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두 권의 독후감(2026.01.17 Instagram)
이번에도 때늦은 2025 회고 혹은 책 두권에 대한 독후감 (이사람은 제시간에 회고한적이 없다)
연말만 되면 SNS를 가리지 않고 다들 1년을 돌아보며 회고 글들을 올립니다. 저도 재작년즈음까지는 분기마다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 회고 비스무리한 글을 쓰게 되는건 2년만이네요.
솔직하게 말해서, '회고할게 없어서' 회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회고'라는건 무언가를 돌아보면서 '내가 이렇게 했고, 이건 좋았고, 이건 좋지 않았고, 그래서 총평은 이렇고...' 따위의 꽤 디버깅같은, (B모 하우스 S모 대표님의 말을 빌려) 굉장히 Functional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저는 근 2년간은 제가 행한 것, 읽은 것, 먹은 것 등에 대해서 디버깅해보지 않았습니다.
Tech Friendly하게 말하면, 로그를 찍어놓지 않아서 디버깅도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래서 이번에도 똑같이 회고할 건 없습니다.
대신 추억할 것들이 많아요.
누군가와 같이 산다던가, 살면서 처음 살아본 아파트, 다시 내려온 경기도, 새하얗게 빛나던 비에이의 눈밭, 등등
인스타그램 포스트에는 2,200자까지밖에 쓸 수 없어서 나열하다가는 포스트가 열댓장이 되어버릴 만큼 추억할 것들이 많아요.
이런 것들에는, 이래서 좋았고 등의 이야기를 하기에는 그닥 맞지 않는 느낌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것이죠. 그래서 회고할 건 없고, 추억할 것은 많네요.
공교롭게도 2년만에 읽게 된 책 '이브에게 보내는 편지' 전에 가장 재미있게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은 '노마드 투자자 서한' 입니다.(2년간 분명히 뭔가 읽긴 했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는 않네요)
둘 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이지만, 한 권은 죽은 연인에게 보내는 것, 나머지 하나는 PE 분기마감 결산편지(혹은 앙망문)에 가까운 것입니다.
'노마드 투자자 서한' 이 정말로 회고에 가깝죠,
예컨데, "저희가 이번에 짐바브웨 달러로 환치기해서 돈좀 벌려다가 홀라당 말아먹어버린" 사실에 대한 육하원칙이 내용 전체적으로 가득합니다.
이래서 잘 됐고, 이건 판단을 잘못 했고 등의 '지나간 사실들'을 나열하면서 평가하는 내용입니다.
반대로 '이브에게 보내는 편지' 는 회고가 아니라 '회한'이죠. 이미 죽은 연인 '이브 생 로랑'에게 보내는 절절한 러브레터 1년치가 가득 차있습니다.
이 책에도 결국은 과거의 사실들이 등장하는데요, 앞에 언급했던 투자자 서한과는 (당연히) 다르게도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던가 '당신이 너무 그리운 밤' 이라던가 같은 낭만 넘치는 구절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저는 성격상 닉 슬립같은 금융 양복쟁이보다는 이브 생 로랑같은 편집증 환자(창작을 하는 사람이 제정신일 리가 없습니다.)에 가깝다 보니 두번째 책의 내용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책 내용 안에 있는 '이브 생 로랑'의 위업, 브랜드 그 자체, 이들의 안목, 동성애 등등 이모저모 이야기할 것도 많지만 제가 이 글을 쓰면서 골라내고 싶었던 '이데올로기' 하나는 [회고와 추억은 무엇이 다른가요] 가 되겠습니다.
9년간 조단위 PE를 굴리면서 900퍼센트 넘는 수익을 내지도 못했고, '여성을 해방'한 세기의 쿠튀리에도 아니지만 감히 말해보자면 회고는 오답노트처럼 과거에서 이유를 찾는 것이고 (쓰임새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추억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노스텔지아라던가, 추억보정이라는 [강제로 과거를 아름답게 감싸주는] 것들도 분명히 있지만,
이미 현재가 고달프고 미래는 암울한데 과거 좀 달콤하게 싸매는게 크게 문제가 될까요? 우리는 조금 두바이쫀득쿠키같은 마인드를 가져도 좋지 싶습니다.
과거를 미래를 나가가기 위한 원동력[으로만] 보는 것은 제 기준에서는 낭만 불합격인 것 같습니다.
이제 슬슬 2200자에 가까워집니다.
글이 너무 길어지면 맛이 없죠.
글 쓰는 '수련'을 좀 하라던 이 모 CSO님, '노마드 투자자 서한'을 추천해주신 김 모 COO님, 그리고 회고 문서 언제 쓰냐고 한 일주일 저를 괴롭혔던 배 모 군, 그리고 늘 저를 지지해주고 지탱해주는 저의 뮤즈 K 양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냅니다.
왕왕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