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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농 Feb 25. 2021

4년 전, 같은 장소 다른 느낌

이직을 준비하던 백수에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되기까지


(래퍼 미농의 싱글앨범 '어양동'의 커버. 물론, 이 카페의 장소와는 관계는 없다.)




 금의환향일까, 또 다시 고비일까

  같은 카페, 다른 기분으로 이곳에 왔다. 이곳은 2017년 첫 직장에서 나오게 되어 이직을 준비했던 곳이다. 무려 5개월 간 회사를 그만두고 이곳을 매일 찾으며 글을 썼다. 그 글을 묶어 책을 엮어내기도 했다. 계속되는 낙방에 마음 쓰리기도 했지만,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곳이다. 이곳이 없었다면 재기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프랜차이즈지만, 아침 일찍 문을 열어서 시간활용에 좋은 곳이었다. 


  지금 나는 두 아이의 아빠. 주니어 직장인이지만, 전문직 자격증도 취득했고 싱글앨범도 발매하고 작은 사업도 병행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살고 있다. 자산은 많지 않지만, 실제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가 한 채 있다. 이 정도면, 4년 전과 꽤나 다른 모습이다. 그땐 주머니에 돈 한 푼도 없었는데 말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한탄섞인 한숨을 내뱉기도 하고, 자신감을 더해 빛나는 햇살에 희망을 걸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또 다시 고비다. 이제는 아빠로서의 역할도 중요하고, 두 아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만한 파이프라인 구축이 필요한 시기다. 여러모로 또 걱정이 앞선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신하면서 그러면서도 한없이 나약해진다. 사람의 다른 이름이 '겁쟁이'였던가. 다시금 주먹을 쥐어본다. 어차피 고민한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다. 여지껏 고민한 바를 실천했기에 여기까지 왔다. 생각한 바를 이루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몇 개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몇 개는 끝내 이루어냈다. 



 이젠, 에스프레소를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

  같은 카페, 다른 기분으로 이곳에 왔다. 이곳은 그렇다. 이직을 준비했던 곳이다. 지금은 형편이 다르다. 가장 저렴한 에스프레소를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도 되고, 케이크도 얼마든지 먹어도 된다. 내가 마음에 드는 모든 걸 주문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그만한 형편도 된다. 좋아하지도 않는 에스프레소를 주문해서 종이컵에 물을 잔뜩 받아놓고 아메리카노처럼 희석해서 먹지 않아도 된다. 


  여전히 고비지만, 나는 나를 믿는다. 인생은 끝없는 고비의 연속이다. 둘째 아이를 낳고, 배우자 출산휴가를 얻어 2주간 생활했다. 이제는 휴가가 며칠 남지 않았다.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으로 출근시키고, 집안을 정리하고 아내를 뒷바라지하는 일이 이젠 익숙하다. 계약 건도 처리하고 가장으로서 시비를 가릴 일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예전보다 삶이 더 힘들어진 느낌이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일이기에 궂은 일도 주저할 입장은 아니다. 



 백수는 아빠가 됐다. 삶이 더 행복해졌다. 

  삶이 더 힘들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에 넓이와 깊이가 있다면 그 넓이와 깊이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커졌다. 풍성하다. 밤잠 많은 내가 뒤척이는 아이를 위해 이불을 덮어준다. 아이의 옷을 입히고, 기저귀를 갈고 맛있는 음식을 해준다. 아이와 숨바꼭질을 하며 웃는다. 아내와 웃으며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가족사진을 찍는다. 사진들을 한 컷, 한 컷보면 자연스레 미소가 꽃핀다. 행복하다. 왜 가정을 꾸린 선배들은 이 행복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던 걸까. 가르쳐주었다면 더 일찍 결혼을 했을텐데 말이다.


  처갓집 장모님과 장인어른도 마찬가지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와도 사이가 더 좋아졌다. 아이들을 보며 웃으시는 일들이 더 많아졌다. 정말 무뚝뚝한 장인어른도 이제 나를 보면 반가워해주신다. 아이 덕택이다. 다시 희망을 품어본다. 소망하는 사람에게 미래가 열리기에, 다시 꿈을 꿔본다. 더 나은 아빠가 될 수 있기를, 더 나은 남편이 될 수 있기를.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좀 더 선하고 올바른 영향력을 전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지금처럼 그 분과 더욱 가까이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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