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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민희 Sep 13. 2018

#1. 은성장

눅진한 국물에 반하고, 야들야들한 고기에 두 눈이 동그래지는 곳.

*겨울 막바지에 제작한 독립 출판물 '을지로 야옹이'를 매주 브런치에 소개합니다


#1. 은성장



눅진한 국물에 반하고,
야들야들한 고기에
두 눈이 동그래지는 곳.
엄마 보고 싶다.




어디서도 맡아보지 못한 냄새이지만, 오래 맡으면 무조건 몸에 안 좋을 것 같은 강력한 냄새.
을지로 3가의 첫인상이었다.


스마트폰 지도를 켜 은성장을 찾으려고 돌아보니 가게엔 전부 ‘아크릴’이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아크릴 가공 냄새였다. 누군가의 생업에 찡그리는 것 같아 미간을 펴니 은성장이 보였다.


은성 여관 앞에 자리 잡은 ‘은성장’.
문을 열자마자 여기서 가장 어린 사람은 우리라는 느낌이 들었고, 앉자마자 그것이 팩트임을 감지했다.


평양냉면집 ‘우래옥’에 가면 늘 보이는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제일 많았고, 안쪽 방에는 중년의 회식 팀도 있었다. 여기서 왠지 어른의 맛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소꼬리 찜이 유명하다기에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보는데 사회 초년생 둘과 대학생 하나, 백수 하나에게는 다소 비싼 가격이었다.


살짝 망설였지만, 얼마나 유명한가 맛이나 보자며 시켰다.

은성장의 소꼬리 찜


여느 사골 국물과 마찬가지로 뽀얀 색의 자작한 국물 위에 난생처음 마주친 소꼬리 단면에 살짝 겁을 먹었다.

늘 먹던 그 사골 국물을 생각하며 팔팔 끓는 국물을 한 입 먹었지만, 그 눅진함에 할 말을 잃었다.



“와 미쳤다.”
평생 먹은 사골국을 응축시켜 놓은 맛이었다.

닌자의 표창 같이 생긴 소꼬리에 힘겹게 붙은 살을 떼어 입에 넣자마자 두 눈이 동그래졌다.



“와 진짜 미쳤다.”
뼈에 붙은 고기가 제일이라는 말을 몸소 느낀 순간이었다.

엄마의 사골국에는 당연히 고기가 없었고, 다 먹고 나서야 입안에서 약간의 눅진함이 느껴졌는데, 은성장의 꼬리찜은 입에 넣자마자 눅진함이 가득했다.

주재료의 차이일까, 국과 찜의 차이일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엄마가 끓여주는 사골국이 생각났다.

 

역시나 양이 부족했고, 추가로 시킨 도가니탕!


사골국(우리 집은 사골국이라고 불렀다)을 끓이는 날이면 엄마의 엉덩이는 늘 분주했다.


핏물을 뺀다고 수시로 부엌을 드나들더니, 드라마를 보다가도 부엌에 갔다가 거실에서 심상치 않은 배경 음악이 들리면 국자를 들고 후다닥 TV 앞으로 오기도 했다. 잠들기 전에도 사골국님의 안위를 살피고, 혹여나 부엌을 태워 먹을까 새벽잠을 설쳤다.



그렇게 완성된 사골국은 송송 썬 대파와 김치, 굵은 소금과 함께 식탁에 올랐다. 대파의 흰 부분을 싫어하던 나는 다들 소금간을 할 때 재빠르게 초록 부분만 푹 떠서 내 국그릇으로 옮겼다.



아빠에게 소금통을 건네 받자마자 온 가족 눈치를 살피곤 했다. 아빠는 우리 가족이 짜게 먹는 걸 극도로 싫어했는데, 난 짠 게 좋았다(사실 아직도 짠 음식이 너무 좋다!).


소금을 살짝 퍼 국에 섞으며 톱스타 뺨치는 연기가 시작된다.


흐음-이라는 콧소리와 함께 소금을 살짝 퍼서 국그릇 오른쪽께에 넣고 왼편을 휘젓는다. 맛을 본다.



“싱거운 거 같은데, 아빠가 봐봐”
왼 편 국물을 떠서 아빠에게 한 입 준다.

 


“응 좀 더 넣어야겠다. 싱겁네. 조금만!”

‘예스~’


소금을 처음보다 더 퍼서 국 전체를 휘젓는다. 아빠에게는 소태국이지만 나에게는 알맞은 염도의 사골국이 완성되었다. 올라간 광대를 애써 내리며 밥을 한 숟가락 펐을 때 들려오는 아빠의 잔소리.



“어허 너무 많아. 반 만 넣어”
소금을 푸던 동생이 혼나고 있다. 나도 모르게 광대가 다시 올라갔고, 나만의 짭쪼름한 만찬을 즐겼다.



“맛있어~?”
내가 웃으며 먹으니 엄마가 좋아했다. 세상에는 이로운 비밀도 있는 것 같다. 나는 끄덕이며 숟가락에 배추 김치를 척 얹는다.


여름이면 엄마가 불린 콩과 땅콩을 갈아 콩국수를 만들어 줬는데,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올 여름 엄마가 뚝딱 만들어 준 콩국수


아빠는 내가 싱겁게 먹는다는 것을 굳게 믿었고, 소금 검열의 대상은 오로지 동생이었다.

 
사실 이 비밀은 우리 가족 아무도 모르는데, 이렇게 들통이 나버렸으니 이제 집에서 사골국을 먹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싱거운 사골국을 먹어도 괜찮으니
그래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딱 일주일만
세 끼를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성장
을지로3가역 9번 출구 나오자마자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 두 번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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