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울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가끔 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낯선 땅, 낯선 말,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이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른인 나조차 이 이국의 공기가 낯설어 아직 밤마다 잠을 설쳤는데.
치앙마이의 아침은 뜨겁다. 아이들은 그 뜨거운 아침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학교 가는 길, 그들의 발걸음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나는 그들의 뒤를 따르며 생각했다. 아이들은 어른과 다르다. 그들에게는 '적응'이라는 말이 필요 없다. 그들은 그저 산다.
"엄마, 내 친구 이름은 에이미야."
둘째가 말했다. 그 아이의 목소리에는 자랑이 섞여 있었다. 에이미... 나는 그 이름을 되뇌었다. 아이는 벌써 이곳에서 친구를 얻었다. 피부색이 다르고 말이 다른 친구를. 나는 아직도 마트에서 물건값을 치를 때 움츠러드는데.
학교 운동장은 사막처럼 뜨겁다. 아이들은 그 사막 위에서 피구를 하고 농구를한다. 땀이 흘렀다. 옷이 땀에 젖는다. 아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그 순간을 즐긴다.
"여기 계속 살면 안 돼?"
첫째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아이는 이미 이곳을 자신의 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른인 나는 아직도 '언제까지 여기 있을까' '언제 돌아갈까'를 생각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영어 숙제를 할 때 칭얼댄다. 문장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평은 오래가지 않는다. 금세 숙제를 마치고 친구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울음과 웃음 사이의 거리가 어른보다 짧다. 그것이 아이들의 힘이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은 아이들이 나를 이끌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는 법을, 이곳에서 웃는 법을, 이곳에서 친구가 되는 법을 그들이 먼저 배우고 나를 가르쳤다.
치앙마이의 저녁이 온다. 아이들은 오늘도 학교에서 돌아와 숙제를 하고 놀고 잠이 든다. 그들의 잠자리는 평안하다. 내일 또 학교에 가고, 제이든과 놀고, 운동장에서 피구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의 잠든 얼굴을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쩌면 어른이 되는 것은 아이들을 따라가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들의 용기를, 그들의 유연함을, 그들의 순간을 사는 힘을.
치앙마이의 밤이 깊어간다. 나는 이제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이 가르쳐준 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오늘을 받아들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