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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앙마 Jan 24. 2024

3. 엄마는 거짓말쟁이

<동시로 시작해서 에세이로 마무리> 세 번째 이야기 

 어린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난감한 상황이 생길 때가 종종 있다. 

 뭔가 쏟고 흘리는 거야 예사고, 망가뜨리고 잃어버리기 일쑤다. 

 그래도 이런 일은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니 그나마 해결책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훈육이나 주의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적절한 지도를 하고, 도움이 필요할 땐 슈퍼파워 원더우먼 엄마로 변신해서 다다다다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가장 난감한 경우는 무턱대고 우겨대거나 울어 젖힐 때다. 

 바로 이 시에 담긴 에피소드 같은 일이다. 


 둘째가 뱃속에 찾아왔다는 사실을 채 눈치채기도 전에 지금 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래서 요 녀석의 짧다고 하면 짧고 또 길다고 하면 긴 10여 년의 전 일생을 지금 이 집과 함께 했다. 

 이곳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자라고 있으며, 재건축 진행으로 이곳을 허물게 될 시기(이제 길어야 5~6년)까지 삶의 역사를 함께 할 것이다.  


 집을 사던 당시만 해도 첫째 아이 하나뿐이어서 23평이었던 신혼집에 전혀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남편이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는 돈도 없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넘겨버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후회되는 일이 떠오를 텐데.
저렇게 한강이 보이는 곳으로 이사 가서 퇴근 후 한강뷰를 바라보며 맥주 한 캔 따는 게 소원이라고 노래하던 사람의 얘기를 모른 척했다가, 
정말 후회하는 날이 오면 어쩌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우습지만 그땐 나름 너무 진지했다. 사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남편은 워커홀릭에 술도 좋아했고, 인스턴트 음식도 너무 좋아해 좀처럼 건강한 삶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연애할 땐 같이 사는 게 아닌 데다 서로 좋은 모습만 보여주니 몰랐지만 막상 같이 살기 시작하자 남편의 건강이 많이 우려스러웠다. 


 그래서 정말 그런 비극적인 일까지도 생각해 봤던 건 아닌가 싶다. 물론 그 후로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남편은 오히려 나보다 건강한 것 같다. 늘 허리디스크다, 무릎 아프다 골골대는 건 나이니 말이다. 


 암튼 그렇게 남편에게 그럼 한번 죽어도 원이 없도록 집을 한번 알아보라고 했다. 그날 이후로 남편과 나는 3살 첫째를 데리고 한강 주변 아파트들의 임장을 많이 다녔다. 대출을 최대로 낀다고 해도 우리가 살 수 있는 아파트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남편은 추리고 추리며 이 아파트 저 아파트를 대상으로 궁리를 했다. 


 암사동에 있던 아파트가 최종 선택되어 계약까지 하기로 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던 일이 생겼다. 

당시 친정 쪽 가족 모임이 있어 그곳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냈는데, 서울에서 나름 오래 사셨던 외삼촌들께서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밝히셨다. 대출을 그만큼 끼고 들어가기에 그 아파트의 전망이 밝지 않다는 것이었다.


 삼촌들은 나름 부동산으로 성공한 경험들을 축적하시고 계셨고 함께 계셨던 친정부모님까지도 우려를 표하자 남편도 그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당일 하기로 했던 계약은 무산이 되었고, 그렇게 잠시 갈 곳을 잃어버린 남편의 서울 집사기 프로젝트는 잠잠해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남편 윗 상사가 부동산으로 아주 성공하신 분이셨고, 늘 일만 하느라 그런 것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남편이 집 산다고 관심을 보이자 정보를 조금씩 주시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지금 집 동네를 알게 되었고, 처음 보러 다닌 단지는 주인과 부동산 사이에 낀 중개인의 농간으로 놓치고 바로 옆에 있는 다른 단지의 아파트를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아파트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렸다. 이렇게 오래된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처음엔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어차피 대출 가득이니 거기다 좀 더 한다고 별차이 있겠냐며 올수리 인테리어를 나름 고급형으로 진행했다. 


 그렇게 들어온 집은 43평, 그리고 1층이었다. 수리에 이사까지 총 2주 정도의 빠른 진행으로 이루어졌다. 그 시기를 정신없이 보내고 친정부모님을 모시고 집들이를 하던 크리스마스가 임박했던 그때, 우리 둘째가 우리 가정에 찾아왔다는 걸 알게 됐다. 


 넓고 1층인 우리 집은 아이 둘 키우기에는 너무 좋았다. 이전 집은 10층이었는데 조심을 한다고 해도 온 집안 바닥에 매트를 깔고 생활해야 했었다. 하지만 이사 온 뒤로 매트는 둘째가 너무 어려 혹시 넘어져서 다칠까 걱정될 때 잠깐 깔고 치워버렸다. 대형 트램펄린까지 집에 놓고 생활할 수 있었다. 물론 소리까지 차단되는 것은 아니니 늘 조용히 시키느라 애를 먹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이점에도 불구하고 1층이기에 생기는 많은 문제점도 있었다. 거실에서 바라본 베란다 뷰가 아주 명품인데 반해 사생활 보호를 위해 거의 블라인드를 내려놔야 했다. 오래된 아파트라 동 간 거리가 넓어 나는 괜찮을 것 같았는데, 남편은 질색팔색 난리가 났다. 그리고 1층이라 아무리 난방을 해도 좀 서늘했다. 샷시를 다 새로 했음에도 확장형 거실이라 어느 정도 감안해야 했다. 


 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시의 에피소드는 이런 집과도 관련이 있다. 

 도톰하게 내복을 입혔는데도 아이는 좀 추웠던 모양이다. 사실 난 원래는 추위를 정말 많이 탔었는데, 이상하게 둘째를 낳고 나서 몸에 열이 돌았다. 추위를 덜 타게 되고 좀 더 건강해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엉덩이가 좀 시렸던 아들은 내게도 엉덩이가 춥냐고 물었던 거고, 난 아무 생각 없이 괜찮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애교 많고 늘 엄마 껌딱지를 자처했던 아이가 눈물을 글썽글썽 대는 것이 아닌가?

 정말 영문을 알 수 없어 너무 난감했다. 무슨 일일까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 보는 내게 이젠 한술 더 떠서 소리치며 화를 냈다.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아니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말인가? 밤이고 낮이고 저를 돌보고 키우느라 고생하는 엄마한테 다짜고짜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행동인지. 


 정말 황당했다. 게다가 거짓말이라면 그 누구보다 싫어하는 내가 거짓말쟁이라고? 점점 화가 났다. 

겨우 화난 마음을 숨기고 일단 아이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왜 엄마가 거짓말쟁인 물었다. 


 엄마는 내가 아프면 더 아프다고 했잖아. 그러면 내가 엉덩이가 추우면 엄마는 더 추워야지?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빵 터졌다! 아이 말이 맞았다! 정말 난 거짓말쟁이였다. 

 웃음이 막 터지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겨우 달랬다. 다시 생각해 보니 아까부터 엄마도 엉덩이가 추웠던 것 같다고. 우리 아들이랑 엄마 엉덩이가 다 얼어버리기 전에 얼른 따뜻한 이불속으로 도망가자고 말이다. 


  아이는 이제 많이 자라서 저런 황당한 소리를 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심지어 '네가 전에 이런 말을 했어'라고 말해도 믿지 않을 나이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난 아이가 아플 때면 차라리 내가 더 아프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말이다. 우리 아이도 언젠가 부모가 되면 엄마가 했던 말이 절대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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