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무기와, 이를 휘두를 적절한 싸움터

by 미노칼럼

여덟살 즈음엔가, 삼촌 차를 탄 적이 있다. 스물 여덟이 된 지금도 키가 작은 편인데 그 때는 얼마나 작았을까, 조수석에 앉은 나는 안전 벨트를 메기 굉장히 불편했다. 엄마 차를 탈 때의 기억을 살려 내 얼굴 위를 가로지르는 벨트 절반을 시트 뒤쪽으로 넘기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삼촌은,


"어허! 벨트 똑바로 해야지! 그렇게 하면 위험해!"


내게 주의를 줬다. 그 작은 손발로 내 큼지막한 불편함을 표현했지만, 삼촌에게 전해진 건 어린아이의 단순한 투정과 핑계였다. 그 작은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맞았다. 허리 쪽 안전 벨트 만으로도 안전에 대한 삼촌의 걱정을 해결할 수 있었고, 8년 인생 전반에 걸쳐 조수석에 탑승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내 체형 전용 방법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속상함을 표현하면 내가 어린아이임을 인정하는 꼴이다 하는 생각에, 입을 꾹 닫고 속상함이 새어나가는 걸 막았다. 잠시 후 뒷좌석에 탄 엄마는, 미처 막지 못한 눈물과 붉어진 얼굴 그리고 이를 대신 막고 있는 듯한 벨트를 보고는


"호야, 안전 벨트 뒤로 넘기지 그래?"


내 논리에 동조해 주었다. 그제서야 삼촌은, "아 그래? 뒤로 넘겨 내가 도와줄게." 하면서 심지어 어린 날 배려까지 해줬다.


난 이 순간의 패배감을, 내 논리가 단순히 어린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처참히 뭉개졌다는 좌절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공부하고 연구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된 나로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아이디어와 이를 논리적으로 끌어나가는 사고력은 내가 가진 큰 무기인 듯하다. 이 무기를 마음껏 휘두를 적절한 싸움터를 발견한 것은, 무기 자체를 얻게 된 것만큼이나 큰 행운일지 모른다. 지금까지 갈고닦아온 내 무기가 모든 싸움터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더 날 선 무기가 되지 않을까. 확실한 건, 20년 전 그 차 안은 적절한 싸움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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