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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부리 Jul 16. 2020

둥이들아, 야구는 즐겁게 보자

2020.07.16

나의 단점, 그러니까 고쳐야 할 점 중 하나는 야구에 과몰입하는 것이다.

40년 가까이 야구를 보고 있는데 마음 편히 야구를 본 적이 없다. 이겨도 불안하고, 지면 화가 나는 패턴이 무한 반복이다. 아내는 "그렇게 화를 낼거면서 왜 야구를 보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지만, 야구는 원래 그런 것이다. 마음편히 야구를 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야구팬이 아닌 것이다. 


이제 둥이들도 야구를 본다. 내가 야구를 보면 옆에 와서 같이 본다. 물론 금방 싫증을 내고 가버리지만, 그래도 여러번 보다보니 야구가 뭔지는 안다. 바로 "아빠가 좋아하는 것"이다.

둥이들이 처음에 좋아한 야구팀은 NC다이노스다. 마스코트가 공룡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LG트윈스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아빠가 좋아하는 팀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김현수 홈런"도 함께 외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얼마전 트윈스는 또 졌다. 요즘 하도 많이 져서 나는 그러려니 하는데, 유준이가 물었다. "아빠 쌍둥이팀 이겼어?" "아니 졌어"....대답을 들은 유준이는 금방 울것 같은 표정이 됐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앞으로 야구볼일이 얼마나 많을텐데 벌써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떡하나. 아마, 야구를 보며 화를 100번쯤 내고, 또 슬퍼하는 아빠를 보고 배운 것일 게다. 

 

바로 유준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유준아, 이건 슬픈일 아니야, 야구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거야. 누가 이기든 재밌게 보면 되는 거야."

그 뒤로도 유준이와 우재 모두에게 틈나는대로 이야기했다. "야구는 즐거운 거야. 즐겁게 보면 되는거야. 슬퍼할 필요 없어"


그제 회사에 있는데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갑자기 유준이가 엄마에게 물었다는 것이다. "왜 아빠는 우리한테는 즐겁게 보라면서 막 화를 내는거야?" 역시나 애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나름 요즘은 아이들 앞에서 표정관리를 한다고 했는데도 잘 안됐던 모양이다. 


어제 오랜만에 쌍둥이팀이 이겼다. 오늘 아침에 유준이가 쪼르르 달려와 물었다. "아빠, 어제 쌍둥이팀 누구랑 했어?" "거인팀이랑 했지" "이겼어" "이겼지, 김현수가 홈런도 쳤지" "아, 진짜?" 그러고 유준이는 다시 쪼르르 뛰어갔다.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며 힘 자랑을 하는 파키케팔로사우르스 두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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