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주어 감사합니다
할머니집은 김제 시골이었다. 주변은 모두 논이 넓게 펼쳐져있고 마을 뒤로는 뒷산이 자리 잡은 전형적인 촌락이었다. 나는 거기서 네댓 살까지 살다가 아빠가 근처 도시로 나오면서 이사를 하게 됐다. 그 후로도 명절이나 집안 행사, 방학 때마다 자주 갔다. 우리 마을에는 나보다 서너 살 많은(그런 걸로 기억되는), 말을 더듬는 오빠가 있었다. 오빠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오빠의 누나 이름은 기억이 난다. 단희, 나는 단희 언니랑 자주 놀았다. 그 언니네 집은 마을 뒤쪽의 언덕 같은 곳에 있었다.
어느 날 오빠가 내 손을 잡고 오빠의 집 뒤안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은 시눗대가 뒷 울타리처럼 우거져 한여름에도 어둑하니 서늘한 곳이었다. 시눗대 앞으로는 장독대가 있었고 그중 한 항아리에서 오빠가 뭔가를 꺼내 내손에 올려주었다. 주황색의 감이었다.
그건 물에 젖어있었다. 소금물에 우린 감이었다.
사십 년도 더 된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풍화되어 이제 다 흐려졌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나는 국민학교도 안 다니는 꼬맹이였고 오빠 또한 꼬맹이였다는 것, 그리고 내 손에 올려진 그 감의 묵직함, 여름날 그 뒤안의 서늘함은 강렬히 내 피부에 각인되어 남아있다.
그 후에 몇 년이 흘러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명절날 모인 시골집은 시끌벅적했다. 오빠가 찾아와서 우린 잠깐 주변을 걸으며 얘기를 나눴다. 오빠가 그랬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어 또 할머니집에 간 어느 날 누군가가 그 오빠가 밖에서 날 찾는다고 했다. 막 나가려고 하는 내게 엄마가 나가지 말라고 했다. 말을 잘 듣는 천상 착한 딸이었던 나는 별 생각없이 엄마 말을 따랐다. 나는 그렇게 오빠를 잊어버렸다.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엄마에게 물어보면 알겠지만 물어본들 무엇하겠는가? 아니 낼모레 여든이 되는 엄마도 그를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할수도 있다.
오늘 문득 소금물에 우려서 꺼내먹던 그 감이 생각났다. 물론 할머니집의 항아리에도 그 감이 있었다. 그때는 다 그렇게 떫은 감을 소금물에 담가서 울쿼서 먹었다. 그리고 그 오빠가 생각났다. 얼굴도 목소리도 모두 뿌옇게 바랬지만 손바닥 위에 올려진 그 감만은 선명하다.
그 오빠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잘.. 잘 살고 있을까?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