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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앙마 Jan 24. 2024

4. 바퀴 달린 책가방

<동시로 시작해서 에세이로 마무리 4번째 이야기>

  언젠가부터 여행용 캐리어처럼 손잡이를 빼서 끄는 책가방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걸 처음 봤을 땐 초등학생이 뭘 얼마나 담고 다닌다고 저런 가방을 끌고 다니지 하고 생각했다. 아이를 지나치게 과보호하려는 엄마들의 삐뚤어진 모정이라 여기며, 그깟 가방 뭐 그리 무겁다고 저렇게 유난을 떠나 싶었다. 


 사실 등하교시간이면 통학로는 아이들과 보호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결국 그런 책가방은 어깨를 조금 가볍게 해 줄 수는 있겠지만, 덜컹거리는 보도블록 위 많은 사람을 요리조리 피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하게 한다. 게다가 생각 없이 가방 손잡이만 잡고 내달리거나 조금만 부주의하게 움직였다간, 바퀴에 다른 사람 발이 걸리거나 밟고 지나가게 되는 실수를 범할 우려가 크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점보단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느낌이 컸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가방을 구입하게 됐다. 


 그 가방의 첫 쓰임은 당시 5학년이었던 첫째의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워킹맘인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근무 학교까지 편도로 1시간은 족히 걸렸다. 그래서 늘 아이들보다 일찍 출근해야 했고, 아직 잠에서 깨지도 않은 아이들을 두고 급하게 나오는 날도 많았다. 가끔 남편이 늦게 출근하며 아이들의 등교를 거들어 주긴 했지만 손에 꼽을 정도였다. 


  새 학년이 된 아이들은 선생님과 반 친구들을 소개받고 새 학기 준비물이 적힌 종이를 들고 왔다. 물티슈, 두루마리휴지, 바구니, 색연필, 사인펜, 풀, 가위, 테이프, 새 교과서 등등 챙겨가야 할 물건이 한가득 적혀있었다. 아이 담임선생님께서 언제까지라는 기한을 정해주셨고, 난 그에 맞춰 나눠서 가져가자고 했다. 

 둘째는 엄마 뜻에 흥쾌히 따르기로 했는데 첫째는 달랐다.  아이는 선생님이 되도록 빨리 가져오라고 하셨다며 첫날 한 번에 다 가져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도 선생님인데 꼭 서둘러 가져가지 않아도 된다고, 아무리 아는 척해도 아이한테는 자기 선생님이 왕이다. 


 워낙 고집이 센 데다 미리미리 챙기는 게 바람직한 일이기도 해서 결국 아이의 뜻을 들어주기로 했다. 책가방에 잘 정리해서 차곡차곡 담아 봤는데 이건 인간적으로 너무 무거웠다. 가뜩이나 12월생인 데다 또래보다 작은 키라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가방까지 무겁게 들고 간다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라면 좀 나았을 텐데, 아이학교는 학구가 넓은 편에 우리 아파트가 끝이라 아무리 빨리 걸어도 아이 걸음으로 15분 이상 걸렸다. 한동안 엄마들이 하도 차로 등하교를 시켜서 학교에서 여러 번 가정통신문이 배부되곤 했을 정도였다.


 고민 끝에 나는 급하게 캐리어 가방! 일명 롤링백을 주문했다. 거기다 담아 캐리어처럼 끌고 가라고 했다. 그 가방은 어깨끈을 잘 정리해서 넣고 손잡이를 잡아끌면 캐리어처럼, 손잡이를 넣고 어깨끈을 꺼내 매면 배낭으로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역시 처음은 서툴 수밖에 없었는지 아이는 첫날 가방 끈을 끊어왔다. 친구들 사이 어색하게 캐리어가방을 끌며 많이 난감했던 것 같다. 그러는 와중에 어깨끈이 빠진 줄도 모르고 바닥에 질질 끌고 다녔을 터다. 그럴 수도 있지 생각하면서도 새 가방을 망가뜨려 온 것에 화가 났다. 좀 더 주의하고 잘 챙겨서 오지 사자마자 새 가방을 망가뜨렸냐며 핀잔을 주었다. 아이는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엄마는 정말 너무 하다고 오히려 큰소리쳤다. 


 적박하장도 유분수지, 자기가 뭘 잘했다고 저렇게 소리를 치나 싶어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곧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네에는 생각보다 워킹맘이 많지 않다. 그래서 아이 친구 엄마들은 대부분 집에서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는 전업맘들이다. 분명 준비물이 많은 날은 학교 뒤편으로 차를 몰거나 엄마 손에 바리바리 가방을 들고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엄마가 일한다고 아침에도 스스로 챙겨서 정신없이 나가고 갑작스레 내리는 가벼운 비는 그냥 맞는 게 익숙한 딸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혼자 등교했던 아이를 주변 엄마들은 어른스럽고 대견하다 했지만, 그렇게 혼자 보내는 엄마 마음도 막상 혼자 집을 나서던 아이의 마음도 절대 유쾌하지 않았다. 

 12월 생이라 사실 어찌 보면 다른 애들보다 훨씬 어렸는데도 늘 참고 잘 버텨온 아이한테 난 늘 더 잘하라고 몰아세웠던 건 아닌지 마음이 아팠다. 너덜너덜 끊어진 어깨끈이 외로움에 지친 우리 딸의 마음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차오르는 눈물을 겨우 누르며 정성껏 한 땀 한 땀 꿰맸다. 워낙 똥손이라 삐뚤빼뚤 바느질 자국이 보기 흉해 그 위에 귀여운 사탕 브로치를 달았다. 


 그렇게 엄마를 대신해 간간히 무거운 짐을 챙겨주며 사용되던 그 가방은 이제 영어학원 고정 가방이 되었다. 딸은 질질 끌고 다니는 거 부끄럽다고 그냥 매는 가방 들고 가겠다고 우기곤 한다. 하지만 여전히 작은 키가 안쓰러운 내가 우리 딸의 어깨 위에 그 많은 책을 얹고 싶지 않아 더 고집을 부려 꼭 쓰게 한다. 


 난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 같은 워킹맘 자녀들을 자주 만난다. 당연히 워킹맘, 전업맘 구분해서 보는 건 아니지만, 사실 바쁜 워킹맘 엄마들이 준비물이나 안내장 챙기는 걸 깜빡하시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나 또한 그랬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학교에서 만들거나 선물한 뭔가를 챙겨가야 하는 날이면 '가방이 너무 무겁다, 꽉 차서 안 들어간다'고 투덜대는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후딱 달려가 가방을 싹싹 정리해 지퍼까지 닫아준다. 겨우 가방을 닫기는 했지만 여전히 뒤로 매자면 휘청하게 무거운 가방을 볼 때면 안타깝다. 차라리 롤링백이라도 사서 끌고 다니렴 권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아직 1학년 아이들에겐 스스로 끄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고 힘들다. 

 

 사실 교과서는 사물함에 두고 쓰니 가방 안을 채우고 있는 건 학교 물건이 아니라 방과 후에 가야 할 학원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도 한참 방과 후나 학원을 돌고 나서야 부모님과 만날 것이다. 


 글 서두에 언급했던 아이들의 롤링백 안에도 아마 그 아이들이 하루 종일 뱅뱅 돌아야 할 각종 학원들의 책과 준비물이 가득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롤링백 안에 가득 든 무거운 그 물건들을 다 꺼내고, 맛있는 음식과 멋쟁이 옷을 챙겨 가족들과 함께 여행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을 담아 이 시를 적어봤다.  

 

   #동시#에세이#책가방#워킹맘#캐리어#롤링백#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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