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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농 Oct 25. 2024

후배를 혼냈다


혼내지 말고 가르쳐야 한다

나는 직장생활을 할 때 그렇게 배웠다. 선배는 내게 혼낼 땐 호되게 했고 평소엔 잘해줬다. 내가 선배가 되자 몇 명의 후배가 생겼다.


똑같이 대했다. 나도 좋은 선배가 되고 싶었다. 그러면서 배운 건 혼내지 말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 근데 그게 쉽나.


오늘 후배를 혼냈다. 보고 없이 구매팀 전도금 공문을 합의했다는 데서였다. 좀비 같은 협력사에 지급될 전도금을 보며 민감한 사항으로 나를 포함한 팀장 및 차장님도 염려하던 차였다.


차장님이 후배를 다그치려 할 때 내가 끼어들었다. 내가 가르친 후배가 혼나는 건 내가 혼나는 것과 같다. 내가 오히려 후배를 혼냈다.




결과는 생각보다 나빴다.

혼내는 게 아니라 가르쳐야 했다.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나는 선배가 혼내는 게 후배보다 감정이 이리도 상할 줄 전혀 몰랐다. 혼나는 것보다 혼내는 게 더 힘들다.


후배를 불러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고작 직장 몇 년 더 다녔다고 화를 낼 자격은 없단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마음은 더 싱숭생숭 만하다. 예전처럼 쉽게 후배와 대화하기가 어렵다. 정말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역시 내가 부족한 탓이다.





후배 때는 일만 잘하면 됐다

자랑은 아니지만 가는 회사마다 인정받는 사원이었고 실무자였다. 후배 때 일만 잘하면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후배를 관리하고 팀장 사이에서 업무를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되니 이게 또 다르다.


나의 능력의 부족함을 느낀다. 전 회사에서 <회사에서 후임자 가르치는 법>에 대한 책을 읽었다. 가장 첫 번째 나오는 말은 화내지 않고 차분히 이야기하라는 말이었다.


난 첫째 법칙을 어긴 셈이다. 나약한 심성에 주저앉을 뿐이다. 얼른 집에 가고만 싶었다. 월요일은 휴가이니 마음을 다스려보아야겠다.


무엇보다 후배에게 미안했다.

좋은 선배가 되는 게 쉽지 않다.




집에서는 좋은 아빠가

아내에겐 좋은 남편이 되고 싶다. 그런데 결코 쉽지 않다. 내 기준과 상대방의 기준이 단연 다를 수 있다. 나의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은 다르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우리 집 네 살 꼬마 아이의 마음도 모르는 내가 가족과 업무적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 무리한 소망일지도 모른다.


이젠 이 마음을 조금 내려놓아야 할까 보다.

기대를 낮추고, 조용히 살아야겠다 싶다.


힘겨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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