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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앙마 Mar 13. 2024

행운 상자가 우리 반에 왔다!

<교실에세이 2024.03.13. 의 기록> 

 지난 3월 5일 화요일! 

새 학기가 시작된 지 고작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바로 회장, 부회장 선거가 있었다.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싶었지만 너무 정신없어서 그런 생각을 할 틈조차 없었다. 난 누가 회장감인지 아닌지 가늠해 보기도 전에 그저 아이들 이름이나 겨우 외운 상태에서 회장, 부회장 선거를 진두지휘했다. 


 당황스러운 나와 달리 아이들은 이미 4년간 서로 보고 겪은 시간이 있어서인지 담담해 보였다. 선거에 관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들에 대해 안내하고 무효표가 되는 경우와 동점자 처리 등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회장, 부회장이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었다. 

 

 아이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회장의 역할은 '봉사'였다. 심지어 '희생'까지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 자리가 학급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라는 것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희생을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좋은 반이 되기 위해서 우리 함께 마음을 모으고 노력해야지 특정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이다. 

 

 물론 임원이 되면 우리 반을 대표해서 이것저것 귀찮은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고,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서 다양한 요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친구들과 선생님께 신임을 얻는 자리이기도 하고, 대표가 되어 회의를 이끌어나가며 리더의 자리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한동안 1학년 담임을 계속했기에 오랜만에 보는 임원선거였다. 선거를 하려면 후보가 좀 나와야 할 텐데. 이제 5학년, 즉 고학년이 되었다고 임원 하기 싫어하면 어쩌나 하고 살짝 걱정했다. 

  

 그런데 웬걸? 

 내 걱정이 무색해지는 일이 일어났다. 남자아이 13명 중에 7명이 후보로 나왔고 여자아이는 11명 중 3명이 나왔다. 후보가 이렇게 나오고도 몇몇이 더 추천되었는데, 그 친구들은 2학기를 노리고 있다며 이번 선거에는 빠진다고 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임원을 하고 싶어 하는 줄은 정말 몰랐다. 

 

 후보로 나온 아이들에게 선거공약을 발표해 보도록 했다.  

준비할 시간이 하루밖에 없었음에도 아이들은 열심히 준비해 왔다. 후보 연설을 적은 종이를 들고 나온 아이들은 물론이고, 멋진 포스터를 만들어 온 아이, 커다란 스푼을 만들어 열정, 긍정, 행운을 한 스푼씩 드는 퍼포먼스를 준비한 아이, 스케치북 퍼포먼스를 준비한 아이 등 다양했다. 심지어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갈까? 말까?' 친구들한테 물어보며 마치 안 나오려다 나왔다는 뉘앙스로 요란하게 선거에 나온 아이마저도 3가지 이상의 그럴싸한 공약을 내세웠다. 

 

 아이들의 공약을 듣고 있는데 멋진 우리 반을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어제 열심히 고민했을 아이들의 진심이 느껴져서 가슴이 벅찼다. 그러면서 동시에 마음이 무거웠다. 남녀 각각 많은 표를 받은 아이 2명씩을 뽑아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아이가 회장, 그다음이 부회장이 된다. 당연히 남녀 각각 5명, 1명은 떨어질 것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떨어질 아이들의 마음이 선거 시작도 전부터 아팠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받았던 감동을 그대로 전하고 선생님은 회장, 부회장이 된 아이들 뿐만 아니라 떨어진 친구들도 방금 말했던 공약 그대로 자기 또한 우리 반 회장, 부회장과 다름없다는 마음으로 우리 반을 위해 노력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떨어져도 앞으로 또 여러 번의 기회가 있으니 그때 또 도전해 보면 되니 너무 상심하지 말자고 했다. 


 투표가 시작되었고 이내 개표가 진행되었다. 그렇게 주사위는 던져졌다.

사실 말이 쉽지 떨어진 친구들의 마음이 좋을 리 없다. 그럼에도 덤덤히 받아들이려고 애를 쓰는 아이들 틈에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가 나왔다. 4학년에서 올라올 때 이전 선생님으로부터 내가 많이 보듬어 주어야 할 아이라고 안내를 받았던 아이였다. 


 사실 이 아이가 아침부터 선거공약을 적은 종이를 흔들며 자기도 선거에 나갈 거라고 했을 때 조금 놀랐다. 아이는 자기가 실수하거나 잘못하는 것, 지는 것 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강박적인 행동을 할 때가 잦다. 발표를 곧잘 하는데 상황에 맞지 않은 말을 하고 횡설수설 이상한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자기가 맡은 1인 1역이나 숙제를 아주 잘한다. 오히려 과하게 잘하려고 하는 것이 더 문제가 될 때가 있을 정도다.

 

 아무튼 그 친구가 울음을 터트렸다. 0표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자기를 뽑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이를 많이 속상하게 했던 것 같다. 5학년이나 되었으니 속상한 마음도 의젓하게 넘기면 좋겠지만 이 아이는 그것이 어려운 아이다. 울면서 책상을 크게 두드리다 급기야 자기를 비하하는 말까지 한다.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회장, 부회장을 바꿔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 줬다. 많이 속상했겠다고 그래도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있으니 다음을 노려보자고 말이다. 그러자 아이는 3학년때부터 늘 선거에 나왔지만 늘 떨어졌다고 했다. 아이의 슬픈 눈을 보며 그저 속상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 말고는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안타까웠다. 

 

 사실 그랬다. 다음을 노려보자고 달래는 나조차 늘 선생님과 아이들의 배려를 받아야 하는 이 아이가 회장으로 뽑힐 일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옆에서 다른 친구들이 위로한답시고 너라도 널 뽑았어야지 하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이 아이가 정말 멋진 아이가 아닐까? 친구들의 공약을 잘 듣고 소신껏 자기가 생각하는 멋진 친구에게 표를 준 것이다. 그저 내 표에 하나를 더 얹으려고 애쓰는 아이가 아니다. 만약 내가 투표를 할 수 있다면 나라도 한표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저 가정일 뿐이다. 아무튼 다행히 아이는 슬픔을 털고 일어났다. 


 이렇듯 좌충우돌 임원선거가 끝났다. 그리고 우리 반에는 행운상자가 나타났다. 1표 차이로 아깝게 부회장이 된 여자아이가 자기의 공약대로 행운상자를 준비한 것이다. 그 상자 안에는 뽑으면 기분을 좋게 해주는 행운의 말들이 담겨 있다. 


 이런 멋진 공약을 내고 실천해 준 아이한테 고마웠다. 그래서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우리 반 친구들에게 힘을 주는 멋진 말들을 적어서 넣어보자고 했다.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행운상자가 우리 반 모든 모두에게 힘이 되고 기쁨을 주었으면 좋겠다. 

 

 우선 나부터 좋아하는 문장들을 좀 찾아 넣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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