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에세이 2024.01.25의 기록>
겨울방학이 끝났다. 평소 한 달이라는 시간이 그리 짧지 않았던 것 같은데 '방학'이라는 말을 갖다 대는 순간 마치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것 같다. 물론 내가 방학하면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들도 방학이라 돌아서면 밥타령을 해대는 삼식이들 틈에서 마냥 편치도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각 잡고 출근해야 할 때보다는 솔직히 편했기에 어젯밤은 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보고픈 마음뿐이었다. 혹시 알람을 못 들으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 탓에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일찍 눈을 떠도 출근할 준비를 하면서 아이들 아침거리를 챙기고, 학교에 챙겨가야 할 수저와 물통을 챙겨 넣어주려니 정신없이 바빴다. 그 와중에 바쁜 엄마를 도와주기는커녕 여전히 늦잠 자는 버릇을 못 버리고 한참을 이불속에서 실랑이하는 아이들을 보자니 울화통이 치밀었다.
어쨌든 확실히 깨워서 학교 갈 준비를 채근해 두고 출근길에 나섰다. 어제까진 가기 싫다고 엄마는 도대체 몇 살까지 학교를 다녀야 하냐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둘째를 붙잡고 푸념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이른 아침 정신이 번쩍 들만큼 찬 바람을 맞으며 학교 가는 길이 그리 싫지 않았다. 잠시 기억 저편으로 밀어두었던 우리 반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방학 동안 얼마나 자라서 올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교실로 향하는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교실 앞에는 벌써 2명의 아이들이 신발주머니에서 실내화를 꺼내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자 재잘재잘 이야기를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한 명 한 명 눈을 맞춰 주었다. 뒤이어 아이들이 마치 릴레이 달리기를 하듯 하나둘 교실로 들어섰다. 방학 사이에 아이들은 훌쩍 커서 돌아왔다. 키도 많이 컸지만 부쩍 의젓해진 모습이 이제 곧 형님이 될 준비를 제법 마친 듯했다.
"선생님, 전 계속 학교 오고 싶었다요. 선생님 엄청 보고 싶었어요."
우리 반 수다쟁이 S양이 양쪽 볼에 귀여운 보조개를 쏙쏙 넣어가며 이야기했다. 방긋 웃으며 말할 때마다 초승달로 꺾어지는 눈을 보고 있자니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선생님도! 우리 OO이 너무 보고 싶었어!"
그러자 뒤 이어 아이들의 이야기보따리가 터진다.
"선생님, 저 빠졌던 앞니 두 개 다 나고 있어요."
한동안 앞니 두 개가 다 빠져 웃을 때마다 구멍이 뻥뻥 뚫리던 L양이 이제 막 나기 시작한 앞니를 자랑했다.
항상 나서서 친구들을 잘 이끄는 씩씩한 P군이 평소와 다르게 내 앞을 계속 뱅뱅 돌며 배시시 웃기만 했다.
"왜? 무슨 일인데? 빨리 말해줘야지?"
빤히 속내가 보이는데도 모르는 척 채근했다. 그러자 못 이기는 척 가까이 다가오더니 획 뒤로 돌아섰다. 알고 보니 오늘 입고 온 옷이 등에 자기 이름이 쓰여 있는 축구복을 입고 온 것이었다. 아빠가 선물해 주신 거라고 자랑을 쏟아냈다.
이외에도 바가지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L군의 머리가 뽀글이로 바뀌었고, 큰 키에 예쁘장한 작은 얼굴이 눈에 띄는 K양 머리에는 하와이에서 사 온 꽃핀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또 아이들끼리도 시끌벅적한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아이들의 시선이 우리 반 반려식물인 '초록이'에게로 향했다. 방학 직전 노란 꽃을 활짝 피워내며 우리를 기쁘게 해 줬던 초록이는 잘 지냈는지 궁금했다던 아이들!
또 우리 반 '끼아악'부대가 출동했다.
"선생님! 초록이 꽃이 지고 그 자리에 열매가 맺혔어요."
"선생님, 저 이제 이거 뭔 줄 알겠어요. 토마토 아니에요?"
"맞는 것 같아. 방울 토마토? 대추 토마토? 선생님, 맞죠?"
"선생님이 방학 때 나와서 물 준 거예요?"
"어? 열매 생긴 뒤 쪽에 꽃이 하나 더 피었어요!"
아이들은 아주 신이 났다. 덩달아 나도 신이 났다. 드디어 아이들이 그간 우리와 함께 지낸 초록이가 방울토마토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그래도 난 아직 대답을 아꼈다. 아이들이 좀 더 궁금해했으면 좋겠다.
작은 모종으로 만나 다소 늦긴 했지만 꽃도 피우고 결국 열매까지 맺은 초록이를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마치 지난 3월, 유치원을 갓 졸업하고 학교의 모든 것에 낯설어하던 우리 반 친구들이 이제는 학교 곳곳을 제 집 드나들듯 누비며 저 마다의 1학년을 멋지게 완성해 가는 모습과 너무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다.
난 아이들에게 마치 오래도록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듯 머뭇거리며 이야기 하나를 꺼냈다.
"얘들아, 사실 초록이한테는 쌍둥이 형제가 있었어. 바로 쑥쑥이라고 말이야."
"혹시 죽었나요?"
내 말에 담긴 슬픈 뉘앙스를 눈치챘는지, 한 아이가 물었다.
"응. 사실 초록이는 학교에 가져와서 너희들과 같이 키웠고, 쑥쑥이는 선생님이 혼자 집에서 길렀어. 그런데 쑥쑥이는 얼마 안 돼서 죽어버린 거야. 사실 그래서 선생님은 초록이도 그렇게 빨리 죽어버리면 어쩌지 하고 정말 걱정했어. 쑥쑥이가 죽은 건 선생님 혼자 속상해하면 되는데, 초록이가 죽으면 너희들도 다 같이 슬퍼하게 될까 봐 말이야."
"초록이는 우리가 모두 잘 자라라고 이야기해 줘서 잘 자랐나 봐요."
"그러게! 정말 그랬나? 얘들아, 우리 식물이 잘 자라면 꼭 필요한 게 뭐라고 배웠지?"
"물이요!"
"햇빛이요!"
"흙이요!"
"똥이요!"
ㅋㅋㅋㅋㅋㅋ
"아니야, 거름이요!"
"맞아. 잘 기억하고 있었네. 근데 사실 우리 교실이 ㄱ자로 꺾여서 해가 잘 안 들어. 그래서 우리 초록이가 저렇게 가늘고 길게만 자랐던 것 같아. 그런데도 결국 꽃도 피고 열매도 맺혔네. 너희들이 입학해서 몸도 마음도 쑥쑥 자라는 동안 초록이도 함께 무럭무럭 자랐나 봐. 모두 너무 대단하다!"
이제 아이들과 보낼 시간이 등교일을 기준으로 딱 9일 남았다. 하루하루가 너무 아쉽게만 느껴진다. 분명 너무 힘든 1학년이었는데, 내가 직접 키운 것도 아니면서도 아이들 하나하나 진짜 내 아이들같이 이쁘고 사랑스럽다. 아마도 볼 날이 이제 얼마 안 남았다니 그런 마음이 드는 거겠지?
음;;; 쓰고 보니 너무 낯간지러운 멘트인가? 그런데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은 실제로 이런 대화가 가능하다.
아이들 하교시키고 동학년 선생님들과 수업 나눔을 할 때 초록이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는 4반 아이들이 유독 동심이 뛰어난 것 같다고 하시던 선생님들이 쑥쑥이 이야기부터는 아이들이 아니라 선생님이 동심에 빠져 있다고;;; 특히 나랑 MBTI가 정 반대이신 ESTJ샘은 고개를 절레절레;;;
공감 못 받아도 어쩔 수 없다! 난 찐 F 니깐!!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