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장터 날에서 2 / 새미아저씨

장편소설 <새미아저씨>

by 미농

남자를 가까이서 보려 애쓰지 않아도 나는 그가 누군지 알아챌 수 있었다. 새미아저씨였다. 마인드컴퍼니라는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을 적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을 이렇게 단번에 맞출 수 있을지는 사실 기대하지 않았다만. 보통 사람이 풍기는 아우라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훌륭한 사람'이라거나 '큰 사람' 혹은 '정치인'보다는 '두목' 느낌이 강했다. UFC 김동현 선수의 주먹을 4배 정도 키워놓은 얼굴형이라던가 눈썹 옆에의 상처자국(나는 느와르 영화의 조폭들이 가지고 있는 칼자국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만), 큰 목청(목소리라기보다는 목청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때문인지 나는 괜히 말을 걸기가 싫어졌다.


"나오세요! 나오세요!, 여기 장사하려고 하는 데인데 이렇게 물건을 놓으면 어떻게 해?"

우리가 차려놓은 부스에 현수막이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그 옆으로는 시장상인들이 길바닥에 앉아 물건을 팔고 있는 상태였다. 무척 바람이 많이 불던 날이었다. 그는 부스 주변에 발을 내딛자마자 부스에 물건 배치를 고민하더니 갑자기 부스 주위로 시장상인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어서 나와요, 나 성질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닙니다."

그가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마치 '추적90분'이나 '그것이 알고 싶군'에 재연배우 같았다. 생각해볼수록 모 재연배우와 닮아서 나도 몰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젠장, 근데 그 모습을 새미아저씨가 보고 만 것이다.


"웃깁니까? 당신은 지원하겠다고 나왔으면서 도대체 뭘하십니까? 이래서 우리 같은 소상공인들이 굶어죽는 거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시장관계자분들과 협의해서 상인 분들 위치 조정해달라고 요청드릴께요."

다행히도, 말이 끝나자마자 시장연합회와 동사무소 관계자가 시장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남중동사무소 김상철주무관입니다! 오늘 민생경제과 시청 주무관님이 못오셔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다들 표정이.. 아! 민우씨는 얘기 잘 들었습니다. 방 팀장님 잘 지내시죠?"

"네, 주무관님! 정식으로 인사드릴께요. 반갑습니다. 이립사회경제연구소 사회적경제팀 김민우 주임입니다. 방 팀장님 잘 지내십니다. 요새 바쁘시긴 하지만 뭐.."


이야기 중간에 끼기 민망했던 걸까. 새미아저씨는 자기 부스에 물건 정리를 시작했다. 1톤인지 2톤인지 하는 봉고차가 안 그래도 좁은 시장 초입에 주차되어 있었다.

"저기요. 대표님. 이 차는 좀 빼주셔야겠는데요?"

"아 그래요? 알았습니다. 이것만 정리하고요."


단순한 대답이었지만 목청이 커서 시장에 울렸다. 사실 이곳 중앙시장은 실내 시장이 아니다. 밖에 노점도 있고 골목과 골목마다 상인들이 있고 사실 시장 자체가 규모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다만 골목을 돌아다니는 게 또 재미가 있었다. 우리 팀에서 모집한 기업들은 새미 아저씨가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마인드컴퍼니>, <사회적기업 밸리하우스>, <협동조합 대범한청년들>, <전주한우농가협동조합>이었다. 네 곳 밖에 안 되다보니 현장지원에 나 혼자오게 되었고 황금같은 연휴 중 토요일을 소비해야만 했다.


그러면 뭐 어떤가. 다 회사원들이 주말마다 나오는 사람들도 많고, 쉴 때 쉬지 못하고 야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까지 그걸 꺼려하면 누가 막내를 하고 힘든 일을 도맡아하겠는가. 단지 이 일이 힘든 건 사람이 힘들고 일이 힘들다기보다 이 일을 하는 것을 누가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가장 힘들었다. 팀장님도 사실 이 건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고 시간만 채우는 걸로 생각했을 뿐 별다른 말이 없으셨고, 회사 사람들도 그랬다. 그렇다고 어필할 수도 없지 않은가. '다들 잘 쉬셨어요? 아 토요일날 힘들었네요.'라고 티낼 수도 없었다.


회사는 그렇다. 학교 생활을 하다가 회사로 넘어오니까 적응이 안 되는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유럽의 기업문화는 그려려면 왜 배운 건지. 한국에서는 도저히 적용할 수 없는 모델이잖아. 조직관리도 마찬가지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보니 벌써 4개 기업 모두 입점을 마치고 상품 정리마저 끝내고 있었다. 나와 김 주무관님은 이것저것 이야길 하고 있었는데, 김상철 주무관은 사회적경제에 그닥 관심은 없어보였다. 이야기 중에서도 사회적경제에 관한 내용은 빠지고, 어제 무슨 일을 했다는 둥, 익산 모현동 쪽 클럽이 좋다는 둥, 이거(사회적경제 마켓) 아무리 해봐야 효과 없다는 둥 일상과 관련된 잡다한 이야기만 꺼내놓았기 때문이다.


하긴, 무얼 기대하겠나. 그들도 쉽지 않겠지. 매번 부서를 옮겨다니며 하던 일을 조정해야 하니까 말이다. 흥미대로 부서가 배치된다면 더 좋을텐데. 그건 인기가 몰리니까 그렇게 할 수도 없을 것이고. 관료제 하에서의 인력배치는 어떻게 되든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회사도 비슷하긴 할 것 같고. 새미아저씨는 어느 새 굵은 팔뚝을 드러내고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얼른 다가가서 '도와드릴까요?'하고 물었다. 아저씨는 묵묵부답. 이윽고 고개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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