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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부리 Apr 16. 2016

백일의 기적은 없었다

2016.04.11

어제는 백일이었다. 태어난지 꼭 100일. '백일의 기적'이 찾아온다는 그 백일. 그러나 기적은 없었다. 역시나 기적은 혼자 크는 아이들에게만 찾아오나보다. 쌍둥이들에게 찾아온 것은 '백일의 기절' 뿐이었다. 


백일잔치는 99일째인 그제(4월9일)에 치렀다. 일요일에는 나도, 아버지도 출근해야해서 겸사겸사. 

전날부터 정성들여 테이블 세팅을 하고, 아침에 또 부리나케 준비를 했다. 


아이들은 자기들 잔치인 줄 아는지, 왠일로 오전내내 동시에 잠을 잤다. 그래서 테이블 세팅을 마무리하고 청소까지 마칠 수 있었다. 


백일의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사진 촬영. 생각보다 의젓하게 포즈를 취했고,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함박 웃으실 수 있었다. 


어찌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하나도 없느뇨!!!
우리는 이미 좌경화되었다!!!

촬영을 마치고 간 한정식집에서도 아이들은 아주 얌전히 잘 지내주었다. 무려 2시간 가까운 시간을 별탈없이 있었고, 덕분에 아내는 아주 오랜만에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 달래주기도 하고 했지만. 


아이들이 인내의 한계에 도달할 무렵, 마침 식사가 끝났다. 우재를 유모차에 태울 때 등에 버클을 치우지 않아 우렁차게 울었지만, 난 "아니, 애가 왜 이러지. 배가 고픈가~"하며 내 잘못을 완벽하게 감췄다. 다행히 우재도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집에 와서도, 유준이가 똥을 싼 것 외에는 잘 놀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칭찬이 자자했다. 이렇게 순둥이들이니 둘도 키울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친할아버지, 할머니가 가시고, 두 녀석이 잠든 것을 확인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안심하고 돌아가셨다. 잠든 사이에 잽싸게 집도 다 치웠다. 


아내와 나는 "진짜 백일의 기적이 찾아온 모양"이라며. 우리끼리 자축파티라도 열 기세였다. 그러나 이는 녀석들의 치밀한 '큰 그림'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그토록 칭찬받던 얌전한 놈들은 어느새 사라졌다. 울고, 또 울고, 토하고, 똥싸고..그때서야 아내와 나는 깨달았다. "일은 하되. 놀지는 마라"....일할 때는 잠을 자주겠다, 그러나 놀 생각은 하지 마라...이것이 아이들의 뜻이었구나. 잔혹한 녀석들


 

이것이 우리의 본 모습이다. 우하하하하, 곧 요에도 똥울 싸주마

평소 패턴대로 우재가 먼저 잠들고, 유준이는 다시 엄마품에서 아빠품으로 그리고 다시 엄마품으로 가기를 반복하다가 잠들었다. 그래도 백일잔치 일정이 힘들었는지 평소보다는 일찍 잤다. 


사실 아내는 좀 억울할 것 같다. 녀석들이 할머니, 그러니까 아내의 시어머니 앞에서는 그리 얌전을 떨었으니...시어머니는 "우리 손자들이 저리 얌전하니, 다행이 우리 며느리가 좀 수월하게 키우겠네"하고 돌아가셨을게다. 난동을 부릴 거면 공평하게라도 부려야지...


2016년 1월2일 낮 12시56분과 57분, 각각 2.64kg, 3.15kg으로 태어난 녀석들이 이제는 7kg을 훌쩍 넘어섰다. 잔병들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엄마아빠의 걱정을 기우로 만들어줬다. 


이제 100일. 앞으로도 20년 가까운 세월을 품에 안아야 할 녀석들이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또 생각했다. 그때까지 내가 아이들의 충분한 바람막이가 될 수 있을까. 숙제가 많지만, 녀석들과 함께라면 잘 할 수 있겠다는 근거없는 낙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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