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섣달 팥죽
요 며칠 한파주의보가 떴다. 눈도 꽤 내렸다. 동짓날이 지난 지 며칠 되었다. 그날 엄마한테 전화해서 팥죽 먹었냐고 물었다. 엄마는 올케가 사 와서 같이 먹었다고 했다.
출장 갔다 오는 길에 점심을 거른지라 뭘 먹을까 생각하며 운전하던 중 국도변에 '팥칼국수'라는 안내가 붙은 허름한 칼국수집을 지났다. 멈출까? 말까? 하며 망설이는 동안 지나쳤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죽집에서 팥죽을 사 왔다. 윗옷도 벗지 않고 허겁지겁 먹었다. 내 몸 어디에 이런 허기가 들어있을까 싶었다. 프랜차이즈 죽집의 팥죽에는 밥알이 들어있고 새알심이 6개 들어있었다. 반절을 남겼다. 진한 풍미도 없고 팥냄새도 나지 않았다.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건너가야 할까 보다.
한겨울, 눈이 폴폴 내리는 어느 밤, 나는 몸을 웅크리고 방밖으로 나와 낮에 엄마가 만들어뒀던 팥죽을 그릇에 퍼왔다. 팥죽은 갓 만들어서 뜨거울 때 먹어도 맛있었지만 내가 좋아했던 팥죽은 밖에다 내놓아 추운 한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차가워진 팥죽이다. 찹쌀로 만든 새알심은 더 쫀득거렸고 걸쭉한 상태로 살짝 굳은 꾸덕꾸덕한 팥죽은 맛이 더 깊어졌다.
찹싸알떠억~! 메미일무욱~!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려오고 밖에는 소리 없이 길고도 긴 겨울밤을 아쉬워하듯 끊임없이 눈이 내렸다. 식구들은 뜨끈한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 찬 팥죽을 먹었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며 귀신을 쫓기 위해 팥죽을 쑤어 먹기 시작했다지.
팥의 붉은색이 귀신을 쫓아내는 힘이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
아이들이 왜 올해엔 크리스마스 트리를 하지않냐고 물었다. 내가 초심을 잃었다고 한다.
나도 엄마한테 전화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