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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민희 Sep 14. 2019

강아지와 아기, 그리고 포틀랜드 맥주

5/21 Breakside Brewery

물처럼 맥주를 마시는 포틀랜드 사람들. 포틀랜드는 맥주 천국이다. 그래서 그런지 맥주를 파는 곳은 낮이건 밤이건 늘 북적인다.


맥주가 포틀랜드 사람들 생활의 일부라는 걸 내가 직접 느끼게 된 건 단순히 맥줏집과 양조장에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다. 강아지와 아기 때문이다.


먼저 강아지.


포틀랜드 개팔자가 상팔자

며칠 지내보니 포틀랜드는 강아지도 사람만큼, 어쩌면 사람보다 더 살기 좋은 동네인 것 같았다. 만일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날 수 없다면 포틀랜드의 한 가정집에서 사랑받는 강아지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서로 자신들이 강아지를 더 사랑한다고 경쟁하듯이 가게 앞에는 물이 담긴 강아지용 물그릇이 있고, 무료 강아지 간식을 가게 안에 구비해두기도 한다.


어디서든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강아지 물그릇


포틀랜드 로컬 브랜드는 물론이고 여러 유명 브랜드에서 다양한 강아지 전용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애견 전문 브랜드가 아닌데도 말이다. 정말 강아지가 살기 참 좋은 동네 같다.


저녁에 찾아 간 Breakside Brewery

포틀랜드에서 제일 처음 찾아간 양조장인 Breakside Brewery는 다운타운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가면서도 ‘여기에 브루어리가 있다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강아지(라고 썼지만, 커다란 개가 더 많았다)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맥주를 사랑하는 포틀랜더들이 사랑하는 양조장에 사랑하는 강아지를 데려가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비단 이 양조장뿐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양조장 야외 좌석에는 주인과 강아지가 함께였다.


다른 양조장에서 만난 귀요미(핫트)

나는 반려견이 없지만, 우리 집은 강아지 산책의 성지인 경의선 숲길 근처라는 특장점을 갖고 있다. 강아지가 고플(?) 때면 가끔 숲길로 나가 산책 나온 강아지들을 구경한다. 경의선 숲길에도 강아지가 출입 가능한 가게가 몇 있지만, 아직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포틀랜드와 다르게 한국에서 반려견과의 외출은 특별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아기.


아기와 어린이를 데리고 브루어리를 찾는 포틀랜더들이 정말 많다. 유모차에서 우는 갓난아기를 달래며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애들에게 색칠공부책을 던져주고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한 손에는 아기를 안고 한 손에는 맥줏잔을 들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아기 사진이 없어서.. Breakside Brewery에서 마신 샘플러 자랑

사실 한국의 맥줏집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들이다. 만일 내가 한국에서 이 모습을 봤다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저 엄마는 얼마나 맥주가 먹고 싶으면 아기까지 데리고 왔을까.’


탭 모양도 너무 예쁘던 Breakside Brewery

그런데 포틀랜드에서 매일매일 다른 양조장의 맥주를 마실 정도로 맥주를 좋아하는 내가 만일 저들처럼 엄마가 되어 아기를 낳는다면?


안 봐도 뻔하다.


매일 생맥주 먹고 싶다고 징징 대면서도 아이를 데리고 맥줏집 갈 용기는 안 나서 집에서 캔맥주만 뿌수고 있겠지. 아이를 데리고 갈 만한 맥줏집도 없을 테고. 맥주가 일상인 나도 맥줏집을 일상 속 공간이 아닌 특별한 곳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틀랜드 사람들에게 맥줏집, 양조장은 특별한 곳이 아니다. 식사를 하러 가는 장소일 뿐이다. 그래서 강아지도 아기도 데리고 그저 식당 가듯이 가는 것이다. 그런 게 너무 부러웠다.


남녀노소할 거 없이 맥줏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포틀랜드 사람들


한국에서도 강아지와 아기를 일상에 들이는 시도를 하고 있다. 반려견을 위한 햄버거와 피자가 출시됐고, 한 유명 셰프는 제주도 핫플레이스가 전부 노 키즈존이 되는 것이 안타까워 어린이 출입이 가능한 레스토랑을 계획했다고 말했다.


너무 맛있어서 한 잔 더 시켰다. 역시 메뉴판 첫 번째에 적혀 있는 맥주를 시켰다. 이름은 Breakside IPA.

한국에도 마이크로 브루어리가 부흥하여 일상 속에 자리 잡으면 좋겠다. 내가 아이 낳을 때쯤에는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 나 같은 맥덕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갈 자리가 있길 바라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더 열심히 국내 브루어리들의 맥주를 마시러 다녀야겠다.


이렇게 마시고도 너무 아쉬워서 숙소에 두 병의 맥주를 사 갔다.

Wander Lust와 Breakside IPA.

Breakside IPA는 이미 마셔봤기 때문에 Wander Lust를 마시기로 했다. 이 맥주는 다섯 가지 홉이 들어간 IPA라고 한다. 마침 에이스 호텔에 신라면이 있었다. 당장 물을 끓였다.


캐리어에서 불닭소스도 꺼냈는데 별로였다.

Wander Lust는 Breakside IPA보다 덜 쓰고 향긋했다. 유진과의 포틀랜드 첫날밤은 취기를 머금은 채 저물어갔다.




5월 21일에 마신 맥주 기록(2)

가득 남은 한 잔의 맥주는 사우어 비어인 Pineapple Under the Tea. 사우어 비어가 트렌드라고는 하는데 도저히 못 먹겠더라.

Breakside Brewery Sampler Tray
- Black Lager(Dark Lager) : 가벼운 스타우트 맛.
- Post Time Kolsch(Kolsch) : 그냥 가벼운 라거. 향은 없다.
- Cuddle Puddle(NW Pale Ale) : 첫맛은 좋은데 끝 맛이 너무 가벼워서 보리 맛이 났다.
- Mo’ Provlems(WC Pale Ale) : 클래식. 설명처럼 좀 쌉쌀 + 좀 시트러스. 현재 제일 괜찮다.
- Centennial Pale(Single hop pale ale) : 처음엔 별로였는데 Best. 진한데 텁텁하지 않고 목구멍까지 쓴맛.
- Pineapple Under the Tea(Sour Beer w/Pineapple&Chinese tea)XJing A(중국 브루어리) : 끝 맛으로 tea맛이 났다. 다이어트할 때 먹는 파인애플 식초 맛이 나서 좀 싫었다.


Breakside IPA 

Breakside Brewery / WC IPA / 6.3%
설명에는 Evergreen, tropical, balanced, bitter라고 쓰여있다. 목젖까지 쓰다. 쓴맛이 센 듯. 과일향이 적었다.


Wander Lust

Breakside Brewery / WC IPA / 6.2%
다섯 가지 홉이 들어갔다고 한다. 컵라면이랑 먹었다. Breakside IPA보다 덜 쓰고 향긋하다. 이 브루어리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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