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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앙마 Jan 24. 2024

2. 항생제, 너보다 내가 더 세!

<동시로 시작해서 에세이로 마무리> 두 번째 이야기 

 첫째 출산 후 바로 육아 휴직을 시작하여 6살이 될 때까지 옆에 있어줬다. 하지만 그건 첫째의 입장이었고, 이와 달리 둘째는 3살이 막 되자마자 엄마의 복직으로 어린이집에 다니게 됐다. 사실 시어머니께서 봐주시기로 하셨지만, 나이도 있으신데 6세 여아 등 하원과 활동적인 3세 남아의 가정 육아를 동시에 맡기기 죄송한 마음이 컸다.


 그렇게 일찍 기관 생활을 시작하며 떼어 놓은 둘째를 보면 엄마로서 충분한 사랑을 못 준 것 같아 늘 미안했다. 실제로도 옆에 끼고 매일 책도 읽어주고, 각종 대소근육 관련 놀이 활동, 문화 센터 체험 수업 등을 함께 해준 첫째와 보냈던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시간이 펼쳐졌다. 피곤에 젖어서 집에 오니 겨우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나면 책 한 권 읽어주기가 힘든 밤이 많았다.


 물론 그랬기에 더 많이 안아주고, 볼 때마다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사실 요 녀석은 이제 곧 초등학교 4학년이 된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둘은 눈만 마주치면 껴안고 뽀뽀하며 사랑한다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 모습에 사춘기 첫째는 툭하면 질투하며 엄마는 자기보다 동생을 더 사랑한다며 불평하기 일쑤다.  그런 첫째의 질투에도 내 맘은 절대적인 시간을 오래 보내주지 못한 둘째에겐 늘 충분한 사랑을 못 준 것 같아 안타깝다.  

 게다가 어릴 적 둘째는(물론 지금은 평균 이상 키에 우람한 편) 늘 평균 이상으로 잘 크던 첫째와 달리 항상 키도 체중도 하위권이었다. 약하디 약해 보이는 겉모습과 딱 걸맞게 동네 소아과 단골이었다. 원래도 알레르기성 체질로 태어나 비염이 심한 데다 면역력이 약했는데, 기관 생활까지 일찍 한 탓인지 감기는 기본이고 장염에 독감 등등 각종 바이러스 질환을 달고 살았다. 


 퇴근하면 늘 먼저 아이들을 안아주었는데, 둘째를 안을 땐 늘 긴장했다. 왜냐면 둘째가 좀 컨디션이 나빠 보인다 싶으면 열이 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늘 내게 '엄마는 확실히 다르다. 어쩌면 열나는 것을 바로 알아채느냐.'하고 말씀하셨다. 그랬다. 난 굳이 체온계를 대지 않아도 아이가 열나는 것을 금방 감지했다. 그런 날이며 퇴근하자마자 얼른 옷만 갈아입고 밤새 열 보초를 섰다. 


 자주 병원을 다닌 것도 내 탓인 것 같아 혼자 울기도 많이 했다. 지금 와 생각하면, 어차피 시간이 흘러 아이가 크면 자연스럽게 면역력도 올라갈 걸 왜 그렇게 혼자 맘 졸이며 힘들어했는지 후회된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아이와 더 많이 웃고 노래하며 재미난 놀이를 더 많이 해줄 걸 말이다. 


 아무튼 그 시절에 쓴 시다. 정말 애증의 항생제! 자주 아픈 탓에 항생제도 참 많이 먹었다. 엄마 입장에서 웬만하면 먹이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빨리 나아야 한다는 마음에 날짜 지켜서 먹였다. 

 원래도 장이 안 좋은데, 항생제를 먹는 날이면 어김없이 물똥을 쏟아냈다. 그렇게 똥을 싸는 아이를 지켜보자면 나도 모르게 한껏 얼굴이 구겨졌다. 저렇게 똥을 싸고 나면 똥꼬는 또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에 내 똥꼬마저 아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내 똥꼬에서 자꾸 폭죽이 터져요!"

 

 아이는 다 시인이라고 했던가? 비유가 기가 막힌다. 


 그 순간 구겨졌던 얼굴이 활짝 펴지고 웃음이 터졌다.

사랑하는 내 아이는 항생제보다 강했다. 어찌나 밝고 용감한지!


 요샌 많이 커서 확실히 예전보다 덜 아프지만, 여전히 면역력이 아주 강한 편은 아닌지, 이번 겨울에만 독감을 A형, B형 골고루 걸렸다. 


 에효~ 여전히 항생제를 먹고 나면 주르륵! 그래도 이젠 그 물똥소리에도 아무렇지도 않다! 그저 항생제를 먹었으니 당연히 저러겠지, 하고 만다.


항생제쯤은 우리 아들 똥꼬에서 축제의 신호탄일 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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