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모출판사의 영화상영 이벤트에 당첨되어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제목은 <길위에 김대중>이고 티켓이 2장이라 같이 갈 사람을 물색하다 올 1년 함께 할 수 있었음에 행복했던 동학년 선생님과 같이 갔다.
광화문역에서 내려서도 15분 정도 골목을 걸어야 했다. <에무시네마>라고 주로 독립예술영화를 많이 상영하는 작은 극장이었다.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이벤트 당첨자임을 확인시켜 좌석을 선택했다. 30여분 정도 일찍 도착했더니 맨 앞자리를 선점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작은 극장에 단차가 크지 않아 A열을 택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극장은 음료만 반입이 가능한 곳이었다. 따뜻한 분위기에 책과 영화포스터로 가득한 카페에서 바닐라라떼를 구입해 극장으로 들어섰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했다.
내가 잘 알지 못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일생과 한국의 근현대사가 펼쳐졌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 전쟁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이승만 정권을 지내며 죽을 고비까지 겪었던 유능한 사업가였던 그는 부조리한 세태에 탄식하며 정치에 입문한다.
내로라하는 부자였던 그는 연속된 낙선으로 재산을 다 잃었지만 끝까지 소신 있게 민주주의를 국민의 힘으로 이뤄내기 위해 애쓴다.
박정희의 독재정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다 제거의 표적이 되어 납치까지 당하는 죽을 고비에서 겨우 구출되었고, 전두환의 신군부 정권 아래 5.18 민주화운동을 빨갱이들의 폭동으로 매도하며 이 사태의 주동자로 엮여 사형선고를 받았다.
다행히 이미 한국 민주주의의 아이콘이 된 그를 죽이는 것은 신군부에게 큰 부담이었다. 무기수가 되어 죽음의 고비를 넘겼지만, 악화된 건강의 회복과 동지들의 사면을 위한 미국망명을 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그의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미국 곳곳으로 다니며 언론과 정치인들을 끊임없이 설득했다. 작은 나라에서 망명 온 야당의원, 그는 그저 그들에겐 이름도 기억하기 힘든 별 볼 일 없던 이였다. 그럼에도 들을 때까지 두드리고 또 두드려 그들에게 각인 됐다.
마침내 미국의 각종 언론과 정치인들이 그를 주목했고 그들의 비호아래 암살의 위협을 이겨내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이후 그를 주축으로 민주화 운동은 더욱 거세졌고 결국 전두환은 노태우에게 권력을 이양했지만, 노태우는 국민들의 강한 민주화 요구에 부담을 느껴 6.29 민주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영화는 드디어 쟁취한 대통령직선제를 앞두고 김영삼 vs 김대중의 대결구도가 설정된 시기에서후속 편이 있음을 예고하며 마무리된다.
정말 이런 삶이 있다니,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음이 죄스러웠다. 정말 나라면 그 숱한 죽음의 위협에서도 국민의 민주주의를 위해 다 던져버릴 수 있었을까? 아니, 절대 못한다.
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보며 피로 쓰인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