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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농 Oct 20. 2018

삶은 짧고도 길다


  삶은 무얼까. 삶은 감자, 삶은 달걀 같이 삶에 대한 위트섞인 말이 참 많다. 그런 재미난 이야길 빼놓고 진지하게 보면 삶은 그 어느 단어보다도 우리에게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현실을 보면 그렇다. 어떤 이는 무고하게 피시방 알바를 하다 처참하게 죽기도 하고, 정의를 위해 투쟁하던 어떤 사람은 비참한 노년을 보낸다.


  어떤 사람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능력보다 과대평가된 옹졸한 실력으로 좋은 직장을 차지하지 않는가. 비정규직 중에서도 역설적이게도 비정규직다운 이가 별로 없다는 뉴스기사는 꽤나 역설적이다. 비정규직도 이른바 빽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을 돌이켜보면, 길지 않은 나의 삶도 참 짧고도 길다. 이십년에 걸쳐 학교란 곳을 졸업했고 취업을 했다. 계약직 직원으로 일하다 첫 직장에서 쫓겨났다. 백수로 전전하다 지금의 직장에 취업했다. 장인장모님을 설득했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내의 뱃속엔 우리의 첫번째 자녀가 있다.


  ‘왜 나에게만?’ 할만큼 부당한 일도 겪었고 ‘이런 행운은 다시 없을 것.’이라고 위안할만한 일도 있었다. 다만 이 모든 것이 삶에 일부란 사실을 깨닫는다. 삶을 마라톤이라고 치면 참 길다. 그러나 달려온 길을 돌이켜보면 짧아보인다. 십년 전 일이 엇그제같고 어릴 적 일이 눈에 선하다.


  짧고도 긴 삶을 자신있게 살아보려 한다.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알아보고 싶고, 나의 전문분야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도면 좋겠다. 무엇보다 아내와 자녀들, 가족들과 진한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살고 싶다. 살고 싶은대로 살수만은 없겠지만, 의지적인 노력이 어느 정도까지는 삶의 방향을 이끈다고 믿는다.


  날이 또 저문다. 휴일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헤어숍에서 머리를 자르고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들어서려 한다. 집 밖으로 새나오는 온기, 투명한 거실의 조명이 날 반기며 아내가 두팔을 벌려 내 목을 감싼다. 십구문반의 큼직한 신발이 할 일을 마칠 때 비로소 내 일과는 끝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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