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십사일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by 미농

4월 14일 :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몸이 호전될 줄 알았는데, 더 아파졌다. 나는 원래 약을 잘 먹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먼지 탓일까. 먼지가 많아 쌓아둔 책을 정리하고 방을 치웠다. 다 치우지도 못하고 힘이 스르르 빠져 누워버렸다. 앓은 지 삼일 째니까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민호도 집을 나서면서 무척 걱정해주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밖에 없었지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준 셈이니 나는 무척 고마움을 느꼈다.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받아왔다. 의사 선생님은 증상이 심하다고 오늘 푹 쉬라고 말씀해주셨다.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군 생활할 때, 행정보급관이던 할아버지 원사님이 이병이던 내가 아프니까 누워있으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그땐 머리도 아프고 피로해서 과연 쉬는 것만으로 몸이 호전될까 싶었는데 웬일인지 말끔히 나았다. 그때부터 쉼의 힘을 믿게 됐다. 말 그대로 누워만 있었다. 과일을 먹으면 도움이 된다고 하시기에 멜론과 파인애플 한 개씩, 딸기 한 박스를 사다 먹었다.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몸 상태론 도저히 갈 수 없었다. 정재와 점심식사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됐다. 하루 종일 누워만 있던 적은 간만이다. 자명종 시계처럼 ‘끙’하는 소리만 연거푸 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됐던 걸까. 도대체 왜 이리 아프게 하시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서도 써야 하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은데, 직장도 나가지 않는 백수가 앓고만 있어야 하다니. 스스로를 원망하며 무기력에 빠졌다. 직장 다닐 땐 이렇게까지 아파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기침이 무척 심해서 병원에 다녀온 적이야 있었지만 말이다. 하루 종일 누워서 운명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연약한 내게 세상살이의 변수를 조정할 수 있는 힘은 전혀 없었다. 나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전염병에 앓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 의외의 사람들과 부딪친 일, 하다못해 머리에 새똥을 맞는 일 등 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통상적인 확률을 계산할 수는 있지만, 결코 오늘 누구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를 높은 확률로 예측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일은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 그 어떤 상황도 가능성이 될 수 있다. 전염병을 심하게 앓고 난 후, 건강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어 의사가 되거나 헬스 트레이너가 될 수 있다. 또, 길거리에서 우연찮게 만난 사람을 지나칠 수도 있고 그 인연으로 결혼해서 수십 년을 해로할 수도 있다. 새똥을 맞은 계기로 새를 저격하는 사냥꾼이 될 수도 있고, 조류학자로 세계에 명성을 떨칠 수도 있다.


살아가는 동안 주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을 피할 수는 없다. 이는 우리가 오가는 운명의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이 가혹한 운명의 법칙에 대한 규칙성조차 발견해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운명을 받아들인 이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시련도 운명이란 이름으로 다가온다. 아래는 루터의 말이다.


"유혹이 오는 것은 막을 수 없으나 빠지지 않도록 간구할 수는 있다.


시련당하는 것(느낌)과 시련에 동의하고 굴복하는 것은 엄연히 차원이 다릅니다. 시련은 누구나 당합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종류와 정도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누구도 시험에서 안전하지 않으며, 오직 기도만이 시험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시험에 대비하여 무장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누구도 악마가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졌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안전하다고 확신하며 안심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 말은, 마음에 단단함을 주었다. 기도할 때마다 더욱 든든하다. 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내게 기도할 수 있게 하셨음을 감사하며 비록 몸은 아파도 용기가 품었다. 종일, 내 육체적인 힘은 거실과 화장실 정도만을 오갈 수 있는 정도였지만, 정신만큼은 또렷했다. 바울처럼 하늘의 하나님 나라에 가있고 싶단 마음으로 이제 나의 영혼을 거두어 가셔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고자 인생의 목표를 세웠다. 받은 은혜만큼 이 땅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었다. 지금은 그 목표 중 1%조차 채우지 못했다고 자평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금세 미련이 없어졌다. 내 안의 하나님께 당신만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죽어도 좋다고. 영화 <사일런스>에서 모기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듯, 나도 그렇게 순교하고 싶었다. 지금 감기에 걸려죽으면 순교로 불리진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면 어느 장면에서든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었으니까.


부모님은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지시겠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주여, 결혼도 못하고 죽는 건가요.’, ‘그럼 유미는 다른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겠구나.’, ‘하나님, 그것만은 막아주세요.’고 떠올리다가 해가 저물었다. 어느새 가족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오면서 거실이 가득 찼다. 혼자 있어 외롭던 날보단 온기가 들었다.


가족,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이 있어 참 좋다. 가족과 이야길 나누다보니 마음에 볕이 들었다. 이렇게 나의 영혼과 육체를 채우시는 주 덕분에 오늘도 사는구나하고 느꼈다. 죽는다고 1인 극을 펼칠 때는 언제고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 평생을 살 듯, 하루를 살더라도 늘 인생의 끝을 기억하며 살아가기를, 또 주어진 삶에 늘 감사하기를 기도했다.


“그분에 대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당신이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내 길, 내 목표, 내 자아를 떠나 그 분의 길과 목표, 그 분을 붙드는 일이라고. 인간, 돈, 여론, 성품, 대속 자체를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고 그분의 말씀대로 행하는 일이라고. 저는 이 순종의 무게를 감당할 만큼 튼튼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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