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장터 날에서 / 새미아저씨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아저씨란 명칭은 보통 아가씨들이 남성을 부를 때 주로 쓰인다. 그 까닭인지 나는 새미아저씨라고 부르기를 주저했었다. 그냥 대표님이면 족했으니까. 나름의 부끄러움도 작용했다. 서른이 다 된 남자가 같은 남자를 두고 아저씨라고 부르다니. 이게 무슨 군대같은 이야기인가. 군대에서는 흔히 다른 중대 병사들을(기간병이라고도 한다지만) 아저씨라고 부른다. 그냥 마음에 거리낌같은 게 있고 그 와중에 부끄러운 감정도 작용해서였다.
6월에 처음 협동조합 마켓에 나서면서 다짐은 단 한 가지였다. 내가 적어도 10년 이상은 이 쪽에 발을 담고 살아갈 입장이니 최선을 다해보자고. 당시엔 협동조합을 놓고 6개의 특별법만이 제정되어 있었을 뿐, 협동조합기본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말조차 논의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단순히 생각해보면 대기업 위주의 분수효과가 한국 경제를 제법 잘 지탱해주고 있는 형편이라 그랬던 게 아닐까.
그래서 그 누구도 협동조합 형태로 법인을 운영해보자는 생각을 못했던 게 아닐까. 정부만 협동조합이란 명칭으로 생색내듯 농업협동조합, 수산업협동조합 등을 만들어내지 않았겠느냐는거다. 나름 농수산 등 1차산업 판로를 지원해주며 공동체 의식을 함양시킨다는 명목하에 이루어진 일일 것이다.
협동조합 마켓은 익산 중앙시장에서 열렸는데 협동조합만 참여한다고 해서 협동조합 마켓이 아니고, 협동조합이 주축이 되어 소상공인들의 참여를 허용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냥 소상공인 오일장쯤 된다. 그 소상공인이 사회적 목적이 조금 있고 일자리 창출에 조금 앞장 서고 자기들이 착한 일을 한다며 '착한 기업' 혹은 '착한 소상공인'이라고 불러주길 바란다는 점이 다르다고나 할까.
나는 그런 게 싫었다. 정치적 목적이나 명예를 위해서 협동조합이나 공동체나 우정이나 사랑이나 희망이나 사회나 하는 것들을 들먹임으로써 정작 제대로 다루어져야할 빈부의 문제나 기초수급 등 복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해놓고 뜬구름잡듯 가치만 제시하는 것 말이다. 그런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해보라면 지금 당장 수십 명이라도 들어보겠다. 다 기관의 이사장이니 센터장이니 본부장이니 하는 사람들이 다수니까 그 분들이 스스로 더 잘 알겠지.
여하튼 지금은 퉁명스럽지만 그때 당시엔 그런 것 전혀 몰랐다. 유월이 돌아오고, 처음으로 장터에 설 날이 다가왔다. 중앙시장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산했다. 한산함 때문이었을까. 여름이 다가오는데도 도무지 덥기보단 나도 모르게 두 팔로 온 몸을 감싸 안아야할 만큼 쌀쌀했다. 막내라 가장 먼저 도착해서 기업들이 현수막은 잘 설치했는지, X배너는 제때 걸어놓았는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왠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