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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앙마 Jan 29. 2024

받아쓰기, 정말 필요한가요?

<이왕 교사 된 김에 한마디 얹어봅니다.>

 

 저는 2015 교육과정이 1, 2학년에 처음 적용되던 2017년부터 마지막으로 적용된 2023년까지 총 4번 1학년 담임교사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제 아이 둘도 모두 그 기간에 입학했지요. 그러다 보니 나름 1학년 교육과정과 아이들의 특성, 교육 및 활동 노하우에 대해 교사로서도, 학부모로서도 할 말이 많은 편이에요. 


 오늘은 그중 받아쓰기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불과 며칠 전에도 받아쓰기 활동 여부에 대한 네티즌들의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는 기사를 접했어요. 물론 저 또한 그저 한 네티즌일 뿐이지만, 그래도 다년간 1학년 교사를 맡았던 입장에서 제 경험을 예로 들어 적어보겠습니다. 


  2015 교육과정이 처음 적용된 2017년! 

 사실 새 교육과정이 처음 현장에 들어오는 해는 이전에 축적된 활동 자료나 노하우들이 생겨나기 전이라 약간의 혼란은 피해 갈 수 없어요. 놀이를 통한 학습을 강조하던 교육과정이었던 터라 이전 교육과정과는 획기적인 변화를 내포하고 있었지요. 

 특히, 아이들에게 경쟁과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는 활동들을 강력하게 터부시 했지요. 그 활동의 대표주자가 바로 ‘받아쓰기’였습니다. 그리고 한글 미리 배워서 입학할 필요 없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어요. 입학해서 교과서로 ㉠, ㉡, ㉢ 부터 공부하면 된다고 말이죠. 새 학년 시작 전, 개정 교육과정 연수에 참여했을 때, 정말 귀에 딱지 앉을 정도로 들었던 것이 여전히 기억날 정도랍니다.

 

 그런데 3주간의 입학적응활동을 마치고 본격적인 교과수업에 들어가자마자 멘붕이 왔습니다. 바로 국어교과서와 수학교과서가 주는 이질감 때문이었죠. 교육과정 연수에서부터 강조했듯 국어 교과서는 한글 자음과 모음부터 시작했어요. 반면, 수학 교과서와 보조교재인 수학익힘책은 모두 한글을 이미 읽을 줄 아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어요. 동시에 학습이 진행되는 국어와 수학이 이렇게 학습자의 한글 수준을 다르게 놓고 만들어져 있으니 현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지요.(2022 교육과정에서는 그러한 문제점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합니다만) 그뿐만 아니라 3월에 한글 자모음을 가지고 열심히 놀면서 한글을 배운 1학년 아이들은 1학기 말이 되면 무려 일기 쓰기를 배웁니다. 물론 2학기에 반복해서 공부하긴 하지만 한글 자모음 익히기에서 단어, 문장 쓰기, 더 나아가 일기 쓰기까지 입학해서 1학기 동안 정말 교사도 아이들도 멀미 날 정도의 한글 진도를 나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쓰며 연습할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했지요. 알림장 쓰기도 받아쓰기도 모두 하지 않았으니까요.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 모든 활동이 교사로서도 품이 많이 들기에 안 하면 더 편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국어 시간에 주어진 활동만으로 한글을 다 익히기엔 턱없이 모자라서 아이들의 글씨체도 글쓰기 수준도 이전 아이들에 비해 월등히 낮았지요.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오히려 힘들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늘 의미 있는 놀이를 통해 학습하며 학교를 즐거운 곳으로 알게 해야 한다는 교육과정의 취지에 맞게 잘 지도해서 아이들을 2학년에 올려 보냈습니다. 그러고는 2학년 아이들이 1학년에서 뭘 배우고 왔는지 한글이 아주 엉망이라는 평가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 만난 1학년들에게는 학기 초에 이미 2학기부터는 받아쓰기와 알림장 쓰기를 하겠다고 못 박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확실히 달랐습니다. 받아쓰기를 통해 맞춤법과 문장 구조에 대해 익힌 아이들의 쓰기 능력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물론 꼭 받아쓰기여만 하는가?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경험상 아이들은 그냥 써야 하는 바른 글씨 쓰기에는 집중하지 않습니다. 그거야말로 기계적인 쓰기 활동이 되기 쉬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다양한 영상매체에 익숙한 아이들이 많아진 교실에서 글씨 쓰기를 지도하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라 선생님한테도 고역의 시간이었지요. 여기저기 몸이 비틀어지고, 잘못된 글씨들을 한 번만 다시 써보자고 친절하게 애원해도 눈물까지 흘리며 온몸으로 거부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전 늘 잘 쓴 글씨에 동그라미 치며 칭찬을 퍼붓고, 정말 못 봐줄 만한 글씨 2~3개만 체크해서 예쁜 글씨로 바꿔보자고 사정합니다. 그리고 고쳐 써오면 폭풍 칭찬을 날리지요. 

 하지만 받아쓰기는 다릅니다. 아이들이 나름 시험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준비하는 아이들까지 있습니다.

 

 물론 받아쓰기 효과에는 당연히 개인차가 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만 봐도 똑같이 받아쓰기를 집에서 한 번도 봐주지 않았지만 둘의 받아쓰기 결과는 달랐습니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많이 해서 스스로 한글을 빨리 깨친 딸은 늘 100점이었어서 그 효과를 알 수 없었고, 아들 시험지에는 늘 붉은빛 장대비가 왔는데 그 비가 3학년이 되도록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런 두 아이를 보면서도 제가 받아쓰기를 하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실 받아쓰기는 받아쓰기 고득점 자체가 목적이어서는 안 되고, 그저 학습 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받아쓰기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보완해야지요. 

 대표적인 장점인 맞춤법 학습을 제대로 하려면 아이들이 쓰면서 문장을 꼭 읽어보는 경험을 하게 해야 합니다. 낱말과 문장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발음하는 것과 쓰는 것이 항상 같지 않음을 스스로 깨닫고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렇게 연습하고 선생님이 들려주신 문장을 집중해서 듣고 들은 내용을 기억하며 써보는 활동은 집중력을 향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저는 받아쓰기 시험 날짜를 미리 고지하고(주로 목요일) 월, 화, 수 3일간 집에서 한 번씩만 써오는 숙제를 내줍니다. 아이들은 물론 숙제를 좋아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크게 부담되지 않은 양의 숙제를 매일 하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숙제를 챙겨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는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기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 그렇게 해 온 숙제를 그냥 도장만 찍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들의 문장을 다 읽고 확인합니다. 첫날 해온 것에서 틀린 부분이 발견되면 그 부분에 동그라미를 해주고 아이들은 그것을 바로 그 부분을 지워 고칩니다. 둘째 날이 되면 그렇게 틀린 부분이 포함된 문장을 1번씩 다시 써야 합니다. 마지막 3번째 날이 되면 틀린 문장을 2번씩 다시 써야 하지요. 그러면 아이들은 제가 크게 잔소리하지 않아도 문장을 따라 쓸 때 자기가 맞게 쓰고 있는지 집중해야 한다는 것, 최소 제출하기 전에는 틀린 문장은 없는지 스스로 검토하는 것이 다시 문장 쓰기를 해야 하는 귀찮음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꾸준히 연습한 결과 학기 말이 되었을 때는 한글 부진이 심해 따로 교육이 필요한 친구를 제외한 모든 친구들의 받아쓰기 실력이 월등히 향상되었습니다. 설마 이 시점에서 우리 선생님은 왜 그렇게 안 봐주시지?라고 불평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절대 안 될 생각입니다. 학급마다 상황이 다르고 중점적으로 지도하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그렇게 해주시라고 바라거나 요구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말씀드리자면, 이 역할을 부모님께서 해주면 됩니다. 선생님께서 하시려면 너무 많은 아이들이라 힘들고 잠시도 시선을 떼기 힘든 1학년 아이들을 돌보며 하시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부모님께는 1~2명의 자기 자녀만 신경 써주시면 되니까요. 

 물론 바쁘신 부모님들 많이 계시지만, 그래도 최소 내 아이가 한글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꼭 해주실 것을 추천합니다. 너무 많이 시키실 필요 없이 하루에 1번 정도만 써보게 하고 틀린 문장 위주로 피드백하면 부모님도 아이들도 그렇게 부담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열성 교사였지만 집에서는 게으른 엄마였던 터라 둘째 아들의 한글 지도에 무관심했던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는 선배 엄마로서도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그렇다면 보완해야 할 받아쓰기의 단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점수를 통해 얻게 되는 아이의 패배감이지요. 사실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아이 받아쓰기 점수에 연연하지 않는 겁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닌가요? 

 사실 1학년 아이들의 몇 안 되는 아니 거의 유일하다 싶은 시험이라 부모님께서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많이 틀려온 시험지를 가지고 친자확인을 하며 속상해하시는 분들이 많으시죠. 

 그래서 전 시험 보기 전에 받아쓰기를 하는 이유에 대해 알려줍니다. 그리고 점수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아이들과 부모님께 대대적으로 안내합니다. 그런 다음 100점을 맞은 아이를 과도하게 칭찬하지도 않고 많이 틀린 아이들을 혼내지 않습니다. 그저 틀린 아이들은 그 문장에 대한 연습이 더 필요한 것뿐이지요. 그래서 틀린 문장만 3번 더 써보게 하고 넘어갑니다. 그리고 틀린 문장을 써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잠시 시험지를 대여하지만 100점인 친구들에게는 시험지를 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자기가 100점 맞은 것을 알긴 하되 지나치게 자랑하지 않도록 하고 틀린 아이들도 그 시험지로 인해 오래도록 고통받지 않도록 나름 배려합니다.

 

 그러는 과정 중에 받아쓰기 실력을 기록하여 향상되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언급해 줍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신의 노력으로 실력을 쌓아가는 것에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받아쓰기는 이렇게 활용될 수 있는 좋은 학습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받아쓰기 점수 자체에만 연연하거나 아무런 준비 없이 시험에 임해서 낮은 점수로 계속되는 패배감만 누적시킨다면 그건 정말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단순해 보이는 받아쓰기도 학습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잘 활용하려는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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