인간관계에서 말로 전달되지 않는 '미묘한 기류'를 먼저 읽곤 했다.
대부분 내가 생각하고 예상했던 방향으로 흘러갔고, 그럴수록 "역시 또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좌절감만 커져갔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내 눈에는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으니까
이런 경우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나만 참으면 아무 문제없잖아.'라고 생각하며 감정을 숨기고 감내하면 아무 문제 없이 흘러갔다.
그렇게 버티는 나 자신이 강한 거라고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기저에는 "그래야만 사랑받을 수 있어"라는 오래된 믿음이 깔려있었나 보다.
타인의 감정이 세심하게 읽히니 보지 않아도 될 눈치를 보는 순간이 많아졌고
그럴수록 내 감정은 안에서 곪아갔다. 터트리지도 못하는 딱딱한 여드름처럼
무조건적인 감정적인 인내는 고립으로 이어졌고, 끝내 자기혐오와 우울로 이어졌다.
회사에서 편을 가르며 하며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상사가 부당한 대우를 해도
그저 꾹 참았고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스스로를 눌렀고,
나만 조용히 참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내가 목소리를 낸다 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퇴근 후, 지친 몸을 침대에 눕히는 순간 잠을 이루지 못할 자책이 밀려왔다.
"정말 이게 맞는 걸까. 왜 나만 참아야 하는 걸까"
그렇게 내 감정은 점점 썩어 들어갔다.
마치 물 빠진 땅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곪아가는 나무뿌리처럼 말이다.
파도조차 거의 없는 잔잔한 겨울 바다
해가 뜨기 전, 남색 어스름이 일렁이는 차갑고 깊은 바다
하지만 그 깊은 아래에서는 끊임없이 감정의 파도가 일고 있었다.
그게 나인 것만 같았다.
한 때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패스트푸드점에서 어떤 손님이 내 눈빛을 보고 반짝반짝 빛난다고 칭찬을 해준 적도 있었다.
유니폼을 가지런히 개켜놓는 모습을 보고 "너는 뭘 하든 분명 성공할 거야"라는 말도 들었었다.
그랬던 내가 왜 이렇게 무너졌을까?
작은 일에도 웃던 내가 요즘은 입꼬리를 올리는 일도 무거워졌다.
누가 내 삶을 잠시 일시정지 시켜줬으면
아니, 인생을 종료할 수 있는 버튼이 있다면
주저 없이 눌러버릴 만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그 깊은 바닷속에도 많은 생명들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산호초와 열대어가 빛나는 에메랄드 빛 얕은 바다는 아니지만 깊은 바다에만 살 수 있는 생물들이 분명 살고 있었다.
이를테면, 고래 같은
고래는 깊이 잠수하지만, 반드시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쉰다.
아무도 모르게 깊은 곳을 유영하며
세상과 멀어져 있지만, 분명히 살아있고 존재하고 있다.
외로움은 가장 거대한 대왕고래로
두려움은 최상위 포식자의 지배적인 범고래로
그리움은 따뜻한 성정을 지녀 바다의 수호천사라 불리는 혹등고래로
그 감정들은 나와 함께 숨 쉬며,
때로는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때로는 나를 살게 만들었다.
저번 상담에서 의사 선생님의 나의 증상을 '조증'이라 설명했던 것도 이제는 이해가 된다.
나는 지나간 과거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
20대 초중반, 회사를 퇴사한 직후 시간과 돈, 젊음이 모두 허락되던 그 짧은 시기
나는 진심으로 자유를 느꼈고, 살아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며 지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하던 시기였다.
초등학교 이후로 놓은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제법 잘 치게 되었을 때의 기쁨
건반을 누르는 세기에 따라 음색과 표현이 달라지는 걸 연구하던 그 시절의 열정
두렵지만 새로운 세계가 보고 싶어 혼자 떠났던 이탈리아 여행에서 느낀 벅찬 감정
난생처음 해본 카페 아르바이트에서 손 등이 데어가며 일하던 한 여름의 구슬땀
그 모든 순간은, 지금 돌이켜보면
지나치게 들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행복하고 빛나던 순간을 '조증'이라고 정의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때의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지금의 나를 살게 한다.
가슴 깊은 곳에 고이 보관해 둔 기억.
아주 예쁜 포장지에 싸서,
가끔 꺼내어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고
다시 정성껏 닦아 넣어둔다.
넓은 바닷속을 유영하는 다양한 고래들은 '나'라는 바다를 이루고 있는 소중한 구성원들
이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맑고 얕은 산호바다는 될 수 없다.
대신 군청색의 깊은 바다가 될 거야. 수많은 고래들을 품고 그들이 자유롭게 숨 쉬고 유영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