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콤앙마 Jan 26. 2024

우리 반 반려식물 ‘초록이’ 1

<교실에세이 2023.12.13. 의 기록>

 반 아이들이 강낭콩 화분 세트(강낭콩을 불러 화분에 심은 것)를 집에 가져갈 무렵인 4월 중후반에 난 교실로 ‘초록이’를 데려왔다.     


 사실 난 스스로 인정하는 식물 키우기의 똥손이다! 

 반면 우리 아빠는 버려져 죽어가는 식물도 곧잘 살려내셨고, 피우기 힘들다는 꽃들도 빈번하게 키워내시곤 하셨던 금손이시다. 그래서 늘 우리 집 베란다는 싱그러운 초록으로 가득했다. 

 

 도대체, 그런 아빠의 유전자는 다 어디로 간 건 지. 

 웬만한 식물들은 내 손에 들어오면 모두 장수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스스로 이런 나를 잘 알기에 내 의지로 식물을 집에 들이는 일 또한 없었다.       

 

 그런데 1학년을 맡게 되자, 봄 교과서에 강낭콩 씨앗 관찰을 하고 키우는 과정이 등장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식물을 키울 기회들이 생긴 것이다. 

 

 물론, 똥손이 쉽게 고쳐질 리가 없었다. 1학년을 맡았던 첫해에는 아이들과 싹을 틔우고 떡잎, 본잎이 나오는 모습까지만 겨우 관찰에 성공했다. 그리고 찾아온 여름방학을 기회 삼아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콩들의 존재를 싹 지워냈다.


 그다음 해에는 꽃 피는 것까지! 그러다 세번 째 해였던 작년에는 많지는 않았지만, 꼬투리 맺는 것까지 성공했다! 확실히 식물 키우기에도 내공과 노하우가 필요했던 것이다.      

 

 올해 학교를 옮기고, 새로운 교실에 들어왔을 때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붙박이로 붙어 있는 대형 화분이었다. 아무것도 심겨 있지 않은 채 텅 비어있었다. 뭐 크게 상관없었다. 어차피 식물 기르기에 소질도 없고, 올해는 강낭콩도 학급에서 키우지 않고 키트를 활용해 각자 가정에서 키울 수 있도록 하기로 동학년 회의를 통해 미리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 말인 즉슨, 학급에서 수고롭게 식물을 키울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웬걸! 본래 청개구리 기질이 다분해서 그런지, 올해는 식물을 안 키워도 된다니 괜히 키우고 싶었다. 그전엔 별 상관없던 텅 빈 화분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가.

 

 결국 ‘초록이’라는 이름을 붙인 방울토마토를 교실로 입성시켰다. 

 역시 ‘끼아악’ 부대 우리 반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무슨 식물이냐고 계속 물어댔지만, 비밀이라고 했다. 초록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그때 맞춰보라고 말이다. 그러고는 잘 자랄 수 있게 예쁜 말을 해달라고 했더니 이말 저말 작은 머리를 맞대고 조잘대곤 했다.      

우리 반 초록이의 교실 입성 일주차 

 그런데, 역시 아이들의 관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꾸준히 물을 주며 정성을 들였지만, 우리 교실은 ㄱ자로 꺾이는 곳에 있어서 생각보다 햇빛이 잘 들지 못했다. 실내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그렇듯 초록이는 가늘게 길어지기만 했다.

 

 원래 시키는 것은 하기 싫어해도 원해서 하는 일엔 정성을 다하는 난 길어지는 초록이가 기대 자랄 수 있는 대를 세워가며 신경을 많이 썼다. 하지만 점점 나도 그저 물 주는 것에만 공을 들이게 됐다. 사실 좌중우돌 변화무쌍한 우리 반 아이들을 챙기기에도 늘 역부족이었다. 초록초록 그저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초록이까지는 도저히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키우고 있다는 책임감에 방학 때까지도 한 번씩 학교에 들러 초록이를 챙겼다.   

  그렇게 여름방학을 마치고 울긋불긋 낙엽의 계절 가을을  거쳐 겨울의 찬바람이 교실로 비집고 들어왔다. 어느 틈에 초록이는 교실 귀퉁이에 걸어놓은 먼지 낀 액자처럼 방치되기 시작했다. 의무감에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물을 주긴 했지만, 위로만 자꾸 자라 덩굴처럼 엉키기 시작한 것을 못 본 척 내버려 둔지 이미 한참이나 지나 있었다.  

    

 그러다 이번 주 월요일! 또 한 번의 ‘끼아악’ 부대가 소집됐다. 

 

 “선생님, 선생님! 초록이한테 꽃봉오리 같은 것이 생겼어요!”


 아이들이 안 보는척하면서도 우리 ‘초록이’를 계속 지켜봤나 보다. 아이들은 꽃이냐 아니냐를 두고 한참 옥신각신 중이었고 애들 손에 이끌려 초록이한테 달려갔다.      

 

 분명 지난 금요일까진 없었던 노란 꽃잎이 슬쩍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얘들아, 꽃 맞아! 초록이가 꽃피웠다!”


 아이들 앞이라는 것도 잊고 너무 좋아 아이처럼 방방 뛰었다. 아이들도 옆에서 신이 났다. 


 “초록아, 너무 고마워!”


 그때 내 귓가로 우리 반 한 친구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진짜 이 예쁜 애들을 어쩌면 좋나. 이렇게 예쁜 마음이라니. 우리 반 모두를 기쁘게 해 준 초록이한테 고마움을 전하는 아이의 마음이 너무 감동이었다.      

 

 그래서 나도 고마운 초록이를 위한 행동을 개시했다. 길게 자라 얽혀있던 줄기를 막대 하나 더 연결해 길게 세워 올리고 줄기를 좀 정리했다. 그리고 영양수액까지 사서 투입! 사실 줄기도 너무 가늘고 햇빛도 잘 못 봐서 아이들과의 1년이 끝나기 전에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준 초록이한테 나도 너무 고마웠다.     

오랫 만에 관리 받은 우리 초록이 & 보답하듯 꽃을 활짝!


#우리 반#반려식물#고마워#초록아#교실에세이 

작가의 이전글 5. 할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