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부리 Jun 08. 2020

유쥬얼 서스펙트 찍는 유준이

2020.06.08

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안양천으로 바람을 쇠러 나갔다. 둥이들의 선택을 존중해 자전거 대신 킥보드를 타고, 아빠 가방에는 음료수와 비누방울 놀이세트를 챙기고, 돗자리까지 챙겨 나섰다. 

옆동네 사는 이모와 사촌누나는 안양천에서 합류했다. 날씨가 좋아 나들이는 나온 사람이 많았지만, 안양천은 워낙 넓기에 물리적 거리두기에도 문제가 없었다. 

한적한 곳에 돗자리를 펴고, 이모가 사온 김밥과 떡복이도 먹고, 비누방울도 신나게 날렸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 마스크도 벗고 놀았다. 

하이라이트는 이모의 자전거였다. 둥이들은 번갈아 이모 뒷자리에 매달려 신나게 달렸다. 유준이가 다치기 전까지는.

떨어질까 싶어 유준이를 이모와 함께 끈으로 묶은 뒤 신나게 출발했다. 우재는 킥보드를 타고 그 뒤를 따랐고, 나도 쫓아갔다. 한참 가고 있는데 이모와 유준이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가니, 이모가 유준이를 자전거 앞 좌석에 태우려 하고 있었다. 나를 본 이모(처제)가 황급히 외쳤다. 유준이의 발이 자전거 뒷바퀴살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오잉!! 가서 보니 유준이는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안아서 땅에 내려놓아 보니 오른발을 딛지 못하고, 아프다고 자지러진다. 

일단 다시 안았다. 우는 유준이를 달래면서 아내가 있는 돗자리로 데리고 왔다. 엄마를 보더니 유준이는 더 서럽게 운다. 가만히 다리를 살펴보니 다행히 크게 다친것 같지는 않다. 인대나 뼈가 상했으면 다리가 퉁퉁붓고, 아이도 더 자지러지게 울텐데 그렇지는 않다. 발목이 꺾였으니 아프기도 하고, 놀라기도 해서 우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이날의 소풍은 종료. 그래도 모르니 병원에 데려가려고 토요일에 진료하는 동네 정형외과를 검색했다. 다행히 한군데가 오후 5시까지 진료를 한다. 

유준이를 안고 집으로 향했다. 어느새 울음이 그쳤다. 연못을 지날때는 여느때처럼 재잘거린다. 물고기가 어쩌고, 벌레가 어쩌고....그러더니 내게 물었다. "아빠, 근데 나 아픈 다리가 어느쪽이야?" 오잉!! 다행이다 싶었다.다. 건드리지만 않으면 아프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럼 그건 크게 다친게 아니다.


내가 먼저 집에 도착해서 우선 찬물로 찜질을 해주었다. 절대 건들지 말고 물로만 하란다. 그렇게 해주었다. 욕실에 들어온 김에 샤워도 하자니까, 그건 아니란다. 알았다고 했다. 


뒤이어 아내와 처제가 남은 아이들을 챙겨 돌아왔다. 병원에 전화를 해보니 전화 예약은 안된단다. 내가 차를 몰고 나섰다. 집에서 그리 멀지는 않은 곳인데, 병원에 들어가보니 사람이 수십명 대기 중이다. 3시간은 기다려야 한단다. 우선 예약을 걸어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유준이는 오른다리만 못움직일뿐 할건 다 하고 있다. 아이스크림도 먹고, 수박 쥬스도 먹고 있다. 조카 자전거 태워주다가 졸지에 사건 가해자가 된 처제가(피해 배상의 의미로 ㅋㅋㅋ) 요즘 둥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와플블록을 사준다고 하니, 신까지 났다. 

그 와중에 유준이가 수박쥬스를 옷에 쏟았다. 옳타쿠나 싶어서 다시 샤워를 시키려고 데리고 갔다. 이번에는 지도 저지른 것이 있으니 순순히 샤워에 응한다. 그러면서도 절대 아픈발을 만지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앉혀놓고 샤워를 시키는데 잘못해서 비눗물이 유준이 눈에 들어갔다. 지 몸에 묻은 비눗물을 손에 묻힌 뒤 얼굴을 만진 모양이다. 죽는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벌떡 일어났다. 오잉!!!!!!!!!


데리고 나와 몸을 말리고 새옷을 입혔더니 다시 또 무릎으로 다닌다. 소파에서 어른들으 극진한 수발을 받고 있는데 누나가 유준이의 장난감을 만졌다. 유준이가 달려간다. "안돼!!!!!" 오잉????


병원은 안가도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대신 이모가 플라시보 요법을 써보기로 했다. 열날때 이마에 붙이는 쿨링패드를 발목에 붙이고, 등산용 손수건으로 발목을 칭칭 동여맸다. 이모는 이제 2단계로 회복이 됐고, 내일까지 푹 자고 나면 3단계로 완전히 회복이 될 것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유준이는 완전히 믿는 눈치다. 


그 다음부터는 걷다가 기다가 자기 마음대로다. 대강 보니 어른들하고 있을때는 기다가 지들끼리 있을때는 걷는것 같기도 하다. 영화 <유쥬얼 서스펙트>가 생각난다. 

물론 완전히 엄살은 아니다. 발 옆쪽에 시커먼 멍이 꽤 크게 생겼다. 이모가 잽싸게 자전거를 세워서 다행이었다. 정말로 큰일이 날 뻔했다. 뼈도 인대도 상하지 않은건 하늘이 도운 것 같다. 


유준이는 어제 아빠에게 안겨서 놀이터로 이동한 뒤 그네를 탔다. 킥보드도 탔다. 밤에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엄마에게 혼났다. 엄마가 아직 다리가 아파서 안된다고 하니 "이 정도는 괜찮다"며 웃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날 때 보니 다리가 약간은 불편해 보였다. 아이들도 어른처럼 아침에는 관절이 빡빡한 모양이다. 그러더니 바로 또 마구 뛰어다닌다. 초샤이언인급 회복력이다. 


이모의 특급 처치로 인해 짐승같은 회복력을 보인 유준이



    

작가의 이전글 우재의 역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