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허기질 때

엄마음식

by m녹

나는 1970년대 중반에 태어났다. 우리 어릴 때는 지금처럼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해주는 여러 음식과 간식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다양한 음식들을 먹으며 컸다. 다행히도 엄마는 전업주부여서 가난한 살림에도 이것저것 해 먹일 수 있으셨을 것이다. 그런 음식들을 먹고 자란 나는 엄마를 떠나 살면서부터 엄마가 해주는 음식들을 늘 그리워하며 살았다. 특히 어딘가 아플 때는 더 그랬다. 의지할 데 없이 부표처럼 떠돌 때는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졌다. 그런 시간들이 어연 삼십 년이 넘었다.

이제 엄마도 젊은 시절 했던 음식을 잘 하지 않는다. 엄마도 늙었고 나도 늙었다. 당연한 일이다.


부리를 들이대며 짹짹거리는 아기새들처럼 넷이나 되는 자식들 입에 넣을 음식들은 언제나 부족했다.

지금도 엄마가 하는 얘기가 있다.


"아이고, 야 말도 마라! 아침에 귤 한 박스를 사면 저녁에 없어. 어찌나 먹어대는지... 호호호"


그만큼 어린 자식들의 식탐은 대단했고 여의치 않는 살림에 엄마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직접 해서 먹이는 수밖에 없었으리라. 엄마는 좋았다고 했다. 내 새끼들 입속에 들어가는 게 그렇게 좋았다고 했다.


명절과 절기, 소풍과 같은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부터 도시락을 여섯 개씩 쌌던 엄마가 매일 해야 했던 음식, 질리도록 같은 음식이 올라와 싫어했던 반찬들까지... 나는 어느새 '라떼는 말이야~ '하고 과거를 떠올리며 그 맛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알고 있다. 그 맛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예전에 읽었던 허영만의 '식객'이란 만화가 떠오른다. 거기에서 일류요리사가 된 한 남자가 라면맛을 찾아 헤맨다. 군대시절 선임이 반합에 끓여주던 라면 맛을 잊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저기서 이렇게 저렇게 요리해서 먹어봐도 그 맛을 못 찾다가 마지막에 얻은 해답은 “실컷 두들겨 맞은 다음 울면서 먹어라.”였다.


유년시절의 맛은


엄마 아빠가 세상의 전부였던 때,

피자 같은 건 구경도 못 해봤을 때,

한 겨울에도 볼이 빨갛게 트도록 밖에서 놀던 때,

밤 아홉 시면 새나라의 어린이였기에 잠들어야 했던 때,

뜨거운 아랫목에 종아리가 데어 물집이 생기던 때,

만화책과 일요일 아침에 하던 만화영화만이 오락거리였을 때,

자려고 펴놓은 두툼한 이불 위에서 뒹구르기 하며 형제들과 놀던 때


로 돌아가지 않는 한,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맛!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맛!


그 맛을 떠올리면 나의 반평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계속해서 반복됐다. 아이들은 커졌고 어른들은 작아졌다.

철마다 바뀌던 음식은 수십 년쯤 지나자 일 년 내내 비슷해졌다.

그리고 잠시 내 옆의 아이들을 돌아본다. 나는 저 애들한테 어떤 음식을 먹여왔고, 저 애들이 나를 떠올릴 때면 '엄마가 해줬던...'이라며 떠올릴 음식이 있을까?

자신이 없다. 나만의 특별한 요리도 없고 그저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며 정신없이 살아왔기에 음식이란 귀찮고 해치워버려야 하는 또 다른 노동이었을 뿐이었다.


이제 정신없이 달려왔던 철로에서 살짝 내려서보고자 한다.

언제 그리운 것들을 마음껏 그리워해본 적이 있던가?

가마솥에, 연탄불에, 하나뿐인 곤로에 하나씩 하나씩 느리게 만들어졌던 그 음식들을 오롯이 떠올리고 글로 표현해보려고 한다. 조금 더 여유가 생길 때면 하나씩 만들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혹시 아는가?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리움"이라고 불러줄 만한 엄마음식을 만들어줄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